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문학평론가. 사진 조선일보DB
유종호 문학평론가. 사진 조선일보DB

그 이름 안티고네
유종호 지음|현대문학|396쪽|1만5800원

원로 인문학자 유종호(84)는 문학평론가와 영문학자로 활동해왔고,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그는 지난 2006년 강단에서 은퇴한 뒤 왕성한 집필 활동을 보여 왔다. 초등학생 때 8·15 광복을 맞았고, 중학생 때 6·25 전쟁을 겪은 그는 탁월한 기억력과 유려한 문장력으로 당시 체험을 재현한 회상록을 잇달아 펴내 주목을 받았다. 현대사의 현장을 개인의 삶 속으로 내면화하면서 인문학자의 지성으로 객관화한 저술이란 점에서 회상록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다.

유종호가 이번에는 수상록의 정수(精髓)를 보여주는 에세이 ‘그 이름 안티고네’를 냈다. 문학과 인문학에 바탕을 둔 인생론과 예술론이기도 하고, 사회 비평이기도 하다. 그는 “이 조그만 책은 21세기 들어서 내는 열다섯 번째 것”이라며 “스무 살 버릇이 여든까지 온 것”이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그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를 읽은 한국과 미국 대학생의 해석 차이를 다룬 에세이를 책 제목으로 삼았다. 도시국가의 왕이었던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자신의 끔찍한 운명을 깨달은 뒤 사라지자 외숙이자 처남인 크레온이 왕위에 올랐다.

오이디푸스 왕의 두 아들은 성장한 뒤 왕좌를 되찾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전쟁은 크레온의 승리로 끝났다. 크레온은 형제의 주검을 매장하지 못하게 명령했다. 대역죄인을 용서하지 않고 사후에도 엄벌에 처해야 국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오이디푸스의 외동딸 안티고네는 왕명을 어기고 오라비의 장례식을 치렀다. 그녀는 감옥에 갇혔다가 결국 자살했다. 크레온은 잔혹한 독재자였고, 안티고네는 가족 윤리를 지키려다가 희생된 성녀(聖女)로 해석하기 쉽다.

이 비극의 영역판 서문에 따르면, ‘안티고네’ 독해와 강의를 거친 미국 대학생들은 국가 질서를 수호하려고 한 크레온의 행동을 옹호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유종호는 자신의 강의를 들은 우리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안티고네를 권력에 맞선 저항의 화신으로 옹호한 입장이 대다수였다.

유종호는 “우리 학생들이 어두운 정치사를 반영해 권력자를 적대적 타자로 간주함에 반해서 미국 학생들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우리 학생들의 안티고네 선호는 비판받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을 정치적인 억압과 저항, 전제와 항거라는 이분법으로 접근하고 그러한 면에서 편향과 쏠림 현상을 보이며 소수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나 유능한 선동가에 의해서 휘둘릴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유종호는 이 책에서 ‘삶은 병정 노릇 하는 것(Life is being a soldier)’이라는 스토아학파의 잠언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는다고 했다. 지나치게 소박하고 밋밋해 보이는 좌우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살이는 다름 아닌 수자리살이(변경을 지키는 병역)라는 게 살아온 삶의 실감에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삶을 병정 노릇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우리는 많은 것을 견디어내고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물론 영웅이나 지사의 길로 들어선 이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소심하고 겁 많은 보통 사람들이 삶에 대처함에 있어 혹 위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적어본 것이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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