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과 인간에 관한 에세이 모음집 ‘보이지 않는 권력자’를 펴낸 이재열 경북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사진 사이언스북스
미생물과 인간에 관한 에세이 모음집 ‘보이지 않는 권력자’를 펴낸 이재열 경북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사진 사이언스북스

보이지 않는 권력자
이재열 지음|사이언스북스|320쪽|1만5500원

생물과 무생물 사이엔 분명히 미생물이 존재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있는지 없는지 중요하지 않은 미미한 존재였다. 미생물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방면에 관한 지식도 그리 큰 관심거리가 안 됐다. 일반인을 위한 자연과학 서적 중 베스트셀러는 지금껏 우주과학이나 유전공학, 뇌 과학 분야 등에서 나왔다.

그러나 미생물은 2020년 이후 더는 미미한 존재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호되게 치르고 있는 인류는 미생물의 위력을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심도 있게 체험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비롯한 미생물의 세계가 저보다 덩치 큰 생물의 생태계를 완전히 장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확인하고 있다. 인간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생물을 동반한 실존의 지평을 과학적으로, 정치적으로, 철학적으로, 예술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미생물학은 소수의 전공 분야가 아니라, 대중적 앎의 대상이 됐다. 인간의 몸 안에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있는지, 일상의 삶에서 미생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아두는 상식의 필요성도 증대됐다.

이재열 경북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가 최근 미생물과 인간에 관한 에세이 모음집 ‘보이지 않는 권력자’를 냈다. ‘인간 생로병사의 진짜 지배자는 크기가 0.1㎜ 이하의 존재들이었다’고 설파하는 책이다. 지난 1997년 낸 책의 개정판이다. 책을 낸 사이언스북스에 따르면, 기존 내용의 상당 부분을 뜯어고치고 새 원고를 추가했다고 한다. 

미생물 중엔 젖산균, 효모, 초산균처럼 우리 식탁에서 입맛을 돋우면서 유익한 것도 있지만, 대장균, 박테리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것도 있다. 미생물을 단순하게 하나로 보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중 바이러스는 무엇인가.

“바이러스는 핵산과 단백질 성분만으로 구성된 일종의 물질 ‘입자’라고 볼 수 있다. 자기 복제는 가능하지만 생리 대사 작용은 하지 않아 완전한 생명체로 보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바이러스는 변이도 쉽게 일어나 계통발생적인 추적이 어렵다.”

세균과 바이러스가 어떻게 다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을 읽다 보니 감염병에 걸리지 않고도 편안하게 알게 됐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세균’과 ‘병독’이라는 말로 바꾸어 놓으면, 서로를 구별할 수 있는 어떤 느낌이 다가오는 듯도 하다. ‘균’과 ‘독’이라는 말의 뜻을 깊이 생각해 본다면 ‘생명체’와 ‘물질’이라는 의미가 살며시 우러나온다.”

이재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세균은 먹이를 취하고 짝짓기를 해서 번식하지만, 바이러스는 먹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구수한 강의는 이렇다. “아니,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죽었다는 말인가? 여기서 ‘죽었나, 살았나’라는 질문은 잠시 접어 두고 더 생각해 보자. 바이러스는 희한하게도 자신과 똑같은 후손을 아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이는 바이러스가 살아있는 숙주 세포에 들어가야만 가능하다. 때에 따라서는 더욱 험한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똑똑한 바이러스 후손들이 태어난다.”

이 대목을 읽다가 식은땀이 흘렀다. ‘똑똑한 바이러스 후손들’의 행진곡이 떠올랐다고나 할까. 신종 바이러스의 부단한 출현이 새로운 일상의 표준에 반영돼야 한다는 게 감염병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과 주문이다. 그렇다고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채 살아갈 수만은 없다.

이 책의 저자는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해를 끼친다”라며 “그러나 바이러스가 무섭다고 한없이 도망갈 수만은 없다.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여러 병원균이 가진 특별한 성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권했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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