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피곤하다. ‘월요병’이나 최근 등장한 ‘배터리족’이라는 말은 이러한 고단한 직장인을 대변한다. 하루를 콘크리트 벽 속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직장인에게 사무실은 감옥 같다. 하지만 최근 칙칙했던 사무실과 공장이 ‘웰빙’ 일터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쾌적한 환경을 갖춘 ‘웰빙’ 일터는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회사에도 높은 이익을 남기게 한다.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 퇴사하거나 휴직계를 제출한 30대 직장인을 ‘배터리족’이라고 일컫는다. 실직이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바닥이 난 몸과 마음을 다시 채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쓰는 경우도 많다.

배터리족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퇴사가 바로 생계 걱정으로 이어지는 직장인에게는 배부른 소리다. 하지만 피곤한 사무실로 다시 돌아갈 바에야 사표를 쓰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미 버릇이 돼 버린 일상 속에서 직장인은 쳇바퀴 돌 듯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직장인에게서 높은 업무 효율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쾌적한 사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고급 아파트 같은 실내, 호텔을 방불케 하는 화장실, 공원 같은 공장. 무엇보다 자연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녹지 공간은 직원들의 피로를 한번에 날려 보낸다.

딱딱한 회색빛의 사무실과 공장들이 예뻐지고 있는 것이다. 삭막한 공간이었던 사무실은 개성과 편리함을 겸비하면서 거듭나고 있다. 업무 중심의 사무실이 사람 중심으로 바뀌면서 직원들은 일 속에서 여유를 찾고 있다. 반복되는 비인간적인 일상이 이제는 즐거운 일상이 됐다. 즐겁게 일하는 직원들로 인해 이직률은 낮아지고, 생산성은 높아지고 있다.

예전 펀드매니저의 투자 원칙에 ‘화장실이 지저분한 회사에는 투자하지 마라’는 구절이 있었다. 최근 기업들이 근무 환경에 많은 신경을 쓰고, 깊은 인상을 주는 사무실이나 공장을 건립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사무실 업무 환경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직원들의 창조력과 생산성이 오히려 떨어졌다. 공장이나 기술 개발에 엄청난 투자를 쏟아 부으면서, 정작 사무 환경을 소홀히 함으로써 생산성 저하를 초래한 것이다.

사실 몸이 힘든 근무 환경에서 창조적인 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전문가들은 작업 환경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직원들의 생산성이 평균 20%가량 증대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투자한 돈은 두 배, 세 배로 돌아온다는 방증이다.

中企, 웰빙 일터에 대폭 투자

최근에는 중소기업들도 과거의 열악했던 사무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소기업들도 설비투자 못지않게 공장을 쾌적하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 지금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 인들이 “사무실에서는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다”거나 “사무실을 손님에게 보여주기 창피하다”고 말할 정도의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탄탄한 기술력과 재무구조를 가졌지만 취업 희망자들이 사무실을 한 번 둘러보곤 출근도 하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며 열악한 환경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근무 여건을 개선하려는 CEO의 의지가 강해지면서 대기업 못지않은 환경의 중소기업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

경기도 시화공단 정우이지텍의 김정진 사장은 “작업 환경 개선을 통해 종업원 만족도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일 수 있어 1석3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생명인 IT업체들도 직원들의 창의적인 발상과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쾌적한 근무 환경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인터넷 산업은 전통 산업과 달리 공장이나 생산설비 없이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사업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본사 일부를 제주도로 이전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제주지사는 통나무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내부는 카페처럼 예쁘게 꾸며져 있다. 더 나은 근무 여건 속에서 일하며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전의 회색 공장지대였던 구로디지털밸리가 IT기업에게 환영을 받는 것도 쾌적한 사무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다. 구로디지털밸리에 입주한 기업들은 테헤란밸리 등 과거 벤처기업들이 몰려 있던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대부분 사무 공간을 크게 늘릴 수 있다.

여기에 넓어진 사무 공간을 직원들의 재충전을 위해 과감하게 할애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넓어진 공간에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를 꾸미거나 도서관, 휴게실을 갖춘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구로디지털밸리에 입주한 ERP 전문기업인 한국하이네트는 러닝머신, 운동용 자전거 등 사설 헬스클럽 수준의 체력단련실을 운영하고 있다.

구내식당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과거의 칙칙한 회색 톤의 칼라를 벗고 산뜻한 색으로 입맛을 돋운다. 서울 서초동 삼성출판사의 구내식당은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삼성출판사의 직원들이 점심 때 구내식당으로 이용하는 ‘아이모나디아’는 밤에는 일반 손님을 상대로 레스토랑으로 운영된다.

일하면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곳도 늘고 있다. 모든 직원들이 문화를 가까이 접하고 정서적 풍요를 공유하면서, 그 속에서 엔도르핀과 창조력을 창출하고 있다. 이는 최근 문화·예술 경영이 대두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신도리코 서울본사 및 아산공장 곳곳에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미술품 1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뿐만 아니라 신도리코는 서울과 아산에 ‘신도리코 문화 공간’을 두고 철마다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는 황호섭 작가의 회화가 전시되고 있으며, 故 백남준 작가의 특별전도 예정돼 있다.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은 “미래에 대한 선행 투자로서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며 “기업이 성공하려면 문화에서 얻어지는 부가가치에 대한 시너지를 본받아야 한다”고 문화·예술 경영을 강조했다.

사례 1 ‘창의성 높여라’ 각종 부대시설 갖춰

NHN은 업계 최고 수준의 복지시설을 갖추고 있다. NHN은 2005년 8월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에서 경기도 분당 정자동 분당벤처타운으로 사옥을 옮기면서 직원들의 근무 여건 개선에 많은 공을 들였다.

우선 사무 공간을 역삼동 시절 5개 층에서 10개 층으로 늘리고 각종 부대시설을 확충했다. 인테리어는 돌, 나무, 흙 등을 소재로 해 친환경적인 근무 공간이 되도록 했다.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건강을 배려하기 위해 전 직원에게 100만원이 넘는 의자를 제공했다. 창의적인 회의 문화를 위해 만든 편안한 좌식 회의실에서도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엿보인다.

각 층마다 경영지원, 기획, 개발, 디자인 등 직군별 특성에 맞는 도서를 구비하고, 자유롭게 빌려 갈 수 있는 자율 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 간호사 1명이 상주하고 있는 건강관리실에는 안마의자, 발 마사지기 등을 설치해 놓았다. 누구든지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이다.

이밖에 밤샘하는 직원들을 위해 침대, 샤워실 등을 갖춘 수면실을 마련했다, 바쁜 출근으로 아침을 거르고 나오는 직원들을 위해 무료로 김밥, 샌드위치, 주먹밥을 제공하고 있다.

9층 ‘해피빈 카페테리아'의 모든 음료 가격은 700원 안쪽. 싸다고 해서 자판기 커피정도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해피빈 카페테리아는 커피 전문점에서나 볼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도입해 고급 커피를 제공한다. 여기서 생기는 수익금은 전액 NHN 기부 사이트 ‘해피빈’에 기부 되고 있다.

170평에 이르는 해피빈 카페테리아는 직원들이 쉴 수 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임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직원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네일아트, 마술쇼, 칵테일 쇼와 같은 이벤트와 신규 게임 대회 및 테스트, 동호회 공연, 사내방송 방영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최휘영 대표는 “IT 산업은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생명이기 때문에 쾌적한 근무 환경이 곧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사례 2 로비에서 영화 상영하는 中企

최근에는 중소기업들도 예전과 달리 쾌적한 공장 환경을 만드는데 대기업 못지않다. 예전에는 찾아온다는 사람도 말렸지만, 이제는 회사로 찾아오라고 할 정도다.

경기도 시화공단 안에 있는 도금업체인 정우이지텍. 도금업은 금속에 금·은·니켈을 입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독가스로 인해 대표적인 공해 배출 업종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러한 도금산업의 편견을 정우이지텍의 공장을 한 번 둘러보면 바로 지울 수 있다.

‘ㅁ’자 구조로 된 공장 건물의 가운데에는 로비 대신 널찍한 실내 정원이 자리 잡고 있다. 화장실에는 비데가, 휴게실에는 당구대와 탁구대가 마련돼 있다. 직원이 50여 명에 불과한 이 회사는 2003년 사옥을 옮기며 15억원을 쏟아 부었다. 중소기업으로서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다른 중소기업과는 달리 이 회사에 젊은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이 공장 덕분이다. 여기에다 3D업종인 도금업체들이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는 반면 이 회사는 50여 명의 직원 중 외국인 근로자는 2명밖에 없다. 공장을 옮긴 뒤 정우이지텍은 해마다 10~20%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김정진 사장은 “콘크리트 속에서 일하는 것보다 나무와 자연 속에서 일하고, 휴식도 취할 수 있어 업무 효율성이 올라갔고, 회사에 대한 자부심 역시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에서 산업용 계측기를 생산하는 우진. 공장에 들어서면 푸른 잔디가 깔린 광장과 작은 연못, 그리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숲이 펼쳐진다. 직원들은 로비에서 정기적으로 영화를 보거나 문화 행사를 열어 재충전의 기회를 갖기도 한다.

화성시에 위치한 넥스트인스트루먼트는 2001년 공장을 지으면서 회사 입구와 지붕을 유리로 마감해 마치 유리성을 연상케 한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통로는 정원이나 휴식 공간으로 꾸며졌고, 복지관과 기숙사는 공장 뒤쪽에 배치했다. 또 벽면 분수를 설치한 회의실도 인상적이다.

경기도 김포 유산균제품 생산업체인 뉴팜은 모든 공간에 공기청정기를 내장했으며 에어커튼을 설치해 외부 먼지를 차단했다. 2003년 본래 산이었던 자리를 깎아 트럭 500대 분량의 흙을 퍼냈다고 한다. 정원 한 켠의 물레방아와 정자는 운치가 넘친다.

사례 3   신도리코 ‘한끼를 먹어도 집 같이’

일찍부터 즐거운 일터로 소문이 자자한 신도리코의 본사와 공장에도 직원들을 위한 배려가 곳곳에 스며있다. 신도리코 서울본사에는 11월부터 트리 장식이 반짝인다. 직원들이 바쁘게 일하느라 크리스마스의 낭만이나 연말연시의 흥겨움을 잊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며 우석형 회장이 마련한 선물이다. 매년 겨울마다 트리의 환한 불빛을 보면서 직원들은 잠시나마 동심을 추억하고 겨울을 반길 수 있다.

서울본사 정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황토빛 벽돌의 사무동이 공장지대에서 느껴지는 삭막함을 사라지게 한다. 건물 한 가운데에는 사내 체육대회를 개최할 만한 광장이 시원하게 자리 잡고 있다.

광장 한쪽의 삼애정(三愛亭)이라는 정자와 대나무 숲은 도심 한 가운데서 한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한다. 그 바로 옆에는 500여 명의 직원이 한자리에서 식사할 수 있는 대규모 식당이 있다. 휴게실은 통유리로 시야를 넓혔고, 하얀 자갈길에 원목 벤치를 두어 야외 공원에 나온 느낌이다. 아산공장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녹지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신도리코의 사옥 및 공장 내부에는 직원들을 위한 복지시설로 가득하다. 2002년에는 사내 모든 업무 공간을 마룻바닥으로 교체해 분위기를 한층 따뜻하게 했다. 직원들의 여가생활에 대한 지원을 위해 리프레쉬센터(Refresh Center)도 운영하고 있는데, 헬스장과 샤워실은 기본이고 농구장은 서울에서 몇 안 되는 국제규격을 자랑한다.

휴게 시설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서울에만 9개의 실내휴게실이 있고, 아산공장에는 사무동 뿐 아니라 생산라인마다 쉼터를 넉넉히 마련해 놓았다. 아산공장은 5만 평 공장 부지의 70%가 직원들의 휴식과 복지를 위한 공간이다. 노래방 시설, 200석 규모의 전용극장 그리고 대학 캠퍼스에나 있을 만한 수용인원이 1000명도 넘는 노천극장까지 있다.

신도리코의 가족 경영은 식사시간에 특별히 드러난다. 회장, 사장에서 연구원, 신입사원에 이르기까지 500명이 넘는 직원 모두가 한자리에서 식사를 한다. 특이한 점은 배식을 식판에 하지 않고, 뚜껑 있는 주발에 따뜻한 밥을 일일이 담아 준다. 식사 한 끼라도 집에서 먹는 것과 똑같이 따뜻한 정이 넘치도록 하고 있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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