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셀버러 올드코스는 경마장에 위치한 9홀 코스다. 주택가 앞 하얀 말뚝들이 트랙 경계다. 마을안에 코스가 있는 이곳에서 골프는 일상의 놀이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머셀버러 올드코스는 경마장에 위치한 9홀 코스다. 주택가 앞 하얀 말뚝들이 트랙 경계다. 마을안에 코스가 있는 이곳에서 골프는 일상의 놀이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미끌미끌 그립 쥐는 것도 서툰 히코리 클럽(히코리 나무로 샤프트를 만든 클럽)을 들고 1번 홀에 서고서야 머셀버러(Musselburgh) 올드코스의 초라한 첫인상에 실망했던 게 얼마나 속 좁은 생각인지 깨달았다.

경마장 트랙 안에 9홀 코스(파 34·전장 2954야드)를 욱여넣은 듯한 옹색한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 자리를 놓고 경합하는 라이벌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가 풍기는 탁 트인 장엄미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일단 티잉 구역에 서자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창기 디오픈(브리티시오픈)을 6차례 열었던 유서 깊은 링크스 코스 위로 짠 내 듬뿍 머금은 바닷바람이 밀려와 러프를 흔들어 댔다. 그린 앞 항아리벙커는 말 그대로 입을 쩍 벌린 괴물 같았다. ‘깍깍’ 울어대며 몰려드는 까마귀가 상공을 선회한다. 명예, 돈, 혹은 자존심을 걸고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승부가 다시 숨결을 토한다.

머셀버러는 에든버러에서 동쪽으로 8㎞ 떨어져 있는 인구 2만1900명(2018년 기준)의 항구 도시다. 스코틀랜드를 32개로 쪼개는 행정구역 단위인 카운슬 에어리어(council area)로는 ‘이스트 로디안(East Lothian)’ 카운슬에 속한다. 머셀버러는 고(古)영어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머셀(mussel)은 홍합, 버러(burgh)는 마을을 뜻한다. ‘에든버러가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 머셀버러는 마을이었다네’라는 지역 노래도 있다. 에든버러보다 먼저 귀족들 영지로 개발됐을 만큼 역사가 깊다는 자부심이 있다.

흔히 머셀버러 올드코스라 부르는 이 코스의 정식 명칭은 ‘머셀버러 링크스, 더 올드 골프 코스’다. 코스 소유권은 이스트 로디안 카운슬이 갖고 있으며 퍼블릭으로 운영된다. 1816년 골프장을 에워싸는 경마장이 들어서면서 코스 확장에 한계가 생겼다. 머셀버러 올드코스 홈페이지(musselburgholdlinks.co.uk)에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코스’라고 박아놓았다.

세인트앤드루스와 머셀버러 사이 ‘원조 논쟁’은 어느 쪽이 더 오래전 골프를 했다는 기록을 담은 문서를 찾아내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머셀버러 올드코스에는 1672년 존 풀리스라는 변호사가 친구들과 내기 골프에서 돈을 잃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기네스는 이 기록을 근거로 머셀버러를 ‘최고(最古)의 코스’로 인증했다.

희대의 스캔들 무대이기도 했다. 그보다 105년 전인 1567년에는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이 남편 헨리 스튜어트가 살해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라운드를 해서 구설에 올랐는데 그 장소를 이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라운드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메리 여왕은 당시 부적절한 라운드를 했다는 소문과 살해범인 보스웰 백작과의 재혼 등으로 인해 결국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1552년 해밀턴 대주교가 세인트앤드루스 사람이 링크스에서 골프를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머셀버러를 제쳤다.

디오픈을 주관하고 세계 골프 규칙을 만드는 로열 앤드 에인션트 골프클럽(R&A)에 ‘세계에서 가장 오랜 골프 코스는 어디인가?’라고 질의했다. “이건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골프의 기원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고 언제 어디서 처음 골프를 시작했는지 객관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가 1457년 골프 금지령을 내린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근거로 골프는 그 이전부터 성행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다.


1번 홀 그린에서 히코리 클럽으로 퍼팅하는 기자의 모습.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1번 홀 그린에서 히코리 클럽으로 퍼팅하는 기자의 모습.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머셀버러 올드코스 클럽하우스 벽면에 새겨진 디오픈 챔피언들의 얼굴.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머셀버러 올드코스 클럽하우스 벽면에 새겨진 디오픈 챔피언들의 얼굴.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머셀버러가 한때 세계 골프의 중심지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당시 가장 영향력이 큰 골프 클럽 가운데 하나가 ‘아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스(The Honourable Company of Edinburgh Golfers: 이하 아너러블 컴퍼니)’였다. 이들 주도로 골프 규칙이 통일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1744년 결성된 아너러블 컴퍼니는 초창기 ‘젠틀맨 골퍼스 오브 리스(Gentlemen Golfers of Lieth)’라는 이름으로 리스 링크스에서 활동하다 그곳이 번잡해지자 1836년 근거지를 옮겨 머셀버러 올드코스를 홈코스로 삼았다. 이들은 지금의 뮤어필드로 옮겨가기 전인 1891년까지 이곳에서 활동했다. 아너러블 컴퍼니가 클럽하우스로 사용했던 건물이 지금도 남아 있다.

머셀버러의 전성기 시절 이곳에는 약 60개의 클럽이 있었다. 그리고 머셀버러 올드코스 주변에 골프 클럽과 공을 만드는 장인들이 모여 살았다. 홀의 직경이 108㎜(4.25인치)로 결정된 것도 이곳에서다. 초창기 홀의 직경은 클럽마다 조금씩 달랐다. 머셀버러에서 사용하던 홀 뚫는 기구가 표준이 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1870년대와 1880년대 디오픈은 프레스트윅 골프클럽과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머셀버러 올드코스를 순회하며 열렸다. 머셀버러는 6차례(1874·1877 ·1880· 1883·1886·1889년) 디오픈을 개최한 뒤 ‘아너러블 컴퍼니’가 1891년 뮤어필드로 홈코스를 옮기면서 개최권을 뮤어필드에 넘겨주었다. 클럽하우스 정면 벽에는 이곳에서 열린 대회 때의 챔피언 얼굴이 부조로 조각돼 있다. 이곳에서 10대 시절부터 캐디를 했다는 데이비드 맥그래스의 안내로 클럽하우스에 들어가 멤버들과 인사했다. 오전 시간이었는데 맥주잔을 부딪치며 왁자지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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