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성동은 우리식 한자쓰임말에 충실했다. 사진 조선일보 DB
작가 김성동은 우리식 한자쓰임말에 충실했다. 사진 조선일보 DB

국수(國手)
김성동|전 5권|솔출판사|각 1만5000원

소설가 김성동(71)이 집필 27년 만에 대하소설 ‘국수(國手)’를 완간했다. 제목만 보면 바둑의 최고수를 다룬 소설로 보이지만, 바둑 소설은 아니다. 물론 바둑 천재로 꼽히는 소년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는 이 소설이 품고 있는 여러 고수 중 한 명에 그친다. 검술, 궁술, 판소리, 서예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에 능한 달인들이 종횡으로 얽히면서 이야기를 짜나가기 때문이다.

시대 배경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거쳐 동학농민혁명 전야(前夜)에 이르는 19세기 조선이고, 서사의 중심 무대는 충청도 내포(內浦) 지역이다.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 따르면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 곳으로 꼽혔다. 작가 김성동의 고향인 충남 보령을 비롯해 예산, 서산, 당진, 홍성을 품고 있다.

소설에 쓰인 언어는 당연히 충청도 방언이다. 서술이야 표준어로 꾸며졌지만, 인물들 간의 대화는 대부분 충청도 사투리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했다. 가령 “마님 심긔가 븨편허신 듯헤서 웃으시라구 한번 해본 소립니다유. 보십쇼. 그런 것덜은 하나두 웂지않습니까유”라는 식이다. 그 발언 중 ‘븨편’은 ‘비편(非便)’의 충청도 발음이고, ‘거북함을 느낌’이란 뜻이다. 작가 김성동은 흔히 쓰이는 ‘불편(不便)’이 일본식 한자어라면서 일제의 표기법에 오염되기 이전 조선 시대에 통용된 ‘비편’을 되살렸다. 김성동은 평소 ‘가족’ 대신 ‘식구’, ‘결혼’ 대신 ‘혼인’, ‘삼계탕’ 대신 ‘계삼탕’이라고 쓰는 게 본디 우리식 한자쓰임말에 충실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작가는 조선의 한자어와 토속어를 바탕으로 판소리 또는 사설(辭說) 같은 문체를 구사하면서 소설의 실감(實感)을 높이려고 했다.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는 것이 백성이려니,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어야만 왈(曰) 선비려니” 하는 식이다.


양반과 노비의 언어 차이 재현

소설 ‘국수’의 남다른 묘미는 사라져가는 겨레말을 들꽃 찾아내듯이 재발견하는 즐거움이다. ‘에멜무지로(뒤끝을 바라지 않고 헛일하는 셈으로 해보아)’ ‘중동무이다(하던 말이나 일을 가운데서 끊어 무지르다)’ ‘해찰 부리다(쓸데없이 다른 짓을 하다)’ ‘바기롭다(교묘하다)’ 등. 다행히 단어 풀이를 한 각주가 달려있기 때문에 독자가 굳이 국어사전을 일일이 뒤지지 않아도 된다.

소설 ‘국수’는 기존 역사 소설과 비교할 때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다. 우선, 계급에 따른 언어 차이를 의도적으로 분명히 했다. 양반, 농민, 아전, 기생, 노비가 저마다 쓰던 어휘와 말투를 재현했다. 각 계급 구성원들의 의식구조와 생활양식도 웅숭깊게 묘사했다. 민중생활사가 중심인 소설이지만, 혼탁한 현실에 비판적인 선비와 고승(高僧)의 생각과 몸짓을 그들의 언어로 되살려낸 문자 향기가 그윽하다. 유교와 불교가 조화를 이룬 삶의 이치를 궁리해 온 작가의 체험이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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