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님에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는 파독 간호보조원 출신의 세계적 화가다. 사진 노은님
노은님에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는 파독 간호보조원 출신의 세계적 화가다. 사진 노은님

예술이란 무엇인가. 돈과 메시지와 그림, 노동의 진위가 엇갈려 소용돌이치는 미술계에서 노은님이라는 특별한 화가를 목격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심플’ 전시회에서였다. 노은님의 그림에는 원시적인 생명력이 흘러넘쳤다. 한 번의 붓질로 완성된 고독한 오리, 화염 같은 노을 속에 번뜩이는 검은 개, 태곳적 바다 생물, 고함치는 원숭이, 산으로 올라간 거북이, 나비가 되려는 인간…. 누군가는 그것을 독일 표현주의의 절정이라 했고, 누군가는 그것을 수묵으로 그린 시라 했다. 언젠가 지구에서 잉태됐거나 퇴화했을 그 사랑스러운 무명의 돌연변이는 노은님의 화폭에서 제 생긴 대로 화평했다.

여전히 예술적 ‘가임 능력’이 탁월한 72세 화가 노은님을 추적했다. 노은님은 독일 서남부 헤센주 미헬슈타트에 있었다. 1000년이 넘은 고성에 딸린 극장을 개조한 작업실에서 매일 ‘어떻게 놀까’ 궁리하며. 55세에 만나 결혼한 쌍둥이 같은 남편과 함께였다. 남편 게르하르트 바치(75)는 국립함부르크조형예술대학에서 30년, 노은님은 20년을 교수로 지내다 은퇴했다. 

그녀에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는 파독 간호보조원 출신의 세계적 화가다. 1970년 23세에 독일로 갔고 3년간 함부르크 항구 근처의 시립병원에서 뱃사람을 돌봤다. 고국에서나 독일에서나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병석에 누운 그녀를 찾아온 간호장이 침대 밑에 숨겨둔 스케치북을 발견해 전시회를 열어줬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노은님의 전시. 장욱진과 2인전으로 8월 26일까지 계속된다. 사진 노은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노은님의 전시. 장욱진과 2인전으로 8월 26일까지 계속된다. 사진 노은님

26세부터 인생 대반전이 시작됐다. 함부르크국립예술대에 다니게 됐고, 요제프 보이스, 백남준 등 거장들과 함께하는 ‘평화를 위한 비엔날레’에 초대되고, 동양인 최초로 유럽의 국립미술대 교수가 됐다. 붉은 배경에 검은 개를 그린 ‘해 질 무렵의 동물’은 카프카의 ‘변신’과 나란히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 유명한 함부르크 알토나 성요한니스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대작업, 서울 강남 LG타워 유리벽화, 강원도 문막 오크밸리교회 스테인드글라스가 노은님의 작품이다. 


23세에 간호보조원으로 독일로 떠나서 유럽 화단의 거장이 됐다. 인생 자체가 매우 극적이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처럼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다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진 않았다. 밤 근무하느라 힘이 들긴 했어도 다들 잘해줬다(웃음). 무엇보다 우리 집이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좋은 환경이었다. 아버지가 동물과 아이들을 좋아해서 우리 집은 동물원 같고 고아원 같았다(웃음). 집 주변엔 산과 개천이 많아 물고기 잡고 열매 따 먹으며 놀았다. 아버지는 항상 호기심에 가득 차서 ‘이거 봐라, 저거 봐라’ 하셨고, 하지 말라는 게 없으셨다. ‘너희들은 나쁜 짓 안 할 애들이니 참견 안 하련다.’ 9남매에게 다 그러셨다. 억압 없이 자유롭게 컸다.”

애들 기르고 동물 기르는 재미로 사셨던 아버지는 개집에 신문지 깔고 들어앉은 소녀 은님을 위해 전등을 달아주고 커튼을 쳐줬다. “그 안에서 개 한 마리와 비둘기를 데리고 살았다. 물고기를 잡아 우물에 넣은 후 겁 없이 우물 벽을 타고 내려가 밥을 주고 오면, 어머니는 ‘물고기가 어떻게 물을 따라 여기까지 왔을까?’라며 의아해하셨다(웃음).”

멋진 유년이 평생을 결정했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자유롭게 컸다. 독일에 가기 전엔 포천에서 결핵 관리 요원으로 일했다. 거기서도 일 끝나면 문맹 노인들을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독일 간호사 모집 광고를 본 거다.”

성격과 운명을 바꾸려면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갑작스러운 타지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겠다.
“9명이 한 병원에 배속됐는데, 같이 모여 노래 부르며 시름을 잊었다. 그때 부른 노래가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이었다. 그런데 그 곡이 또 크리스마스 번안곡이라 한여름에 캐럴 부른다고 독일인들이 어찌나 신기해들 하던지(웃음). 젊었으니 그렇게 저지르고 살 수 있었다.”

간호장의 주선으로 병원 회의실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그림을 팔았다. 그림값으로 받은 2000마르크가 왠지 훔친 돈 같아 동생들 학비에 보태 쓰라고 한국으로 보냈다. 당시 받던 월급이 400마르크였다. 전시회 뉴스가 함부르크 지역 신문 1면에 났고,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의 제자였던 한스 티먼의 제자가 됐다. 파독 간호사는 3년 만에 세상에 없던 그림을 그리는 동양의 화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생명체를 그렸다. 어떤 형태가 몸속에서 태동하다가 선생의 손끝을 뚫고 나오는 것 같다. 혹시 아이를 낳는 느낌인가.
“출산이라면 순산도 있고 난산도 있을 텐데, 난 난산은 없다. 제일 쉽게 나오는 게 그림이다.”

창작의 고통, 그런 게 없다는 말인가.
“그만큼 고생했다. 이젠 가벼워진 거다. 화가는 이를테면 어부와 같다. 어부가 그물이 찢어지게 고기를 잡는 날도 있고 빈 그물로 돌아오는 날도 있다. 계획도 없고 보장도 없다. 즉흥적으로 그려서 쉬운 것 같아도 서너 번은 뒤집는다.”

인생 고생이라면, 어떤 부분이 그리 고통스럽던가.
“여자 혼자 외국에서 뿌리내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종일 걸어도 아무도 내게 말 걸지 않는 날이 많았다. 어린애 취급도 많이 받았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있는 땅이 어딘가?’ 그런 질문을 많이 했다. 병원 일도 하기 싫어서, 사는 게 꼭 벌 받는 것 같았다. 더 무시무시한 건 자고 일어나도 같은 날이 반복된다는 거였다.”

벌 받는 것 같던 마음을 다스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결론은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거다. 내가 벌 받고 사는 게 언젠가는 그림으로 나올 거다. 그게 작품의 힘으로 나올 거다. 지금 가볍게 그리는 건 그때 벌을 잘 받아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적게 먹으면 가는 똥 싸고 많이 먹으면 굵은 똥 싸는 거다.”

노은님이 처음 그림을 그린 건 어머니 때문이었다. 독일로 가기 전, 9남매를 낳고 마흔둘에 돌아가신 엄마 사진을 들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실을 찾아갔다. 

초상화료가 너무 비싸 그리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확대경 놓고 땀구멍 베끼기 세 번 만에 그만뒀다. 비싼 물감이 아까워 독일에서도 심심하면 끄적거리던 게 지금의 그림이 됐다.

가끔 어머니 생각을 하나.
“어머니가 그러셨다. ‘머리 검은 모든 짐승은 고난을 안고 사니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더 오래 살았으면 다정하게 지냈을 텐데. 내게 예술적 자원을 주고 가셨다.”

종교는 없나.
“없다.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이유는 내가 자연의 흐름 안에서 소멸한다는 사실이 무서워서다.”

여백을 남기면 아시아의 그림, 여백을 칠하면 유럽의 그림이 된다고 했다. 독일 표현주의의 색면과 동양의 선이 한 작가의 세계에 공존하는 게 매우 흥미롭다.
“섞어야 그림이 된다. 독일도 기독교 나라지만, 이젠 교회는 텅텅 비고 부처 장식이 인기다. 종교세 내는 게 아까워서 교회를 빠진다. 부처는 서양에 와 있고 예수는 동양에 가 있는 셈이다.”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나는 자연의 나뭇잎 같은 존재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우연의 산물이고, 내가 없어도 자연은 순환한다’ 고. 그 뒷말이 걸작이더라(웃음). ‘뭔가 찾을 필요도 없다. 잃어버린 것이 없으니까.’ 어떻게 그 정도로 가벼워질 수 있나.
“사는 게 금방이잖나(웃음). 나는 정말 나뭇잎 하나하나가 세상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때가 되면 없어졌다가 봄이 되면 새순이 돋아나듯. 일전에 한 어린이가 하나님께 하는 질문을 읽은 적이 있다. ‘유명한 사람들은 다 TV에 나오는데, 하나님은 왜 안 나와요?’ ‘하나님이 만든 동물·식물은 다 봤는데 왜 더 새로 만들지는 않으세요?’ 나도 그 비슷한 생각으로 산다. 언젠가 지구에 살다 없어졌거나 다시 나타날 수도 있을 생물을 내 식으로 막 그리면서 말이다(웃음).”

우주의 정원사로 사는 게 행복한가.
“행복이 뭔가. 배탈 났는데 화장실에 들어가면 행복하고 못 들어가면 불행하다. 막상 나오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행복은 지나가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어떤 감정이 중요한가.
“눈떴는데 아직도 하루가 있으면 감사한 거다. 어떤 일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편한 세상이 된다. 매일 벌어지는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수고스럽겠지만, 그냥 받아들여라. 날씨처럼. 비 오고 바람 분다고 슬퍼하지 말고,  해가 뜨겁다고 화내지 말고…. ”

만약 20대 때 독일인 간호장이 선생의 그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하하하. 그 사건과 크게 연관 짓지 않는다. 어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처럼 살라고 태어난 사람이다. 요제프 보이스가 그랬다. 아이들을 위해 감자를 깎으면서 내가 지금 하는 게 조각이 아니고 뭐냐고(웃음).”

억압이 느껴지지 않는 노은님 작품들. 힘이 넘치는 드로잉과 색면을 가득 채운 동물 페인팅이 시선을 끈다. 스케치 없이 한 번에 그려내는 노은님은 “예술은 문이 열리는 순간 잠시 머물다 떠나는 손님 같다”고 했다. 사진 노은님
억압이 느껴지지 않는 노은님 작품들. 힘이 넘치는 드로잉과 색면을 가득 채운 동물 페인팅이 시선을 끈다. 스케치 없이 한 번에 그려내는 노은님은 “예술은 문이 열리는 순간 잠시 머물다 떠나는 손님 같다”고 했다. 사진 노은님

바람 불듯 훌훌한 말투로 노은님이 말했다. 문득 인터넷 블로그에서 본 노은님에 대한 일화가 생각났다. 전시회 보러 시골에서 새벽 첫차 타고 딸아이와 갔더니 노은님 화가가 직원들 몰래 그림을 신문지에 싸서 주더라고. 갖고 싶어도 너무 비싸 울상 짓던 차에 놀라운 선물을 받았다고. 노은님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너무 멀리서 전시회를 해서 모녀를 고생시켰잖아. 내가 뭐라고….”

천사 미카엘의 도시. 미헬슈타트 고성 옆 300년 된 극장에 노은님이 산다. 72세 개구쟁이는 가끔 파티를 열어 이웃을 초대한다. 그 파티엔 공주도, 시장도, 사장도 오고 동네 약사와 골프장 캐셔, 이주 노동자도 온다. 앞마당의 오리와 뒷산의 여우, 사슴과 멧돼지가 왔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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