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방랑자들’로 영국 맨부커 문학상과 2018년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 사진 민음사
소설 ‘방랑자들’로 영국 맨부커 문학상과 2018년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 사진 민음사

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최성은 옮김│민음사
620쪽│1만6000원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가 최근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를 둘러싼 성 추문 파동으로 인해 심사를 취소했던 스웨덴 한림원은 뒤늦게 토카르추크를 수상자로 결정하면서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해박한 열정으로 그려낸 서사적 상상력”을 선정 이유로 꼽았다.

토카르추크는 지난해 소설 ‘방랑자들’로 영국의 맨부커 문학상 국제 부문 수상자가 된 데 이어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 한국 독자를 위해서도 즐거운 다복(多福)이다. 소설 ‘방랑자들’이 일찍 유명해진 덕분에 우리말 번역도 서둘러 진행됐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이 겹치면서 적절한 시기에 나왔다.

소설 제목은 고대 러시아 정교의 한 교파인 ‘달리는 신도(信徒)들’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온갖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악에 물들지 않기 위해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으며 구원을 찾아 장소를 옮겨 다녔다고 한다. 소설의 화자 ‘나’는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정지하는 자는 곤충처럼 박제가 될 거야. 심장은 나무 바늘에 찔리고, 손과 발은 핀으로 뚫려서 문지방과 천장에 고정될 거야”라며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라고 외친다.

소설 ‘방랑자들’은 단일한 상황의 시간적 연대기에 의존하는 전통 서사 문법을 벗어난다. 화자 ‘나’가 떠돌면서 마주친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면서 삶의 다채로운 의미에 대해 ‘경계를 넘어서는 해박한 열정’의 시선을 던진다. “한 귀퉁이에 서서 바라보는 것. 그건 세상을 그저 파편으로 본다는 뜻이다. (중략) 인생? 그런 건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선, 면, 구체들 그리고 시간 속에서 그것들이 변화하는 모습뿐이다.”

소설을 구성하는 이야기의 파편들은 때로는 콩트 같기도 하고 때로는 산문시 같기도 하고 때로는 수필이나 르포 같기도 하다. ‘경계를 넘어선 글쓰기 방식’을 활용한 것. 이야기의 파편들이 처음엔 제각각인 듯하지만, 뒤로 가면서 연결돼 서사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실험소설이지만 경쾌하게 읽힌다. 그런데 이 소설의 묘미는 때때로 독서를 멈추게 하는 아포리즘(aphorism·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글)에서 분출된다. “유동성과 기동성, 환상성은 문명화된 사람들의 특성이다. 야만인들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저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거나 침략할 뿐이다”라는 식이다.

이 소설이 제시하는 여행은 신체의 지리적 이동뿐 아니라 인간의 육체를 향한 탐험이기도 하다. 인간의 살덩어리 그 자체가 여행을 유혹하는 하나의 세계인 것. 화자 ‘나’는 인간의 몸과 장기를 보관한 여러 나라의 박물관을 찾아다닌다.

“심장. 그 신비는 확실히 밝혀졌다. 주먹 하나 정도 크기의 고르지 못한, 더러운 크림색 덩어리. 칙칙하고 보기 싫은 잿빛이 감도는 크림색. 그게 바로 우리 몸의 색깔이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중략) 실제로 우리 몸의 내부에는 아무런 색깔이 없다. 심장이 원활하게 펌프질할 때 혈액의 색깔은 콧물과 같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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