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타계한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 그는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고 말했다. 사진 조선일보 DB
8월 8일 타계한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 그는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고 말했다. 사진 조선일보 DB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난다|1만4000원|344쪽

8월 8일 73세로 타계한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는 정년퇴임 이후 글쓰기의 정점(頂點)을 맞았다. 그의 유려하고 원숙한 글솜씨가 문단의 울타리를 벗어나 일반 독자들과도 소통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연구한 학자로서 그 분야의 고전으로 꼽히는 문학작품들을 새롭게 우리말로 번역함으로써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의 문학도들까지 두고두고 읽을 한글 텍스트를 남기기도 했다.

황현산은 문학비평가 중에선 보기 드물게 일반 독자가 많았다. 그가 2013년 생애 처음으로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난다 출판사)’를 냈더니, 보기 드문 현상이 벌어졌다. 젊은 시인들의 입소문을 바탕으로 열혈독자층을 형성하더니 점차 책깨나 읽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꼽혔다. 현재까지 7만부가량 찍었다고 한다.

황현산은 세상을 뜨기 두 달 전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같은 출판사에서 냈다.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로트레아몽의 시집 ‘말도로르의 노래’ 번역본도 함께 냈다. ‘밤이 선생이다’는 문학비평가의 입장에서 한국 사회를 냉철하게 해부한 칼럼집에 가깝지만,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비롯해 곳곳에 인용된 문학 언어에서 풍기는 문장의 향기가 돋보였기 때문에 인문학적 산문집으로 평가받았다.


프랑스 문학 번역 등에 평생 바쳐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은 그 책의 뒤를 이어 2013~2017년에 쓴 산문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밤이 선생이다’와 마찬가지로 시사적인 글이 전면에 배치돼 있지만, 그 책에 비해 문학 작품에 관한 서평이나 문학 번역을 둘러싼 논란처럼 문학적 현상을 다룬 산문이 더 많다.

황현산은 “나는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라며 “특히 먼 나라의 문학일 뿐인 프랑스 문학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늘 고뇌해왔다”고 말했다. 그가 논문이나 비평이 아닌 산문집으로 숱한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것은 외국문학 전공자로서 자기 분야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지식인으로서 현실발언의 품격을 높였기 때문이다.

황현산의 고민은 늘 언어에서 출발했다. 그의 문장 중에서 “외국어로는 아는 것만 말할 수 있지만 모국어로는 알지 못하는 것도 말한다”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일생을 프랑스 문학 독해와 연구뿐 아니라 이것을 뛰어난 우리말 솜씨로 번역하는 데 바쳤다. 그는 번역을 통해 모국어가 새로운 충격을 흡수해 언어체계가 더 풍성해지기를 바랐기에, 번역어 선정에 남다르게 고심했다. 그러나 외국어에 아무리 통달하더라도, 자신의 무의식 깊은 곳까지 표현하는 데는 모국어만 한 게 없다. 그런 모국어의 세계가 바로 시인들의 언어이기에 황현산은 한국 현대시를 섬세하게 읽어내는 비평을 주로 써내려갔던 것이다. 그는 특히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난해하기로 소문난 2000년대 이후 젊은 시인들의 텍스트를 애정 어린 분석으로 풀어낸 비평을 잇달아 썼다. 그의 시 비평은 시 못지않게 우리말의 낯선 심연을 탐구했다. ‘모국어로는 알지 못하는 것도 말한다’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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