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렘피카(Lolita Lempicka). 우리에겐 낯선 이름일지 모르지만 파리지앵들은 롤리타 렘피카란 브랜드의 향수에 열광하고 있다.
태평양이 해외 시장 진출의 초석으로 다지고 있는 롤리타 렘피카의 성공 전략을 취재했다.

 리타 렘피카의 첫 향수. 이 향수의 핵심 포인트는 용기의 장식들이다. 맵시 있는 장식들은 내면파 화가들의 분위기와 작은 숲속의 바로크적 느낌을 준다. 애닉 메나르도(Annick Menardo)는 도발적인 숫처녀의 은은한 자취를 법랑으로 된 사과 모양의 병에 담아 놓았다.  감초향, 보랏빛 사탕 냄새, 버찌의 솔직함 등으로 말이다(Le Monde, 1997. 5. 4, 5).

 롤리타의 부티크는 시적이고, 바로크적이다. 롤리타 렘피카 향수는 1년에 50여개의 향수가 런칭되는 프레스티지시장에서 샤넬, 랑콤, 크리스챤 디오르 같은 기득권의 거대 메이커와 경쟁하는 파워를 드러낸다(Vogue, 1999. 8).

 롤리타 렘피카의 오묘한 향 속에 숨겨진 마케팅 파워…. 엔젤, 샤넬 No.5에 이어 파리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향수, 성숙한 여성적 이미지의 오리엔털 플로랄 계열과 투명하고 달콤한 감초향에서 소녀의 순수한 이미지를 한껏 느낄 수 있다(Elle, 1999. 8).



 프랑스에서의 성공은 글로벌화 지름길

 <르몽드>부터 <보그>까지 다양한 미디어로부터 격찬을 받고 있는 롤리타 렘피카(Lolita Lempicka)는 프랑스 향수시장에서 시장점유율 2.8%를 차지하고 있는 4위 브랜드다. 1위는 엔젤(Angel 4.4%), 2위는 샤넬 No.5(3.9%), 3위는 자도르(J'adore 3.2%)다. 특히 롤리타 렘피카는 젊은 파리지앵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2004년 12월 뷰티·패션 관련 전문 컨설팅 & 리서치회사인 ROSAE가 파리 지역에 거주하는 15세에서 60세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향수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 젊은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평균 연령 22세의 젊은 여성들은 롤리타 렘피카(1위)와 자도르(2위), 엔젤(3위)을 좋아했고, 평균 연령 36세의 중년층 여성들은 샤넬 No.5(1위), 롤리타 렘피카(2위), 트레저(Tresor, 3위)를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향수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파리지앵들의 여심을 흔들고 있는 롤리타 램피카가, 그러나 태평양이 글로벌화의 초석으로 1997년 프랑스에서 출시한 향수 브랜드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매년 수십종의 새로운 브랜드가 쏟아져 나오는 프랑스 향수시장에서 롤리타 렘피카는 단기간에 시장에 안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프랑스 향수시장에서 점유율 1%가 넘으면 성공한 것으로 간주되는데, 롤리타 렘피카는 출시 후 1년8개월만인 1998년 11월에 점유율 1%를 넘었다. 이후에도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2001년에는 2%대를 넘어섰고, 2002년말부터는 2.6∼3.0% 정도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4, 5위를 차지하고 있다. 태평양 관계자는 “2%, 3%란 수치가 미미해 보일지 모르지만 프랑스 향수시장에서 점유율이 2.5%가 넘는다는 것은 대단한 실적”이라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점유율 1위인 엔젤이 4.4%, 2위인 샤넬 No.5가 3.9%이고, 이밖에는 점유율 3%를 넘는 브랜드가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태평양측의 자부심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롤리타 렘피카의 성공에 힘입어 태평양의 프랑스 현지법인(Pacific Europe S.A)은 2002년부터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고, 2004년 4200만유로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 2004년 4월29일에는 안정적인 물량 공급을 위해 샤르트르(Chartres)에 대지 3만평 규모의 초현대식 설비를 갖춘 공장을 새롭게 준공했다.

 롤리타 렘피카를 통한 태평양의 프랑스 안착에 대해 강희승 서울증권 애널리스트는 “프랑스는 화장품과 향수에 관한 한 세계적인 경쟁력(글로벌 스탠더드)을 확보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의 성공은 글로벌화의 지름길이다. 이러한 화장품의 본고장에 진출, 입지를 구축했다는 것은 EU라는 거대 시장 공략과 세계 시장 진출의 근거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갖고 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순’‘리리코스’ 등의 좌절 속에서 싹 튼 롤리타 렘피카의 성공

 태평양 롤리타 렘피카가 단기간에 성공을 거둘 수 있은 요인으로 김주헌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장의 흐름을 잘 파악한 외부적 상황(Timing)과, CEO의 경영 철학 및 현지 경영자의 역량이란 내부적 조건(Condition), 그리고 이와 함께 일관된 컨셉트하에 마케팅 전략을 추진해온 점(Consistency)이 주요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태평양의 해외 진출이 처음부터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몇 차례의 좌절과 시행착오 끝에 얻어진 값진 결과다.

 태평양의 프랑스 진출이 처음 이뤄진 것은 1988년 대리점을 통한 기초 화장품 ‘순(SOON)’의 수출이다. 그러나 태평양은 1995년에 ‘순’의 현지 판매를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매장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진열돼 있는 상황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란 원산지가 갖는 이미지의 한계였다.

 ‘순’을 통한 프랑스 시장 진출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 태평양은 1990년 현지의 기존 공장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현지법인 PBS(Parfums Beaute de Suh)를 설립하고, 1992년부터 ‘리리코스(Lirikos)’란 자체 브랜드를 프랑스에서 출시했다. ‘순’이 성공치 못한 주요 원인으로 한국산 제품으로는 프랑스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작다는 판단을 하고 ‘메이드 인 프랑스’의 신규 브랜드를 검토한 것. 여기엔 수입 화장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는 데 대한 방어적 측면도 작용했다. 태평양이 생산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리리코스’는 ‘메이드 인 프랑스’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프랑스에서 태평양이 자체 생산한 제품을 국내로 역수입하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두번째 진출 또한 ‘순’처럼 참담할 정도는 아니지만 실패로 판정이 났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제품 선정의 문제로 기초 화장품 부문의 기술력이 세계 수준이라고 자부했기 때문에 프랑스 시장에 스킨케어 제품을 내놓았지만 기초 화장품은 각국 소비자들의 피부 특성에 맞춰 발달한 자국 브랜드가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전세계 화장품 유행을 선도하는 프랑스는 향수나 색조화장품이 주력인 시장이었다.

 여기에 조직 운용 측면에선 한국인이 상위직을 차지하고 의사 결정 권한도 본사에 집중시킨 시스템이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자율성과 분권화된 조직 문화에 익숙한 현지인들과의 갈등과 현지인들에 대한 동기 부여 실패, 그리고 프랑스 문화와 시장에 대한 한국인 경영자들의 이해와 경험 부족이 효율적인 조직 운용을 저해했던 것이다. 여기에 현지 공장 경영 및 마케팅을 한국인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점차 알려지게 된 것도 현지 소비자들이 ‘리리코스’를 한국과 연관시켜 ‘메이드 인 프랑스’ 효과를 반감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롤리타 렘피카는 바로 이런 ‘순’과 ‘리리코스’의 실패(?)란 값진 경험 속에서 싹이 텄다. 우선 향수란 화장품시장에서 감성적인 영역에 속하는 상품군을 택한 것부터 과거의 실패를 답습치 않겠다는 학습 효과의 결과다.



 향에 대한 호불호 극렬… 틈새시장 적극 공략

 김봉환 태평양 국제사업팀장은 “당시 패션 및 향수업계에서 니치 플레이어(Niche Player:특정 세분 시장 진출자)들이 잇단 성공을 거두고 있는 시장 상황을 주목했다. 향수시장은 또 저비용 고효율의 산업이다. 여기에 파급 효과가 큰 것도 향수시장에 진출하게 된 계기”라고 말한다.

 특히 일본의 대표적 화장품업체인 시세이도(Shiseido)가 택한 전략과 성과는 태평양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당시 시세이도는 일본 시장에서의 독보적 위치를 바탕으로 세계 화장품업계 4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세계적인 브랜드로 대접받지는 못하던 상태였다. 타개책의 일환으로 시세이도가 택한 전략이 바로 1990년 프랑스에 향수 전문 회사인 BPI(Beaute Prestige International)를 설립하고, 1992년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그리고 1993년 장 폴 고띠에(Jean Paul Gaultier) 등의 유명 패션디자이너의 이름을 활용한 향수를 출시한 것.

 시세이도를 벤치마킹해 디자이너 향수 브랜드 도입을 결정한 태평양은 우선 여성 향수를 출시키로 하고 패션디자이너 물색에 나섰다. ‘순’과 ‘리리코스’ 때의 경험으로 현지화 및 마케팅 전문가의 필요성을 인식해 온 서경배 사장은 이브 생 로랑, 유니레버, 이브 로셰, 크리스챤 디오르 등에서 화장품 마케팅 전문가로 명성을 쌓아 온 카트린 도팡(Catherine Dauphin)을 1995년에 영입하고 디자이너 선정 단계부터 권한을 대폭 위임했다.

 이 과정에서 태평양이 관심을 보인 디자이너가 바로 롤리타 렘피카다. 롤리타 렘피카는 당시 남성 디자이너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프랑스 패션업계에서 몇 안되는 여성 디자이너 중 한명이지만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었다. 프랑스 국내에서도 10%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여기에 롤리타 렘피카는 유니섹스 모드가 풍미했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여성적 아름다움, 특히 현대적 여성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트렌드와 배치되는 디자이너란 얘기다.

 롤리타 렘피카 사업을 관장하고 있는 태평양의 프랑스 현지 법인인 PLL의 카트린 도팡 사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롤리타 렘피카의 ‘여성적 아름다움’이란 독창적 가치를 주시했다. 세계의 패션, 뷰티산업은 갈수록 상업적인 면이 강해지고 창의성은 약해지고 있다. 우리의 마케팅 철학은 위험하더라도 창의성을 견지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전반적인 유니섹스 분위기 속에서도 ‘여성’으로 돌아가려는 흐름이 분명히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롤리타 렘피카는 백지 상태였던, 즉 우리가 도입코자 하는 향수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부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봉환 국제사업팀장도 이에 대해 “기존 시장을 따라가선 성공할 수 없다고 봤다. 위험도가 높아도 우리만의 색깔을 지니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롤리타 렘피카의 향에 대해서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혐오감까지 나타냈다. 좀더 일반적인 쪽으로 나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향수시장의 특성을 감안해 마니아적으로 향에 대해 반응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개성 있는 향으로 밀어붙였다”고 말한다.

 롤리타 렘피카의 성공 요인 첫번째는 틈새 시장을 공략한다는 기본 전략을 충족시킨 독창성이란 얘기다.



 조향부터 제품 진열까지 일관성 유지

 마케팅 전략의 일관성(consistency) 또한 롤리타 렘피카의 성공 요인이다. 제반 여건이 갖춰졌다고 해도 어찌 보면 그것들은 부수적일 수밖에 없다. 늘 그렇듯 성공의 핵심은 제품 자체에 있기 때문인데, 그걸 가능하게 했던 요소로 김주헌 교수는 마케팅 전략의 일관성을 들었다.

 전인수 태평양 프랑스지사장은 “전반적인 유니섹스 분위기에서 ‘여성적 가치로의 복귀’를 원하는 소비자 집단이 있다는 것을 리서치를 통해 파악했고, 이러한 미충족 욕구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아이디어·컨셉트·제품 개발 등을 일관되게 잡았다. 조향부터 판매까지 하나의 이미지가 유지될 수 있도록 모든 마케팅 전략에 일관성을 유지하려 했다”고 말한다.

 롤리타 렘피카의 향을 기존 향수와 차별되는 강한 향을 내면서도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리는 달콤한 감초꽃 향과 성숙하고 관능적인 이미지의 오리엔털 플로랄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려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용기 디자인과 제작에도 제품 컨셉트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여성성과 동화 세계를 지향한다는 컨셉트에 맞추기 위해 보편적인 사각 용기를 버리고, 금단의 사과를 형상화했다.

 전지사장은 “사과 꼭지 모양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꼭지에서 분사가 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는데 기술적으로 쉽지 않았다”며 당시를 추억했다. 결국 의료기기회사로부터 기술을 도입했다고.

 패키지의 디자인은 디자이너 롤리타 렘피카 부티크의 거울을 이미지로 활용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녀 또한 이 디자인을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꿈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었단다. 이러한 동화적인 이미지와 함께 여성적 분위기를 살리는 바로크 문양을 곁들였다.

 가격 결정은 전반적으로는 고가격, 프레스티지 향수 그룹 중에서는 중간 가격대 전략을 채택했다. 유통은 고급 제품으로서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선택적인 경로를 채택했다. ‘엑설런스클럽’ 위주로 유통을 시켰다는 이야기. 

 일관적이고 독창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점포 진열에서도 나타난다. 패키지 디자인 초부터 매장 진열시 눈에 잘 띈다는 점에 착안하여 선정한 녹색 계열의 패키지를 어느 브랜드 사이에 진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분석, 유통업자들에게 위치까지 정해 주었다. 

 광고 및 홍보에서도 외부 전문가 활용과 창의적이며 독창적인 접근 전략을 우선으로 했다. 사치&사치가 대행을 맡은 광고는 신문이나 TV 등 대중적 광고가 아니라 주타깃인 20∼30대 여성이나 패션모델, 디자이너들이 주로 보는 패션잡지 및 옥외 광고 등으로 나눠 실시됐는데 대개 성수기에 집중되었다. 대부분의 향수 매출이 본인 사용을 위한 직접 구매보다는 선물용 구입에 의해 이뤄지고 있고, 그 시기는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몇몇 시즌에 국한된다는 점을 주목한 때문이다.

 구전 마케팅도 적극 활용해 패션계의 주요 인사들에게 샘플을 제공, 트렌드 세터들을 통한 인지도 높이기에 주력했다. 대부분의 대형 회사들이 대형 이벤트 중심으로 신제품 홍보를 하는 데 비해 태평양 현지법인인 PLL은 6∼7명 정도의 기자들을 모아 디자이너 롤리타 렘피카와 합석케 해 식사를 하는 등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제품 설명을 상세히 하는 전략을 택했다. 결국 이 전략이 주효, 언론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현지 권한 위임도 핵심 성공 요소

 김주헌 숙명여대 교수는 그러나 롤리타 렘피카의 성공 요인으로 ‘현지화’와 ‘권한 위임(empowerment)’, 그리고 ‘핵심 분야 집중’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태평양 경영진의 해외 진출 전략과 오픈 마인드에 높은 점수를 준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서경배 사장은 “같은 실수를 똑같이 반복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태평양이 스킨케어 제품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몇 차례 실패를 통해 우리의 한계도 잘 알고 있다. 유럽, 특히 향수시장에서 성공하려면 현지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현지 법인인 PLL이 추진한 롤리타 렘피카 프로젝트에 있어서만은 본사 경영자로서보다는 투자자 정도로 역할을 제한하려 했다”고 말했다.

 도팡 사장도 “태평양 경영진이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우리에게 자율권을 주고 있다. 본사의 최고 경영층과 이곳 프랑스 법인 경영자들이 기본적인 전략 방향이나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품 개발이나 디자인, 마케팅 등 롤리타 렘피카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업은 현지 법인 PLL에서 독립적으로 수행됐다. 태평양 본사는 투자와 재무 부문만 관리하고 불필요한 참견을 배제함으로써 권한을 대폭적으로 위임한 것.

 롤리타 렘피카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태평양 본사와 프랑스 법인의 관계는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거의 모든 핵심 요직은 본사에서 파견한 주재원들로 채워졌고, 현지 채용인들은 수동적인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게 김봉환 국제사업팀장의 전언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킨 데에는 서경배 사장의 결단과 1997년 지사장으로 발탁된 전인수 현지법인장의 역할이 컸다. 전지사장은 취임 초부터 한국과 프랑스 직원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주재원 수도 점차 줄여 나가 현재는 생산직 포함 200여명의 직원 중 한국인은 지사장을 포함해 2명에 불과하다. 마케팅, 제품 기획 등 핵심 요직 모두를 프랑스인들이 맡고 있다. 태평양의 이러한 현지화 전략은 중국, 말레이시아,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프랑스 향수·중화권 라네즈·미주 아모레퍼시픽 시너지 효과 기대

 이제 롤리타 렘피카에 남은 과제는 ‘대박’에 가까운 성공을 “어떻게 유지하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다. 그에 대해 김봉환 국제사업팀장은 “일차적인 과제는 60%에 달하는 프랑스 시장과 향수 브랜드 의존도를 낮추는 일이다. 태평양과 현지 법인인 PLL은 당분간 향수 브랜드에 집중하되 이를 지역적으로 확산해 나간다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명성은 프랑스에서, 판매는 세계 각지에서 한다는 전략이다. 장기적으로는 수출 비중을 70%까지 높일 계획이다. 문제는 향수 브랜드 하나로 단시간에 국제적인 유통망을 갖춘다는 것은 규모의 경제에서 난제라는 점이다”라고 밝혔다. 이 문제는 결국 태평양의 글로벌 전략과 맞물리게 된다.

 태평양은 현재 ‘2015를 위한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특히 화장품 부문에서 “10개의 메가 브랜드를 육성, 세계 10대 화장품회사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는데 이를 달성키 위해선 아직까지 미미한 해외 매출 비중을 2009년까지 15%로, 그리고 2015년에 30%까지 끌어올리는 게 관건이다.

 태평양은 현재 해외 사업을 ‘롤리타 렘피카’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향수 사업, 홍콩·중국·싱가포르·대만 등에서 전개중인 아사아의 ‘라네즈(LANEIGE)’ 사업, 그리고 뉴욕에서 착실하게 기반을 다지고 있는 ‘아모레퍼시픽(AMOREPACIFIC)’ 사업 등 세 군데 거점을 중심으로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태평양의 국제 부문 이상우 부사장은 “궁극적으로는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세 거점이 교류하면서 시너지효과가 나도록 하는 게 목표다. 세 분야가 현지에서 확고한 거점을 확보한 후 형성된 유통망과 상품을 교류하면 폭발적인 성장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고 판단한다”며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Plus INTERVIEW

이상우 태평양 국제부문 부사장 

2015년 해외 매출, 총매출의 30% 목표



 국내 화장품업계에서 독보적 존재인 태평양은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에 맞서 국내 시장을 지킨 토종 화장품 기업이다. 이제는 수성을 넘어 역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할 준비를 하고 있다.

 프랑스의 롤리타 렘피카, 중화권의 라네즈와 설화수, 그리고 미주의 아모레퍼시픽을 축으로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해 2015년에는 매출의 30%가 해외에서 일어나도록 만들 계획이다. 해외 시장 개척의 수장인 태평양 국제부문 이상우(50) 부사장이 분주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부사장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롤리타 렘피카의 성공 전략, 그리고 태평양의 글로벌 전략에 대해 알아본다.



 롤리타 렘피카의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해외 매출 부문 확대다. 물론 롤리타 렘피카 브랜드를 활용해 기초 제품으로 확대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지만 당분간 핵심에 집중할 계획이다. 롤리타 렘피카가 유럽, 중동, 미주, 아시아 등 세계 70여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지만 프랑스 현지에서의 판매 비율이 높다. 해외 판매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중이다.



 롤리타 렘피카의 성공에 대해 태평양은 자본만 댄 것이 아니냐, 프랑스 사람들이 다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는데.  현지화 전략을 짜고, 유능한 현지 경영자를 영입하고 권한 위임을 한 것이 롤리타 렘피카의 성공 요인이라고 본다. 진정으로 중요한 결정은 태평양이 내렸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전략에 있어 롤리타 렘피카의 성과가 갖는 전략적인 의미와 시사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전략적 성과는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글로벌 브랜드를 보유하게 됐다는 점이다. 출시와 이후 마케팅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과 자신감도 향후 글로벌 전략에 있어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 자산이다.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 현지화 전략’은 향후 글로벌 전략에서도 당분간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태평양의 해외 법인장들은 모두 현지인들이다.



 현지화의 단점은 어떤 것이었나.  본사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키 위해 태평양의 문화를 현지에 접목시키는 등 다양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 작년에도 문화 인류학자를 동원, ‘태평양과 우리는 누구인가’란 테마의 연구 결과를 공유했다.



 프랑스 법인의 향후 전략 방향은 어떤 모습으로 전개할 계획인가. 프랑스 법인은 단순한 본사 자회사 관계가 아니라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파트너다. 아직은 한국에서만 실질적 효과를 얻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글로벌 유통망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며, 본사의 R&D와 자금, 프랑스 법인의 마케팅 역량, 아웃소싱이 가능한 외부 전문가 집단, 원산지 이미지 등이 향후 글로벌 전략에 있어 긍정적인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 10위권 화장품 기업이 되겠다는 비전을 밝혔는데.  해외 시장에서의 매출이 관건이다. 현재 점진적인 성장 추이를 보이고 있다. 2015년까지 30%가 목표인데 조만간 임계점에 도달, 비약적인 성장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때는 유럽, 아시아, 미주 등 독립적으로 추진되는 거점화 전략이 합쳐져 시너지효과를 내는 시점일 것이다.

 성장과 규모 확대를 위해 기존 기업이나 브랜드를 인수합병(M&A)하는 방안은.  감안하고 있다. 그만한 재무적 준비는 돼 있다. 문제는 인수가 아니라 이후 운용이 관건이다. 문화가 다른 회사를 인수해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관리와 통합 능력이 됐다고 판단되면 진출할 것이다. 



 올해 해외 시장에서 특히 진력할 지역은 어디인가.  한류 붐을 적극적으로 활용, 아시아 시장을 본격 공략하겠다. 라네즈를 성공적으로 진출시킨 홍콩을 아시아 시장의 중심지로 만들어 중국 시장을 본격 공략할 계획이다. 중국에선 10년 이내에 태평양을 중국 10대 화장품업체의 하나로 만들겠다. 싱가포르·베트남·대만·인도네시아·태국 등에 이어 말레이시아도 적극 공략할 예정이다.

최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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