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메이어로위츠의 사진집 ‘모란디의 정물’ 표지(왼쪽 사진), ‘모란디의 정물’에 찍힌 화가 조르조 모란디의 정물화. 사진 김진영
조엘 메이어로위츠의 사진집 ‘모란디의 정물’ 표지(왼쪽 사진), ‘모란디의 정물’에 찍힌 화가 조르조 모란디의 정물화. 사진 김진영

벼룩시장을 둘러보다 크게 쓸모는 없어 보이지만 왠지 끌리는 물건을 발견한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어디서 만든 물건인지, 누가 쓰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물건에 깃든 손때와 세월의 흔적은 어떤 물건에 형용하기 어려운 끌림을 부여한다.

조엘 메이어로위츠(Joel Meyerowitz ·1938~)는 우연한 계기로 정물 사진을 찍게 됐다. 본래 그는 대표적인 거리 사진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거리의 리듬을 재즈음악과 유사하다고 여기며 1960년대 35㎜ 소형 카메라로 미국 뉴욕 거리를 누빈 사진가다. 그에게 사진은 거리에서 찰나의 순간에 빚어지는 마법 같은 우연한 장면을 포착하기 위한 도구였다.

어떤 사진가들은 평생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진가들은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조엘 메이어로위츠는 후자다. 1970년대 후반에 그는 복잡한 도시를 떠나 미국 동부 해안 지역인 케이프 코드(Cape Cod)로 향했고, 소형 카메라가 아닌 대형 카메라를 택했다. 그는 거리 사진에서 추구하던 우발성을 포기하고 대신 풍부한 컬러를 선택했다. 그는 해변의 인물, 폭풍우가 몰아칠 것 같은 하늘, 오두막과 뗏목 등 여름철 해변에서 마주칠 수 있는 대상들을 아름다운 컬러로 담아냈다.

1938년생인 그는 현재 80을 넘긴 나이가 됐다. 고령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새로운 종류의 사진을 선보였다. 그것은 바로 정물 사진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걸까? 토스카나(Toscana‧이탈리아 중부 지역의 주)에 있는 농장에서의 삶이라니. 80세가 됐고, 사진이 지닌 힘은 다시금 내가 한 번도 흥미롭다고 여겨보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자극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로 스튜디오를 옮겨 온 그는 2012년 어느 날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찌그러진 양철통과 녹이 슨 주석통을 발견한다.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이상하게 아름다운’이 물건들을 사온 그는 친구가 가지고 있던 낡은 캔버스 소재 천을 배경으로 인생에서 최초로 정물 사진을 찍어본다. 정물 사진에 담긴 사물의 흔적에 매료된 그는 과거에는 크게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던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20세기 초 미국 사진가)의 피망 사진으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한다. 거리 사진, 풍경 사진을 거쳐 80세의 나이에 조엘 메이어로위츠는 정물 사진의 세계에 새로 들어선 것이다.

정물 사진에 빠진 조엘 메이어로위츠가 새로 이해하게 되고 매료된 화가가 있었다. 이탈리아 볼로냐에 살았던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1890~1964)다. 조르조 모란디는 40여 년간 자신의 집 테이블 한쪽에 앉아 정물화를 그렸다. 그는 몇 개의 병과 단지, 그릇 등의 정물을 놓고 간소하고 담백한 정물화를 완성했다. 각기 다르게 생긴 용기(容器)들을 나란히 놓기도 하고 서로 겹쳐 놓기도 하며 완성한 정물화는 그 어느 하나 서로 같은 것이 없다.

모란디의 정물화에 매료된 조엘 메이어로위츠는 볼로냐에 있는 모란디의 생가에 찾아간다. 그리고 화가가 40년간 앉아서 그림을 그린 테이블의 같은 자리에 앉아서, 오직 방에 들어오는 따뜻한 채광만으로 꽃병, 조개, 깡통, 색이 칠해진 병, 마른 꽃, 모자 등 모란디가 남기고 간 260여 개의 정물을 미니멀하게 사진에 담았다. 그는 한 사진에 오로지 하나의 사물만을 담았고, 동일한 배경 속에서 빛과 그림자를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이 시리즈를 완성해 2016년 사진집 ‘모란디의 정물들(Morandi’s Objects)’을 출간했다.


화가의 생가에서 사진 작업

이 사진집에는 조엘 메이어로위츠가 쓴 짧은 글이 담겨 있다. ‘일상의 숭고함(The Ordinary Sublime)’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먼지가 쌓여있고 평범한 이 물건들은 모란디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미스터리의 일부였다. 이 평범한 물건들이 어떤 힘이 있기에 모란디는 평생에 걸쳐 이 물건들에 매료된 걸까?”라고 질문한다. 모란디의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고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먼저 조엘 메이어로위츠는 이 사물들이 형식적인 면에서 아름다움을 지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 물건들은 직사각형, 정사각형, 타원형, 원통형 등 각자 다양한 형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이어서 다음의 사실을 발견한다. “이 물건들이 한때 아무리 순수하고 깨끗했더라도, 매일매일의 삶은 이 물건들에 상처를 남기고 흔적을 남겼다”는 진부하고 당연한 사실 말이다. 화가 모란디는 바로 이러한 일상적인 물건들에 깃든 시간의 힘에 매료돼 평생 낡은 물건들을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사진가 조엘 메이어로위츠는 모란디가 느꼈을 감정에 동화돼 모란디의 정물에 ‘일상의 숭고함’이라 이름 붙이고 이를 사진으로 표현했다.

조엘 메이어로위츠의 정물 사진에, 그리고 모란디의 정물화에 깨끗한 새 물건이 놓여 있다고 상상해보자. 다른 요소가 동일하더라도 결과물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빛이 닿고 바람이 닿고 먼지가 닿아 사물의 모난 모서리가 조금은 부드럽게 변하고 거기에 편안함이 깃든다. 

모란디와 동향(同鄕)으로 볼로냐 출신인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그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모란디의 그림을 통해) 당신은 세상을 사랑하게 되고, 아무리 초라한 것일지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이것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만드는 빛과 그림자를, 그리고 이것에 쌓여있는 먼지를 사랑하게 된다. 모란디는 정신성의 정점에, 물질의 시인으로서 도달했다.”

어느 공간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분위기는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물건이 크게 결정한다. 사진집 ‘모란디의 정물들’의 뒤편에는 이 사진들이 찍힌 공간인 조르조 모란디의 생가 모습이 한 장 담겨 있다. 이 사진을 통해 이 공간에 있었을 조르조 모란디와 그의 흔적을 찾아간 조엘 메이어로위츠를, 그리고 이곳을 방문한 자기 자신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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