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트 피셰츠리더 1973년 BMW 입사. 1993~99년 BMW CEO, 2002~2006년 폴크스바겐 CEO, 2021년 3월 다임러 감독이사회 의장 취임 예정 / 사진 블룸버그
베른트 피셰츠리더
1973년 BMW 입사. 1993~99년 BMW CEO, 2002~2006년 폴크스바겐 CEO, 2021년 3월 다임러 감독이사회 의장 취임 예정 / 사진 블룸버그

다임러(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는 지난해 12월 3일 베른트 피셰츠리더(Bernd Pischetsrieder·73)를 올해 3월 31일 자로 감독이사회 의장에 선임한다고 밝혔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 등 독일 언론은 “전혀 예상 못 한 인사(人事)”라고 입을 모았다. 이유는 피셰츠리더가 이미 잊힌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1990~2000년대 BMW와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지만, 이미 15년 전 현역에서 물러난 상태다. 그런 그가 최고 프리미엄 자동차 회사의 최고 의사 결정 기관 수장으로 깜짝 컴백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피셰츠리더는 독일 3대(大) 자동차 회사의 CEO 혹은 이사회 의장을 역임한 유일한 인물이 된다.

피셰츠리더가 다임러 의장에 오르는 것은 이 기업 경영 전략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다임러가 자동차 또는 정보기술(IT) 업계와 깜짝 제휴에 나서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독일 기업은 실무진으로 구성된 경영이사회와 경영진을 감독하는 감독이사회로 이원화된 구조다. 감독이사회는 경영이사회 멤버의 인사권을 쥐고 회사의 중대 결정을 승인한다.

다임러의 실무 경영은 2019년 디터 제체의 배턴을 이어받은 올라 칼레니우스(52) CEO가 총괄하고 있지만, 칼레니우스 CEO 등의 경영을 감독하고 중대 결정을 승인하는 구심점 역할은 피셰츠리더가 맡게 되는 것이다.


피셰츠리더, 독일 車 3사의 경영·감독 이사회 수장 모두 역임

그가 다임러 의장에 오르리라 생각한 업계 인사는 거의 없었다. 경쟁 기업 간 이동이 많은 독일에서도 자동차 3사의 경영·감독이사회 수장을 모두 경험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게다가 다임러 감독이사회 의장엔 2019년 다임러 CEO에서 퇴임한 제체가 이미 내정돼 있었다. 내정을 번복하면서까지 예상 밖 외부 인사를 들인 것이다. 현지 언론은 그 이유로 최근 벤츠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제체 전임 CEO가 취했던 과도한 확대 노선이 실적 악화의 원인이 됐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커진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인사의 방향은 과거보다 미래에 쏠려 있다.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응, 혹은 기업 간 제휴를 위한 포석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피셰츠리더의 의장 선임 발표 직후, 그에게 배턴을 넘기게 된 만프레드 비숍(Manfred Bischoff·78) 현 다임러 의장은 “피셰츠리더의 전문성과 경험은 다임러에 매우 큰 가치가 있다”면서 “그가 제품 포트폴리오의 전동화(電動化)를 포함해 회사를 디지털화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셰츠리더의 선임은 직원들에게도 충격이었다. 다임러는 CASE(연결·자율주행·차량공유·전동화) 시대에 경쟁력을 높이려면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힌 상태였는데, 과거에 구조조정으로 악명 높았던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다임러의 실무 경영은 올라 칼레니우스(52) CEO가 총괄하고 있다. 다임러 그룹 최초의 비(非)독일인(스웨덴인) 수장이다. 그를 감독하고 중대 결정을 승인하는 구심점 역할은 피셰츠리더가 맡는다. 사진 다임러
다임러의 실무 경영은 올라 칼레니우스(52) CEO가 총괄하고 있다. 다임러 그룹 최초의 비(非)독일인(스웨덴인) 수장이다. 그를 감독하고 중대 결정을 승인하는 구심점 역할은 피셰츠리더가 맡는다. 사진 다임러

폴크스바겐에서 대규모 구조조정 밀어붙였다가 실패한 이력

피셰츠리더의 이력은 다임러가 그를 이사회 의장에 앉힌 뒤 어떤 일을 벌일지 유추해보는 데 많은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는 생산 효율 향상이 전문인 ‘BMW 맨’이었다. BMW 본사가 있는 뮌헨에서 태어나 뮌헨공대를 졸업했고 1973년 BMW에 입사해 생산기획 엔지니어로 일했다. 1982~8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BMW 공장에서 생산·개발·구매·물류 전반을 총괄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승진을 거듭해 1990년 경영이사회 멤버가 됐고, 1993년 불과 마흔다섯에 BMW CEO에 올라 1999년까지 재임했다.

당시 피셰츠리더는 그의 장기를 발휘해 BMW를 고수익 체질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취임 이듬해 영국 로버를 거액에 인수하면서 계획했던 브랜드 다변화·확장 전략이 로버의 적자 누적으로 무너졌고, 이에 책임을 지고 1999년 사임했다.

그러나 피셰츠리더의 능력을 눈여겨본 폴크스바겐 창업자 가문의 실력자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2000년 그를 폴크스바겐 품질관리 담당이사로 영입했다. 당시 폴크스바겐은 고질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로 신음 중이었는데, 피셰츠리더가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었다.

그는 2002년 폴크스바겐 CEO에 올라 비용 절감에 집중했다. 노조와 협상을 이어 가면서 2005년 생산직 대규모 감축에 나섰다. 그는 2012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았지만,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노조와 피에히 등과 갈등을 겪다가 2006년 피에히에 의해 경질됐다.

다임러가 피셰츠리더를 복귀시킨 것은 결국 다임러가 또 한 번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변화·제휴를 위해 글로벌 업계 최고위층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며, 특히 과거에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오랜 경험을 쌓은 인물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유추해 볼 수 있다.


다임러를 시작으로 올해 자동차·IT 업계 합종연횡 본격화할 수도

다임러에 올해 큰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지난해 말의 한 사건에서도 기인한다. 발단은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작년 12월 독일 최대 미디어 그룹 악셀 슈프링어 CEO 마티아스 되프너와 대담에서 ‘경쟁사 인수합병(M&A)도 검토하고 있냐’는 질문에 “누군가가 내게 ‘테슬라와 합치고 싶다’고 말했다면 그와 대화했을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머스크는 또 “적대적 M&A는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는 ‘합의를 바탕으로 한 M&A는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후 며칠 뒤 로이터를 시작으로 외신에 ‘테슬라가 M&A를 한다면 다임러가 최선일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GM·포드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폴크스바겐은 자체적으로 전기차에 올인하고 있으며 BMW는 가족(크반트 가문 소유) 기업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임러가 적당하다는 내용이었다.

현재로서 테슬라와 다임러의 제휴는 추정일 뿐이지만, 역사적으로 다임러가 변화에 민감했던 기업인 것은 확실하다. 1990년대 후반 글로벌 재편 붐이 크게 일었던 적이 있었는데, 생산 규모가 연 400만 대는 돼야 살아남는다는 ‘400만 대 클럽’ 가설이 유행했다. 규모가 안 되면 연구개발비를 감당하고 수익성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발 빠르게 나선 곳이 다임러였다. 당시 위르겐 슈렘프 CEO는 1998년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룹을 만들었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2000년 미쓰비시와 현대자동차 지분(10%)도 인수해, 독일·미국·일본·한국 회사를 연결하는 ‘세계 자동차 연합’을 만들기도 했다(현대차와 지분 관계는 2004년 해소).

크라이슬러 인수는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다임러는 무려 12년 전인 2009년에 테슬라 지분 10%를 인수하는 제휴를 단행하기도 했다(이후 지분 매각으로 제휴 종료). 그만큼 다임러는 미래에 항상 촉각을 세우고 생존 방안을 모색하는 기업이다.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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