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미국 위스콘신주(州) 제네바 호숫가의 고급바 ‘척스’. 위스콘신주립대 화이트워터캠퍼스에 다니던 스무 살 테리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곳에서 바텐더로 일했다. 척스를 찾는 젊은 트레이더들을 동경하던 ‘흙수저’ 청년은 단골손님이었던 퇴직 트레이더 빈센트 슈라이버(Schreiber)와 친해지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트레이더 세계에 뛰어들게 됐다. 대학까지 중퇴하고 고향인 시카고로 돌아가 구한 첫 일자리는 주당 58달러 받던 ‘러너(runner)’. 전자 거래가 도입되기 전 트레이더들의 주문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사람이다. 그리고 1년 후 테리는 드디어 트레이더의 빨간 재킷을 입게 된다.

이 청년이 바로 세계 최대 거래소 시카고상업거래소(CME)그룹을 이끄는 테런스 더피(Duffy·58) 회장이다. 2002년 44세 나이로 회장직에 올라 14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는 미국 금융업계를 대표하는 거물 중 한 명으로 워싱턴 정가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 경제 전문 방송 CNBC는 그를 최근 25년간 세계경제를 대표하는 비즈니스 리더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그는 요즘 말로 흙수저 출신이다. 흔히 말하는 명문대 아이비리그 출신도 아니고, 그마저도 졸업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미국 정·재계를 움직이는 인물이 된 것이다. 그는 단계별로 차곡차곡 성장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CME그룹을 대표하는 곡물 트레이더로 성장했다. 1995년 CME그룹 이사회 임원으로 선출됐고, 1998년 부회장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2002년 회장직에 올랐다.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로 많은 사람은 타고난 친화력을 든다. 전임자인 레오 멜라메드(Melamed) CME그룹 명예회장은 회고록에서 ‘더피는 트레이딩 현장의 일을 소상히 알고 있었고, 모든 사람의 호감을 샀다. 차기 회장감으로 완벽한 인물이었다’고 적었다.

2016년 4월 12일 미 시카고의 금융가(街) ‘루프’ 중심에 있는 CME그룹 본사에서 만난 그는 잔뜩 긴장한 마음을 1분 만에 풀어버릴 정도로 친화력이 대단했다. ‘적(敵)이 없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실감 날 정도였다.


처음 일을 시작한 계기는.
“슈라이버에게 먼저 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는 나보다 겨우 열 살 많을 뿐이었지만 이미 트레이더 생활로 큰돈을 번 후 은퇴한 상태였다. 그에게 제발 나를 트레이더의 세계로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다. 부푼 꿈을 안고 일을 시작했지만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트레이더가 된 후 선물거래를 하기 위해 어머니를 설득해 집을 담보로 5만달러를 대출받았다. 하지만 나는 피트(트레이더들이 거래하는 단상)에 선 지 몇 주 만에 5만달러를 잃었고, 이 빚은 순식간에 15만달러로 늘어났다. 방법이 없던 나는 슈라이버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1달러도 주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명성으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보증을 서준 뒤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해서라도 돈을 갚으라고 했다. 그때부터 3년간 낮에는 트레이더 일을 하고, 밤에는 바텐더 등 아르바이트를 3개씩 하며 돈을 갚았다. 이 일로 트레이더의 삶에서 가장 잊기 쉬운 ‘절제’를 배웠다. 이때 배운 그 교훈은 아직도 내 몸속에 박혀 있다. 슈라이버는 나를 이쪽 세계로 이끈 은인일 뿐만 아니라 평생의 멘토가 돼 줬다.”

타고난 친화력의 비결은.
“가장 중시하는 건 열린 마음을 갖고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와 회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기 좋아한다.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그들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걸 배우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객과 직원,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까지 되도록 많이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특히 나는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있다. 그만큼 그들이 나에게 무엇이 옳고, 내가 무엇을 했으면 좋겠고, 무엇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하는 것을 듣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CME그룹에는 당신 외에도 말레이시아 이민자 출신인 푸핀더 길 CEO 등 입지전적인 인물이 많은 것 같다.
“CME그룹뿐만이 아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튼튼한 기반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것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 튼튼한 기반은 든든한 가족이다. 돈이 많다는 뜻이 아닌,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있는 든든한 가족을 말한다. CME그룹은 말단 직원부터 CEO가 될 기회를 주진 않는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먼저 많이 배우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지름길(short cut)’부터 찾으려고 하고, 그것만 따라가려고 한다. 기회를 이해하고 잡는 건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 있다. 그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그들이 할 일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더피 회장을 인터뷰한다고 하니, 많은 시카고의 유력 인사가 정계 진출은 언제 할 건지 물어보라고 했다.
“하하. 주변에서 그런 제안이 많이 들어오긴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열세 살짜리 사내 쌍둥이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보내는 생활이 매우 행복하다. 자식들이 잘 자랄 때까지 앞으로 5년간은 CME그룹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리고 CME 직원들과 주주들에게 어제보다 더 나은 기업을 남겨 주고 떠나고 싶다.”


▒ 테런스 더피 Terrence A. Duffy
CME그룹 회장


/ 정리 :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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