구글과 스탠퍼드대학의 혁신 마이스터인 알베르토 사보이아. 그가 2011년 배포한 소책자‘프리토타이핑 하라(Pretotype It)’는 전 세계 창업자에게 두루 읽혔고, 2019년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The Right It)’으로 출판됐다. 자신의 저서까지 프리토타이핑을 통해 세상에 선보인 셈이다. 사진 인플루엔셜
구글과 스탠퍼드대학의 혁신 마이스터인 알베르토 사보이아. 그가 2011년 배포한 소책자‘프리토타이핑 하라(Pretotype It)’는 전 세계 창업자에게 두루 읽혔고, 2019년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The Right It)’으로 출판됐다. 자신의 저서까지 프리토타이핑을 통해 세상에 선보인 셈이다. 사진 인플루엔셜

구글과 스탠퍼드대학의 혁신 마이스터인 알베르토 사보이아가 창업 세계의 데이터 문맹자를 위해 ‘될 놈(the right product)’을 테스트하는 시장조사법을 쉽고 간단하게 정리했다. 이름하여 ‘프리토타입(pretotype)’ 기법. 행동경제학자들의 가설 입증 실험처럼, 제품이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살짝 속여서 나만의 데이터를 얻는 기법이다. 그는 신간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에서 몇 가지 프리토타입을 소개했다. 이를테면 IBM은 음성 인식 컴퓨터를 개발하기 전에 옆방에 전문 타이피스트를 숨겨 두고 사용자가 말하는 대로 화면에 입력되도록 했다. 사람들은 처음엔 음성 인식 컴퓨터를 신기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목이 상하고 기밀 유지가 안 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알베르토 사보이아는 당장 사업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싶어서 투자자를 모으고 제품 개발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이런 식의 ‘검증 시간’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이 원하는 건 ‘복잡하고 완성도 높고 독창적인’ 제품이 아니다. ‘될 놈’은 그저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의 몸에 맞고 쓰기 쉽고 가깝고 재미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구루(guru·스승)’ 알베르토 사보이아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지난 10년간 당신의 충고가 PDF 파일 형태로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가와 개발자 사이에서 경전처럼 읽혔다고 들었다.
“그 문서의 제목은 ‘프리토타이핑 하라(Pretotype It)’다. 72쪽의 소책자로, 구글에서 일할 때 일주일 만에 뚝딱 썼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왜 실패하는지를 분석했다. 그저 다른 혁신가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전 세계 창업가가 그걸 읽고 공부하고, 번역해서 퍼 나르고 있었다. 이번에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The Right It)’이라는 책으로 다듬어서 내놓았다.”

어떤 동기로 이 문제에 파고들게 됐나.
“과거엔 내가 손만 대면 어떤 프로젝트든 죄다 성공할 것으로 생각했다. 미다스의 손을 가졌다고 착각할 정도로. 지금은 업계의 거인이 된 두 스타트업(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구글)에서 연이어 대성공을 거뒀었다. 그런데 5년 동안 무려 2500만달러를 투입해서 창업한 회사가 망했다. 당시 ‘표적’ 시장(소비자)이 우리에게 들려줬던 말은 ‘그걸 만들기만 하면 우리가 구매해 줄게’였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었지만, 구매하겠다던 시장의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너무 괜찮은데 시장에선 안 팔린다.
“제품이 너무 완벽해서 더 충격이었다. 훌륭한 투자자들을 확보했고 노련한 엔지니어와 제품 관리자, 마케팅팀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중요한 건 우리가 표적 시장이 원한다고 말했던 ‘바로 그 제품’을 만들어 내놓았다는 거다. 어찌 된 영문이었을까. 샅샅이 살펴보니 원인은 하나로 모였다. ‘우리가 원하는 제품은 만들었지만 시장이 원하는 ‘될 놈’을 만들진 못했다.’”

왜 그런 불일치가 일어나는 걸까.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업이 시장 조사를 하는 방식에 심각한 결함이 있고, 거기에서 도출된 결과는 믿을 수 없으며,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몇 달간의 시장 조사, 수십 명의 잠재 고객과 대화… 모든 게 오류였다. 시장 데이터를 위한 ‘더 나은 방법’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프리토타이핑(pretotyping)’이다.”

‘프리토타이핑’의 구체적인 정의가 뭔가.
“프리토타이핑은 특정 서비스나 제품, 공간을 만들기 전에 ‘이것이 시장에서 원하는 게 맞나?’를 확인하는 소비자 테스트다. 그러니까 프리토타이핑은 ‘우리가 정말 이것을 만들어야 하나?’에 답하는 과정이다. 반면 프로토타입은 ‘우리가 이걸 만들 수 있나’를 실험해보는 물건이다. 프리토타이핑을 거친다면, ‘저주받은 걸작’을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 일은 없을 거다.”

IBM의 음성 인식 컴퓨터 실험 사례는 프리토타입이 복잡할 거라는 선입견을 단박에 깨뜨려줬다. 음성을 타이핑하는 사람을 몰래 숨겨놓고 소비자 반응을 체크하다니! 왜 이런 실험을 할 생각을 못 했던 걸까.
“생각의 함정이다(웃음). 타이피스트(속기사)를 숨겨놓고 음성 인식 컴퓨터의 소비자 반응을 테스트해봤던 IBM의 실험 덕분에 나는 프리토타이핑이라는 핵심 기법을 개발했다. 시장 반응을 보기 위해 꼭 완벽한 시제품을 만들 필요는 없다.”

여러 가지 프리토타이핑 기법 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메커니컬 터크(Mechanical Turk)’다. 요즘엔 머신 러닝, 인공지능, 로봇 공학, 자율주행 자동차 등 신기술을 중심으로 사업이 구상되고 있다. ‘메커니컬 터크’ 기법은 기술에 대한 인간 행동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구상 중인 기계 대신 사람을 활용한다. 왜냐? 표적 시장이 그 기계와 상호작용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즉 운전기사가 없는) 버스’를 개발하려면 수년간 몇백만달러를 투입해야 하지만, 메커니컬 터크 프리토타입은 단 며칠 만에 개발할 수 있다. 버스가 스스로 움직인다고 ‘믿도록’ 일반 버스를 개조해 노련한 운전기사가 숨을 공간을 만들고, 승객이 그 버스에 선뜻 타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또 하나 좋아하는 테스트 기법은 ‘유튜브 프리토타입’이다. 영상 기술로 마치 그 제품이 진짜 만들어진 것처럼 표적 시장에 영상을 공유하고,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핀다. 드롭박스는 신생 스타트업이었을 때, 자신들의 제품이 어떤 작업을 하게 될지를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는 동영상을 제작했다. 마지막에 원한다면 제품의 대기 명단에 올릴 이메일을 보내 달라는 자막을 넣었다. 하룻밤 사이 대기 명단은 7만5000명이 넘었다. 이게 바로 의견이 아닌 데이터다. 시장의 실제 목소리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프리토타입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알베르토 사보이아. 사진 인플루엔셜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프리토타입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알베르토 사보이아. 사진 인플루엔셜

신제품의 80%가 실패한다(닐슨 리서치)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한술 더 떠서 당신은‘신제품 아이디어의 90%가 실패할 것’으로 가정하라고 했다. 시도해보기도 전에 실패를 가정하는 태도가 열정에 김을 빼진 않을까.
“거의 모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기업들은 시장에서 실패한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많은 다른 혁신가처럼 통계치가 다른 말을 하고 있어도, 나 역시 성공만을 가정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해당 아이디어에 너무 일찍 너무 많은 투자를 했고, 그 실패로 더 큰 비용과 고통을 치렀다. 실패 가능성이 크다는 걸 받아들이면 신중하게 일을 진행할 것이고, 시장이 그 아이디어에 관심 없다고 밝혀져도 다른 대안을 생각할 시간과 자원이 남아 있을 거다.”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
“나는 계획했던 걸 만들지 못해서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수백만 개의 실패 제품, 서비스, 기업을 조사해본 결과도 일관되게 하나였다. 시장이 그 제품에 관심이 없었다. 그 제품이 얼마나 잘 디자인됐든 가성비가 좋든, 상관없이.”

특히 ‘생각랜드’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확증 편향을 경계하라는 말이 깊게 다가왔다.
“‘생각랜드(Thoughtland)’는 추상적 공간이다. 생각만으로는 성패를 판단할 수 없다. 자기 생각은 물론 다른 이의 생각을 통해서도 판단은 불가능하다. 생각과 의견은 데이터가 아니다. ‘생각랜드’ 바깥으로 아이디어를 꺼내와야 한다. 현실 시나리오 속에 놓고 진짜 테스트를 해야 한다.”

지금 전 세계 언론은 심각한 플랫폼 위기를 겪고 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둘지, 속보와 질 높은 기사 사이에서 무엇을 중점적으로 생산해야 할지, ‘생각랜드’에서 갈팡질팡한다. 현명한 당신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나.
“내가 온라인 언론사 소유주라고 가정해보자. ‘생각랜드’ 속에서 나는 많은 이가 질 좋고 정확한 정보를 위해 속도를 포기하리라 믿는다.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거북이뉴스(Turtle News)’다. 사건 발생 즉시 뉴스를 보도하지 않고 몇 시간 혹은 며칠이 걸리더라도 철저히 검증을 마친 뒤에만 뉴스를 내보내는 웹사이트다. 거북이뉴스의 슬로건은 ‘느리지만 정확한’ 정도가 되겠다. 일부는 이걸 훌륭한 아이디어라 하고 몇몇은 실패가 확실하다고 한다.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많은 의견은 필요치 않다. 필요한 것은 ‘데이터’다!”

거북이뉴스 소비자에 관한 데이터는 어떻게 얻을 수 있나.
“우선 거북이뉴스 아이디어를 검증 가능한 가설로 표현해보자. ‘온라인 뉴스 독자 중 최소 10%는 며칠 늦더라도 통찰력 있는 기사를 위해 거북이뉴스를 구독할 것이다.’ 그런 다음 이 콘셉트를 알리는 단순한(고작 몇 쪽짜리) 웹사이트를 만든다. 웹페이지를 방문한 이들에게 거북이뉴스가 출시될 때 알림을 받고자 한다면 이메일로 회신해 달라고 요청한다. 마지막으로 이 신생 뉴스 서비스를 온라인에 광고한 후 몇 퍼센트가 웹사이트에 방문하고 이메일로 관심을 표명하는지 확인하면 된다. 몇몇 사람의 생각을 듣는 대신, 나는 그 서비스에 실제로 관심 있는 사람의 이메일 데이터를 수집한 것이다. 만약 온라인 광고에 1000달러를 들였는데 겨우 세 명만 응답했다면, 애초의 가설을 폐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업가는 거북이뉴스 아이디어에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실제 검증은 뒤로하고 일단 완벽한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기자와 애널리스트를 고용하는 데 몇 달을 보낸다.”

일단 간단한 웹사이트부터 만들고 시장 반응을 확보하라는 건가? 에어비앤비와 우버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서양인들이 어떻게 사적 공간을 나누는 비즈니스를 시도할 수 있었을까.
“우버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 생각도 당신과 같았다. ‘미쳤군. 누가 타겠어. 자녀에게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낯선 사람의 자동차에 타지 말라는 거 아닌가?’ 그런데 수백만의 사람이 매일 낯선 사람의 자동차에 타고 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생각랜드는 아이디어를 평가하기에 왜 위험한 공간인가’를 설명할 때 내가 자주 활용하는 사례다. 우버는 내 생각랜드에서 형편없는 아이디어였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성공작이다. 나도 우버를 애용하고 있으니까.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했던 일이, 바로 모든 반대론자를 물리치고 프리토타이핑 기법을 이용해 빠르고 저렴하게 ‘나만의 데이터’를 모은 것이다.”

시장 테스트를 잘해도 진짜 시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돌아가는데, 이 과정을 거친다는 게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나.
“바로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테스트가 필요하다. 더구나 프리토타이핑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스탠퍼드대학의 혁신 워크숍에서는 학생들에게 단 2시간을 주고 아이디어를 프리토타이핑하고 시장 데이터를 모아오라고 한다. 복잡한 테스트라도 길어야 며칠이다. 프리토타이핑은 시장이 ‘바로 그 시점에’ 해당 아이디어에 관심 있는지를 알려준다. 내 조언은 이렇다. ‘신중하게 테스트하고, 빠르게 행동하세요.’”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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