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 1920년대 등장한 조선의 근대적 디벨로퍼들은 큰 한옥을 매입해 넓은 부지를 작게 쪼개 한옥을 지으면서 과거 한옥보다 살기 편리하도록 기능적으로도 개량했다. 사진 조선일보 DB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 1920년대 등장한 조선의 근대적 디벨로퍼들은 큰 한옥을 매입해 넓은 부지를 작게 쪼개 한옥을 지으면서 과거 한옥보다 살기 편리하도록 기능적으로도 개량했다. 사진 조선일보 DB

산업화가 일어나기 전 대부분의 도시는 소비도시의 경향을 보인다. 행정, 교육, 군사, 관광 등과 관련된 소비 시설이 밀집돼 있고, 도시 경제 구조 중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크다. 도시에 공장이 세워지고,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는 기능이 가득한 지역으로 변하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영국의 도시는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산업도시로 변모하고 인구 폭증을 경험했다. 마찬가지로 서울도 20세기에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대규모 인구 증가를 경험했다. 그리고 이런 인구 증가는 새로운 유형의 주택을 탄생시켰다.

서울은 20세기에 두 번의 산업도시화를 겪었다. 과거 20세기 전반기의 경성은 1920년을 기점으로 산업도시로 변모하면서 큰 폭의 인구 증가를 경험했다. 20세기 후반엔 한국전쟁을 겪은 후 서울이 폐허로 변하고 1960년대 이후 국가주도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다시 한번 산업도시화 과정을 겪었다.

경성방직(현 경방)의 역사를 보면 서울에서 나타난 두 번의 산업도시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에서 유학한 인촌 김성수는 주식 2만주를 발행하고 1인 1주 운동을 벌여 자금을 모아 1919년 경성방직을 설립했다.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다. 경성방직은 1930년대 영등포에 공장을 설립했다. 

현재 경성방직의 공장 부지엔 타임스퀘어가 들어서 있다. 2009년 개장한 영등포 타임스퀘어는 한국 최초의 쇼핑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19세기에 형성된 서구의 산업도시는 20세기 중반에 들어와 공장이 도시 외부로 이전하면서 서비스 도시로 변모했다. 이때 과거 공장으로 쓰였던 부지는 쇼핑몰이나 아파트 단지와 같은 다른 용도로 개발됐다. 서울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경험했다.

두 번의 산업화 과정에서 서울엔 독특한 주택유형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것이 1920년대 북촌 일대에 등장한 한옥집단지구와 1970년대 노동자 숙소로 지어진 가리봉동 일대 쪽방촌이다.

1920년대 개발된 북촌의 한옥은 다른 주택유형과 큰 차이점이 있다. 19세기 서구 산업도시의 노동자와 이민자 주택 그리고 가리봉동 일대의 쪽방은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거주자의 위생과 주거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다. 반면 북촌의 한옥은 거주자를 고려해 개발됐다.

유럽에서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와 서민 주거 문제가 심각할 때 미국 뉴욕에 지어진 테너먼트 건물 외관. 위치는 맨해튼의 파크 애비뉴다. 사진 위키피디아
유럽에서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와 서민 주거 문제가 심각할 때 미국 뉴욕에 지어진 테너먼트 건물 외관. 위치는 맨해튼의 파크 애비뉴다. 사진 위키피디아

19세기 중·후반, 뉴욕은 유럽의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뉴욕은 주택 부족 문제, 특히 저소득 서민주택 부족 현상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저소득 서민을 수용할 수 있는 주택 건물이 건설됐다. ‘테너먼트(Tenement)’라고 불리는, 한국의 다세대주택과 비슷한 건물이다. 테너먼트는 ‘제리 빌더(Jerry Builder)’라고 불린 디벨로퍼들에 의해 개발됐다.


뉴욕 테너먼트, 볕 안 드는 방도 있어

제리 빌더들은 경제적 이윤만을 추구했다. 이들 디벨로퍼들은 당시 주택에 대한 규제가 매우 부실했던 틈을 이용해 집들을 잘게 쪼갰다. 가급적 방 개수를 최대한 늘려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 건축물은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 규제가 부실했기 때문에, 도면에 표시된 ‘D(Dark)’ 방과 같이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고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방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방까지 가기 위해 다른 사람이 거주하는 방을 지나쳐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환기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유아가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테너먼트 평면도. 사진 김경민 교수
테너먼트 평면도. 사진 김경민 교수

20세기 초 조선의 근대적 디벨로퍼들이 큰 한옥을 부수고 작은 한옥 여러 채를 건설한 것까지는 제리 빌더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들이 제공한 한옥은 과거 한옥의 문제점을 개량한 것이었다. 당시 근대적 디벨로퍼가 건설한 도시형 한옥은 경성이라는 도시에 가장 적합한 형태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좁은 면적에 알맞은 효율적인 주택 배치와 내부 구조 변경에 집중해 전통한옥의 독립적인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트여 있는 ‘ㅁ’자형 구조에 모두 압축됐다.

특히 과거보다 높아진 위생 개념을 바탕으로 구조 변화와 공간의 확장이 이뤄졌다. 위생 시설인 화장실이 도시형 한옥의 내부로 들어왔고, 부엌이 입식(立式) 구조로 바뀌었다. 압축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외부공간이었던 대청마루는 외부에 덧문을 추가해 내부 공간인 거실로 바꿨다. 수납공간이 작은 전통한옥의 문제점은 도시형 한옥의 바깥 처마까지 방의 벽면을 확장해 추가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다.

당대 대표적 디벨로퍼인 기농 정세권은 1925년 ‘경성편람(경성의 사회, 문화, 산업계 대표들이 각자 분야를 설명한 책)’에 기고한 ‘건축계에서 본 경성’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1920년 이후 등장한 근대형 한옥은 주거 환경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근래의 경향은 개량식을 요구하는 모양입니다마는, 개량이 별것이 아니라, 종래 협착(狹窄)하던 정원을 좀 더 넓게 하여 양기가 바로 투입되고 공기가 잘 유통하여 한열건습(寒熱乾濕) 관계를 잘 조절함에 있습니다. 또한, 외관도 미술적인 동시에 사용상으로도 견확(堅確)하고 활동에 편리하며 건축비와 유지비와 생활비 등의 절약에 유의함이 본사의 사명인가 합니다.”

1920~30년대 지어진 작은 한옥이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한 이유다.


▒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저서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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