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체험과 허구 사이를 넘나든 소설집으로 돌아온 이기호. 사진 조선일보 DB
작가의 체험과 허구 사이를 넘나든 소설집으로 돌아온 이기호. 사진 조선일보 DB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문학동네
1만3500원|316쪽

소설가 이기호(46)가 신작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를 냈다. 1999년 등단한 이기호는 이효석 문학상을 비롯해 굵직한 상을 여럿 받았다. 그는 탁월한 재담꾼으로 꼽힌다. 소시민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어처구니없는 관행이나 마음의 풍속을 경쾌하게 건드리는 소설을 써왔다. 이 소설집의 특징은 작가의 체험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허문 ‘오토픽션(autofiction)’을 보여준다는 것. 책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이기호는 “주인공 이름도 대놓고 ‘이기호’라고 짓고, 이게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장르 구분조차 무의미하게, 그렇게 애쓰면서 글을 썼다네”라고 강조했다.

이기호는 수록된 단편소설 ‘최미진은 어디로’에 몸소 등장한다. 인터넷 중고책 판매 사이트에서 이기호 소설책이 헐값에 팔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 작가 이기호가 직접 판매자를 만나는 이야기다. 소설책이 중고책 시장에 나오는 것이야 흔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작가의 책 다섯 권을 사면 이기호 소설책이 ‘무료 증정’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작가 이기호의 심정은 그리 편할 리 없다. 더구나 아내조차도 상처에 소금을 잔뜩 뿌린다. “그러니까 인터넷 그만하고 소설이나 쓰라고! 소설을 안 쓰고 있으니까 그런 것만 보이지! 소설가가 소설을 못 쓰면 그게 모욕이지, 뭐 다른 게 모욕이야!”


소시민의 위선 직접 드러내기도

아무튼 작가 이기호는 중고책 판매자를 만나고 만다. 작가는 사인회에서 ‘최미진’이란 독자를 만났던 것이고, 그녀가 동거하던 남자와 헤어질 때 저자 사인이 담긴 책을 놔뒀기 때문에 남자가 그 책을 인터넷을 통해 팔려고 했던 것. 남자는 ‘최미진’이란 이름이 적힌 이기호 소설책을 보면서 그녀를 그리워하다, 마침내 책을 팔기로 했다는 이야기. 작가 이기호는 책을 사 갖고 돌아와 자신의 책 한 권에 얽힌, 남녀의 인연과 그로부터 엉뚱하게 파생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 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라며 끝나는 소설이다.

이기호는 작가와 작품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소설을 체험 수기처럼 꾸며왔다. 이 소설집의 맨 뒤에 실린 작가의 말은 한 편의 단편소설에 버금가는 서사 구조와 분량을 지니고 있다. 어느 겨울날 작가가 차를 몰고 가다가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친 적이 있다는 것. 분명히 보행자가 신호등을 잘못 보고 일어난 사건이지만, 작가는 다투기보다는 먼저 보행자를 차에 싣고 병원으로 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의 주장을 입증할 물증이 없었다. 작가는 대수롭지 않은 사고로 여기고, 본인 과실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휴머니즘은 곧 배신당한다. 피해자가 병원을 옮기며 진단서를 새로 받아 피해 규모를 형사 처벌 수준으로까지 올린 것. 피해자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인데, 교통사고 처리에 관한 한 전문가 같은 솜씨를 지니고 있다는 게 보험회사 직원의 결론이었다. 이어진 이야기는 작가 이기호가 황당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면서 보상금 액수를 줄이기 위해 피해자 앞에선 대학교수라는 사실을 숨겨 지불 능력을 속이고, 여차여차해서 타협했지만 합의금으로 470만원을 주고 만다.

이기호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다른 단편소설에도 종종 익명으로 등장해 사건을 전할 뿐 아니라 소시민다운 위선을 실천하기도 한다. 그의 소설엔 자신과 사회를 향한 냉소가 짙게 배어 있다. 그는 체험 수기와 같은 작가의 말을 끝내며 독자를 향해 이렇게 묻는다. “자네, 윤리를 책으로, 소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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