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롤드컵’ 결승전을 보기 위해 인천 문학경기장에 2만6000명의 팬이 몰렸다. 사진 라이엇게임즈
‘2018 롤드컵’ 결승전을 보기 위해 인천 문학경기장에 2만6000명의 팬이 몰렸다. 사진 라이엇게임즈

11월 3일 오후 3시 한국 KBO 리그 SK와이번스의 홈구장으로 유명한 인천 문학경기장 입구에 다다르자 게임 캐릭터 복장을 한 사람, 중국 국기를 들고 있는 사람 등이 ‘S’ 자 모양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계단 위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것만 봐도 어림잡아 몇 천 명은 돼 보였다. 야구나 축구, 육상 등 전통 스포츠 행사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팬들과는 차림새부터 달랐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시작되는 세계 최대 e스포츠 대회 ‘2018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s·롤) 월드 챔피언십(롤과 월드컵을 합쳐 ‘롤드컵’으로 불림)’ 결승전을 보기 위한 팬들이었다.

e스포츠는 게이머가 게임하는 것을 관전하는 것을 말한다.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전처럼 현장에서 대형 스크린과 고품질 영상 장비를 통해 ‘직관(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하는 것)’할 수도 있고, 게임방송이나 인터넷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즐길 수도 있다. ‘왜 남이 게임하는 것을 보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통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는 것처럼 볼거리가 풍부하다. 게임 경기를 해설해주는 게임 캐스터부터 게이머들이 게임하고 있는 주요 장면을 경기장 메인 스크린에 띄워주는 방송 기술, 심지어 이들이 게임할 때 오류가 나지 않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심판도 있다.

롤드컵의 볼거리는 본격적인 결승전 시작 전부터 나왔다. 이날 오프닝 행사에는 스크린에 난데없이 3차원 기술로 구현된 걸그룹 캐릭터들이 나타나 마치 K-팝(K-Pop) 같은 노래, 랩, 댄스를 선보였다. 문학경기장을 가득 채운 2만6000명의 팬들은 환호했다. 이들이 스크린 속에서 공연하는 중간, 실제 이들 목소리의 주인공인 가수들이 무대에 등장해 라이브를 선보이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무대에서는 가수들이, 스크린에서는 가수와 3차원 캐릭터가 함께 어울려 노래하는 매우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현실의 게이머들이 가상 세계에서 전투를 벌이는 e스포츠와 한국의 대표 콘텐츠 K-팝을 접목한 오프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롤드컵은 세계적으로 1억 명(월간 기준)이 즐기는 인기 게임 ‘롤’로 경기를 펼치는 것이어서 e스포츠 행사 중에서도 최대 규모로 꼽힌다. 지난해 중국에서 열린 롤드컵을 시청한 시청자 전체의 누적 시간 총합은 12억 시간에 달했으며, 롤드컵 결승전만 5760만 명이 실시간으로 경기를 시청했다. 올해 롤드컵의 경우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수준을 약간 넘어설 것으로 게임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올해 롤드컵 결승전 입장권은 예매가 당일 마감되면서 30만원짜리 암표가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은 롤 경기력 면에서 세계 최강으로 꼽힌다. 최근 5년간(2013~2017) 열린 롤드컵에서 연속으로 우승한 것도 한국이었다. 현재 한국의 최고 e스포츠 선수로 꼽히는 이상혁(SK텔레콤의 T1 소속)은 롤이 배출한 스타 중 하나다. 2014년에 이어 4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올해 롤드컵에 한국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건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올해 롤드컵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한국 강팀들이 모두 8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결승전이 진행되는 모습.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게임 장면이나 선수들의 표정 등을 관람하는 구조다. 사진 라이엇게임즈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결승전이 진행되는 모습.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게임 장면이나 선수들의 표정 등을 관람하는 구조다. 사진 라이엇게임즈
올해 결승전에는 중국과 유럽 팀이 올랐다. 이 때문에 많은 중국 팬이 경기장을 찾아 중국 팀을 응원했다. 사진 블룸버그
올해 결승전에는 중국과 유럽 팀이 올랐다. 이 때문에 많은 중국 팬이 경기장을 찾아 중국 팀을 응원했다. 사진 블룸버그

“중국 e스포츠 시장 올해 1억6300만달러”

롤드컵 결승전의 스포트라이트는 대신 중국에 돌아갔다. 이날 결승전에서 2011년 초대 롤드컵 우승팀인 유럽의 ‘프나틱’과 중국의 ‘인빅터스 게이밍(IG)’이 맞붙었기 때문이다. 중국 팬들은 문학경기장을 찾아 플래카드와 LED 피켓 등 저마다 준비한 응원도구를 들고 ‘IG’를 연호했다.

이에 부응하듯 IG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한 세트당 30분 만에 상대를 격파, 1시간 반 만에 3 대 0으로 완승했다. 접전을 펼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유럽팀이 무기력하게 무너지면서 올해 롤드컵 결승 경기는 역대 롤드컵 승부 중 가장 짧은 시간에 승부가 갈린 경기로 기록됐다. 중국이 롤드컵에서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우승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은 “한국 e스포츠의 유일한 경쟁력은 ‘선수’인데, 중국이 최근 고액 연봉을 주고 한국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한국만의 선수 양성 과정’을 빠르게 습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우승팀 중국 IG는 김정수 감독을 비롯해 주장 송의진, 강승록, 이호성 등 주력 선수들이 모두 한국인 용병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다. 롤드컵 결승전을 참관한 한 국내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중국이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없을 것’이란 말은 이제 옛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게임 전문 시장조사기관 뉴주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e스포츠 시장 전체 매출 규모는 5400만달러(약 600억원)로 중국(1억6300만달러·약 1800억원)에 비해 크게 못 미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plus point

中 첫 우승 이끈 한국 용병

송의진 선수
송의진 선수

“매우 오랫동안 우승을 갈망해 왔다. 지칠 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마다 프로게이머라는 이 직업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팬들께서 격려해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롤드컵 결승전이 끝난 직후 인터뷰에서 IG의 주장이자 한국 용병 선수인 송의진 선수가 울먹이며 중국어로 우승 소감을 끝마쳤을 때 현장을 가득 메운 중국 팬들은 환호했다.

이 장면은 중국 여러 매체와 소셜미디어에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2014년 12월 KT 롤스터에서 중국 IG로 이적한 뒤 4년 가까이 별다른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송의진이 롤드컵에서 팀의 우승을 주도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극적 스토리와 그의 유창한 중국어 실력이 특히 관심을 받았다. 한 중국의 e스포츠 팬은 “한국 용병 선수가 중국어로 자신의 벅찬 감정을 유창하게 표현해내다니, 그가 이미 중국 팀원들과 서로 깊게 의지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롤드컵 우승은 마치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과 마찬가지’ ‘십대들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반응도 많았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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