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에단 호크·오른쪽)가 유전자 운명에 무릎 꿇지 않고 우주비행사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동생 안톤과의 시합에서 꼭 한 번 이겼기 때문이었다. 이후 빈센트는 최고의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에 입사하게 되고 동료 아이린(우마 서먼·왼쪽)과 사랑에 빠지는 행운도 누린다. 빈센트는 안톤과의 시합 이후 유전자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이 졌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던 안톤에게 빈센트가 말한다.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긴 거야.” 사진 IMDB
빈센트(에단 호크·오른쪽)가 유전자 운명에 무릎 꿇지 않고 우주비행사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동생 안톤과의 시합에서 꼭 한 번 이겼기 때문이었다. 이후 빈센트는 최고의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에 입사하게 되고 동료 아이린(우마 서먼·왼쪽)과 사랑에 빠지는 행운도 누린다. 빈센트는 안톤과의 시합 이후 유전자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이 졌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던 안톤에게 빈센트가 말한다.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긴 거야.” 사진 IMDB

인간의 재능과 능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성공한 부모와 재력이 뒷받침되는 가정환경, 그 속에서 주어지는 우수한 교육 여건, 무엇보다 타고난 우성 유전자는 한 사람의 인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해서 100%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일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잠재된 능력조차 없고 성공의 기회도 손에 쥘 수 없는 것일까.

유전자 과학이 발달된 그리 머지않은 미래, 정부는 자연임신을 부끄러운 열정과 무계획의 상징으로 낙인찍고 그 결과 태어난 사람들을 열등한 존재로 분류한다. 그들은 부모의 우성 유전자만 채취, 인공수정으로 임신하는 것을 권장하고, 우수한 DNA 보유자로 확인된 사람에게만 좋은 직업과 성공의 기회를 제공한다. 국민을 우성과 열성으로 나누어 우대하거나 차별하는 것이다. 자연 잉태자들 중에서 간혹 천재가 나오기도 하지만 낮은 확률일 뿐, 보통 유전자를 소유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우성 유전자로 설계되어 태어난 이들을 추월할 수 없다. 법과 제도가 경쟁의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부모의 자연스러운 관계에서 태어난 빈센트도 분만실에서 치러진 혈액검사를 통해 운명이 결정되었다. 허약한 체질과 수많은 질병 가능성,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재능의 소유자라는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게다가 예상 수명은 고작 서른 살, 유전자 판독 결과에 실망한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려던 계획을 바꿔 빈센트라는 이름을 그 자리에서 얼렁뚱땅 지어준다. 부부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인공수정으로 둘째 아이를 낳고 안톤이라는 이름도 물려준다. 지능이나 체력, 모든 면에서 뛰어난 동생을 한 번이라도 이겨보고 싶었던 빈센트는 누가 더 멀리 헤엄칠 수 있나, 바다에서 수영 실력을 겨루지만 번번이 패한다. 안톤은 으스대며 말한다. “형은 안 된다니까.”

열등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허락된 직업은 청소부나 잡역부와 같은 단순 노동뿐이다. 하지만 빈센트는 남들이 정해준 운명을 거부하고 우주비행사를 꿈꾸며 공부한다. 부모는 그런 모습을 안타까워하고 안톤을 대견하게 바라보면서도 그에게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럭저럭 살다가 서른 살에 죽겠지, 생각하며 마음이 좀 아플 뿐이다.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아주 쉽게 누군가의 능력을 단정하고 그 말에 속고 상처받는다. 네가 뭘 한다고? 넌 안 돼, 꿈도 꾸지 마, 네까짓 게 어떻게 하니? 넌 절대 할 수 없어! 반면 자신을 믿지 못한 채 타인의 평가에 운명을 맡기고 간단히 포기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제가 이걸 할 수 있을까요? 저에게 재능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만약 재능이 없다고 하신다면 그만둘 거예요!

그 누가 인간의 가능성을 단언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꿈을 품고 나면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그 산을 넘기 위해 몸부림치는 존재다. 빈센트는 비록 청소부 신분이나마 그토록 바라던 우주센터 가타카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간다. 세상 모두가 안 된다고 비웃을지라도 스스로 포기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그는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방금 뽑아낸 피 한 방울이 신분증을 대신하는 사회에서 빈센트가 정상적으로 꿈을 이룰 길은 없다.

유전자는 가능성만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 미래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려주지 못한다. 우수한 지능과 체력을 갖고 태어나 촉망받는 운동선수로 활약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제롬. 빈센트는 유전자 브로커를 통해 자포자기 상태로 살아가던 그를 소개받고 그의 신분증명서를 산다. 그와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외모를 바꾸고 왼손잡이 습관을 버리고 키 높이 수술까지 받는다. 매일매일 자신이 빈센트라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온몸의 각질을 밀고 머리카락과 털을 깎으며 완전한 제롬으로 탈바꿈한다. 제롬의 신원 정보와 그의 피와 그의 소변을 빌린 빈센트는 마침내 최고의 우주비행사로 새롭게 태어난다.

우주로 날아가는 꿈을 이룰 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건 어쩌면 빈센트보다 제롬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리를 잃고 인생의 골방에 처박혀 술이나 마시며 살던 제롬은 오랜만에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자신의 꿈을 빈센트의 꿈에 얹고 삶의 의미를 찾아 함께 날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빈센트에게 고백한다. “난 네게 몸을 빌려주었을 뿐이지만 넌 내게 꿈을 주었잖아.”

인생이 계획대로 항해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 늘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인생의 발목을 잡고 우리의 인내와 지혜와 용기를 시험한다. 우주선 발사를 며칠 앞두고 항공사 내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빈센트가 참여하게 될 우주계획을 중단시키려던 감독관. 경찰이 우주항공사를 이 잡듯 수색하고 직원들을 일일이 검문하는 과정에서 우주센터 안에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진짜 빈센트의 유전자가 검색된다. 빈센트는 우주로 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방해자를 죽인 것일까. 빈센트는 끝까지 가짜 제롬임을 들키지 않고 우주로 날아갈 수 있을까.

1998년 ‘트루먼 쇼’ 각본·제작의 앤드루 니콜이 1997년에 각본·감독을 맡은 영화다. 과학의 발전으로 지금 보면 설정의 구멍이 보이기도 하지만 꿈을 이루려는 인간을 바라볼 때의 애틋한 감동은 훼손되지 않는다. 어쩌면 조금 허술한 듯한 이 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감독이 던져놓은 마지막 질문 때문일지도 모른다.

빈센트가 그토록 힘들게 노력해서 우주에 머물게 되는 시간을 감독은 왜 고작 1년으로 한정했을까? 그 기간에는 혈액검사도 소변검사도 하지 않는다지만, 빈센트는 이후 지구로 돌아와 숨 막히는 신분 세탁의 노력을 반복하며 살아가야 한다. 신분증명서가 되어줄 제롬이 1년 새 죽을 수도 있다. 유전자 예언대로 이미 서른 살이 넘은 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아닐까?

빈센트가 유전자 운명에 무릎 꿇지 않고 우주비행사의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동생 안톤과의 시합에서 꼭 한 번 이겼기 때문이었다. 그때 빈센트는 유전자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이 졌다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안톤에게 빈센트가 말한다.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긴 거야.”

인생의 모든 악조건을 이기고 살아가게 하는 힘은 우성 유전자도, 풍족한 환경도 아니다. 꿈이다. 꿈을 성취하고 싶은 열망. 목이 꺾어져라, 태양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한결같은 인간의 향꿈성. 돌아갈 길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달리면서도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던가. 지금도 저 하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빈센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내일도 모르면서 1년 후의 일을 걱정한다고? 꿈이란 그런 게 아니야. 꿈을 좇는 사람은 그다음 같은 건 계산하지 않아!”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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