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은 시대극을 표방했지만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사진 쇼박스
‘마약왕’은 시대극을 표방했지만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사진 쇼박스

‘마약왕’은 왜 혹평을 받고 있을까. ‘리얼을 피하고 염력을 걸렀는데 마약왕을 못 피했다’는 말이 소셜미디어에서 유행일 정도로 ‘마약왕’에 대한 평은 박하다. 네티즌만 그런 게 아니라 영화 평론가들도 ‘마약왕’에 입을 모아 탄식을 내뱉고 있다. 안타깝게도 ‘리얼’도 보고 ‘염력’도 보고 끝내 ‘마약왕’까지 보고 만 필자 역시 영화관을 나오며 이들의 의견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 배우의 타이틀을 거머쥔 송강호와 ‘내부자들’을 만든 우민호 감독의 만남으로 제작 단계부터 주목받은 걸 생각하면 예상치 못한 결과다. 마약이라는 휘발성 강한 소재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송강호의 연기가 더해졌는데도 이런 반응이라면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뭐가 문제였을까.

‘마약왕’이 개봉하면서 소환된 명작이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1983년 작인 ‘스카페이스(Scarface)’다. 쿠바에서 온 난민 토니 몬타나가 미국 마이애미 일대를 주름잡는 마약왕으로 성장하고 이후 파멸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몬타나 역할을 맡은 알 파치노의 연기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고 있다.

개봉 전부터 ‘마약왕’은 ‘스카페이스’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우민호 감독이나 송강호도 여러 인터뷰에서 ‘스카페이스’에 대해 언급했다. 실제로 ‘마약왕’에는 ‘스카페이스’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여럿 나온다. 이두삼의 저택 풍경이나 총격전 장면, 배두나와의 드라이브 장면 등이 ‘스카페이스’를 빼닮았다.


시대극 표방했지만 캐릭터는 시대 겉돌아

하지만 두 영화는 결정적인 지점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스카페이스’는 1980년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1980년이나 마이애미는 중요한 설정이 아니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1932년에 개봉한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를 리메이크했는데 50년이라는 시간 차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두 영화는 결을 같이한다. 감독과 주연 배우가 달라졌을지언정 갱스터 영화라는 핏줄은 같기 때문이다.

반면 ‘마약왕’은 갱스터 영화가 아닌 시대극을 택했다. ‘마약왕’은 1970년대 부산을 중심으로 한국~일본~대만으로 이어지는 마약 커넥션을 다루고 있다. ‘스카페이스’와 달리 시대극을 택한 ‘마약왕’에서 ‘1970년대’와 ‘부산’이라는 시공간적인 설정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진다. 영화는 부패한 독재정권 덕분에 이두삼의 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묘사한다. 유신을 앞세워 장기 집권을 노리던 박정희 정권 치부의 끄트머리쯤에 이두삼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영화의 설명이다.

부산이라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수출에 매진해야 했던 그 시절, 부산은 일종의 신성불가침 지대였다. 한국을 살찌우기 위해 배에 실려 부산항을 오가는 수많은 물건 사이에 이두삼이 만든 히로뽕도 섞여 있었고, 이 또한 수출보국이라는 미명 아래 모두가 눈을 감았다. “일본에 뽕 팔믄 그게 바로 애국인기라”하고 큰소리치는 이두삼의 목소리는 어쩌면 그 시절의 보편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마약왕’은 과감하게 갱스터 영화의 공식을 벗어던지고 시대극을 택했다. 문제는 이 영화를 아무리 뜯어봐도 시대극을 택한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시대극은 시공간의 배경과 등장인물의 삶이 찰떡같이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배경을 알려주기 위한 설정이 억지스러워서도 안 된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일터로 향하고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게 일상이다. 일상을 살면서 올해가 2019년인지, 지금 있는 곳이 영등포인지 끊임없이 곱씹는 사람은 없다. 배경은 풍경으로 남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모든 것이 풍경 속에 담겨 있어야 한다.

‘마약왕’은 여기서 실패했다. 이두삼이라는 인물이 1970년대 부산에서 활동한다는 설정은 시놉시스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가 그려내는 이두삼의 삶에서 1970년대와 부산이라는 배경은 설정으로만 남았을 뿐 관객에게 개연성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마약왕’이 ‘범죄와의 전쟁’이나 ‘내부자들’을 연상케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80년대가 배경인 ‘범죄와의 전쟁’이나 21세기가 배경인 ‘내부자들’에 이두삼의 캐릭터를 집어넣어도 어색할 게 없다. ‘마약왕’은 시대극을 표방했지만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이두삼은 시대를 겉돌고 있다.

때마침 시대극의 표본이라고 할 만한 영화가 ‘마약왕’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다. ‘마약왕’과 비슷한 1970년대 초 멕시코의 한 지역인 로마를 배경으로 한다. 백인 중산층 집안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하녀 클레오의 시선으로 그 시절 멕시코의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일들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는 마약이나 총격전처럼 눈길을 사로잡는 소재가 없다. 임신과 결별, 이혼, 가족애같이 우리의 삶에 익숙한 이야기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영화의 배경이 1970년대 멕시코라는 걸 알리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정치적 사건인 ‘성체축일 대학살(우익무장단체가 대학생 시위대를 진입하는 과정에서 120여 명이 살해당한 참극)’도 아주 짧게 스치듯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이 짧은 장면 그리고 1970년대 멕시코라는 풍경이 등장인물의 삶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자리해 있는 걸 영화를 보는 내내 느낄 수 있다.


한 시대 대변하는 건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

‘마약왕’이 실패한 걸 ‘로마’는 어떻게 해낸 걸까. 그 차이를 이해하려면 ‘로마’가 알폰소 쿠아론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알폰소 쿠아론은 ‘로마’를 만들면서 송강호 같은 대배우를 원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실존 인물과 닮은 사람을 찾으려 멕시코의 시골 마을을 찾아 헤맸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로케이션과 소품은 알폰소 쿠아론이 집에서 직접 가져왔거나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어떤 시대를 잘 표현하는 시대극이 되려면 역설적으로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마약왕’이 실패하고 ‘로마’가 성공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마약왕’의 이두삼은 외롭다. 영화에는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어느 하나 이두삼과 공명하지 않는다. 스토리 진행에 필요한 도구적인 역할만 하고 퇴장한다. ‘로마’의 클레오가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과 교감하며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성장하는 모습이 ‘마약왕’에는 없다. 이두삼은 혼자 노력하고 혼자 떵떵거리다 혼자 쓰러진다. 아무리 마약왕이라도 이런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갱스터 영화였다면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시대극은 다르다.

이두삼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토이의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떠나온 여기는 어딘 건지 알 수가 없어 길 잃은 아이처럼 무서워 나만 멀리 왔을까 다들 저기서 내린 듯한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움에 떠는 노래 속의 주인공이 딱 이두삼 같다. 이두삼과 함께했던 그 많은 등장인물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이두삼과 송강호의 잘못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 영화엔 이 술

압생트(Absinthe)

한국에서 마약은 불법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대마초가 합법화되는 추세지만 한국에서는 한참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마약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많은 예술가가 마약처럼 마셨던 술이 있다. 바로 ‘녹색의 악마’로도 불리는 압생트다.

압생트는 허브계 약초를 바탕으로 한 스피리츠다. 주재료인 쓴 쑥에 함유된 투존이라는 화학물질 때문에 불안, 경련, 환각 같은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반 고흐, 오스카 와일드, 랭보 같은 예술가들이 즐겨 마신 술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최근에는 칵테일 바에서 어렵지 않게 마실 수 있다.

혼자가 된 이두삼의 외로움을 느껴보고 싶다면 토요일 밤 이태원의 칵테일 바에 혼자 가서 압생트를 마셔보자. 어떤 의미로든 외로움은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종현 조선비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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