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문학동네|408쪽|1만4500원

김언수 작가. 사진 조선일보 DB
김언수 작가. 사진 조선일보 DB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 ‘밀레니엄(전 3권)’은 21세기 최초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다. 탐사 보도 전문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라르손은 탈고한 뒤 어이없게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지난 2005년 출간돼 대박을 터뜨렸다.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번역돼 지금껏 9000만 부 가량 팔렸다. 이 소설 이후 국제 출판시장엔 ‘스칸디나비아 누아르’ 붐이 일었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작가들의 스릴러가 잇달아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이젠 ‘코리안 누아르’ 시대가 열리는 걸까. 지난해 1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새로운 스칸디나비아 누아르: 한국 작가들이 스릴러 장르를 혁신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미 국내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를 굳힌 정유정의 스릴러 ‘7년의 밤’과 더불어 당시 영어로 번역되고 있던 김언수의 소설 ‘설계자들’을 대표 주자로 선뜻 꼽았다.

김언수는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서 당선하며 등단해 장편 ‘캐비닛’으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았다. 이른바 본격 문학에 속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대중적 지명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그가 2010년에 발표한 스릴러 ‘설계자들’은 무려 22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국내에선 2만여 부 정도 팔린 것으로 알려진 이 소설은 해외에서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설계자들’ 불어판은 지난 2016년 프랑스 추리문학대상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드디어 ‘설계자들’ 영어판이 최근 출간됐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가디언이 ‘설계자들’ 서평을 일제히 게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청부살인자의 소름 끼치는 초상을 보여 준다”고 평하면서 “독서광과 괴짜, 청부살인업자를 뒤섞어 풍성하면서 심란한 혼합물을 만들어냈다”고 풀이했다. 가디언은 “시치미 뗀 어조로 즐겁게 전개되는 이 소설은 유머와 폭력 그리고 때때로 지혜도 보여준다”고 평했고, 뉴욕타임스는 “암살자와 미치광이의 광시곡(狂詩曲)을 목쉰 음성으로 들려준다”고 전했다.

영어판 출간을 맞아 최근 국내에선 이 소설의 개정판이 나왔다. 출판사 측은 “기존 판본에서 문장과 내용을 전체적으로 다듬었으며, 결말 또한 보강해 기존 판본을 읽은 독자라도 한층 더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소설에서 설계자는 암살을 기획하는 비밀 조직을 가리킨다. 소설의 특징을 압축한 대목을 소개하면 이렇다. “언제나 핵심은 총을 쏜 자가 아니라 총을 쏜 자 뒤에 누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기나긴 암살의 역사에서 총을 쏜 자 뒤에 누가 있는지 명백히 밝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람들은 오즈월드가 케네디를 죽였다고 믿는다. 하지만 멍청이 오즈월드 따위가 어떻게 케네디를 죽일 수 있었겠는가.

언론과 경찰이 오즈월드의 주변을 열심히 뒤적거리는 동안 케네디를 암살한 거대한 배후와 암살의 설계자들은 느리고 조용한 걸음으로 뿔뿔이 흩어져 안전한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며칠 뒤 어릿광대였던 오즈월드가 또 다른 삼류 암살자들에 의해 계획대로 제거되면 경찰은 ‘이제 사건의 핵심이 죽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잖아!’ 하는 표정으로 슬슬 사건을 종결시킨다. 세상은 한 편의 거대한 코미디다. 그러니 경찰은 총을 쏜 자만 찾아내면 되고 설계자들은 총을 쏜 자만 제거하면 된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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