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수출 1위국 독일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정답은 ‘미텔스탄트(Mittelstand)’라고 불리는 중기업들이다. 헤르만지몬의 역저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s)을 보면 세계시장 50% 이상을 점유한 중견기업 숫자만 500개사에 달한다.
한국도 삼성, LG만 갖고선 어렵다. 선진 경제에 진입하기 위해선 ‘허리 라인’을 키워야 한다. <이코노미플러스>는 한국 경제의 ‘중산층’인 중견기업 육성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중견기업 현주소를 취재한 뒤 윤봉수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인터뷰와 함께 ‘열전! 중견기업 오너들’ 코너를 마련, 시리즈로 소개한다.

Part1 한국 중견기업 현주소

창업 후 10년 내

중견기업 성장 확률 0.01%

중소제조업체인 K사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2004년 7월 직원 수 300명이 넘어 중소기업을 졸업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3년간 유예기간이 있어 아직은 중소기업 ‘자격증’을 유지하고 있지만 문제는 7월부터다. 상시 근로자 300명을 넘는 순간 각종 세제, 금융 특혜가 한꺼번에 날아가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L사는 최근 사업부 하나를 떼어내 아예 분사를 했다. 자회사나 분사를 설립하면 중소기업 울타리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란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당장 법인세 특별 감면, 한국은행 총액대출제도 등 지원이 끊어지면 ‘돈’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산업의 허리’라는 중견기업들이 설 땅을 잃고 있다. ‘대접’은 없고 ‘규제’만 따르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이 중소기업 육성에 집중돼 있는 탓이다. 실제 열심히 회사를 키워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대기업’으로 취급받는 게 현실이다.

제지업체 A사 사장은 “2000년 대기업으로 전환돼 400여 임직원들과 샴페인을 터뜨렸다가 곧 후회만 했다”고 말한다. 경기도 한 공단 내에 공장을 세우려던 계획이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에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중국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중소기업으로 남아있는 게 훨씬 나을 뻔 했다”고 경험담을 밝혔다. 해당 기업엔 ‘재정적 손실’이 따르고 국가 경제엔 ‘마이너스’가 되는 셈이다.

이 때문일까. 한국 경제의 ‘허리층’이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

중견기업 비중, 독일이 한국의 10배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에 따르면 1993년 이후 10년 동안 중소기업에서 종업원 300인 이상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회사 비율은 0.13%에 머물고 있다. 전체 조사대상업체 5만6472개 사 중에서 75개 사뿐이다. 특히 500인 이상 크게 성장한 기업은 단 8개 사로 비율은 0.01%에 불과하다. 즉 중소기업 1만 개를 창업해 10년 후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단 한 개 회사밖에 안 되는 셈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기업 규모별 제조업체 숫자 추이를 보면 우리나라 중견기업의 경쟁력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종업원 수 5~299인 사업체 수는 1994년 10만1706개에서 2004년에는 12만1832개로 약 20% 증가한 반면, 종업원 수 300~999인의 사업체 수는 1994년 872개에서 2004년에는 663개로 24%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우산’을 씌어준 중소기업은 계속 느는 대신, 중견기업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는 얘기다.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은 “중소기업 범주를 벗어났다고 해서 당장 대기업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업은 없다”면서 “중소기업 졸업과 함께 각종 보호막이 사라져 중견기업들이 독자생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취약한 ‘허리층’은 확연히 드러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조사한 나라별 중견기업 비중(종업원 250명 이상 기준)을 보면 한국은 전체 기업의 0.2%에 불과하다.

독일과 일본은 2.2%와 1.4%로 우리나라보다 각각 10배와 7배 이상 비중이 높다. 영국과 호주도 1.5%로 높았고 프랑스가 0.9%로 낮았지만 여전히 우리보다는 4배 이상 ‘허리층’이 두터운 셈이다. 뮌헨무역관장을 지낸 김평희 코트라 투자환경개선팀장은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500대 중소기업 중 400개가 독일 회사”라면서 “미텔스탄트라고 불리는 ‘중기업’들이 독일 경제를 떠받치는 숨은 공로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중견기업들은 어디까지 왔을까. 문제는 중견기업을 분류하려고 해도 발표 기관마다 중견기업 범위가 다르다는 장벽이 가로막는다. 한마디로 중견기업 정의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실제 삼성경제연구소는 10년 이상 존속 최근 5년간 매출액 300억원 이상 매출순이익 5% 이상을 중견기업으로 분류했고, 이병헌 광운대 교수는 종업원 300~999인 자본금 80억~1000억원 미만으로 정리하고 있다.

전현철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은 “발표 기관마다 기준이 상이해 통계치 뽑기도 쉽지 않다”면서 “업계에서는 산업자원부가 제시한 종업원 수(300~999인)와 매출액(400억~1조원 미만)을 중견기업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중견기업 숫자는 현재 700여 사에 그치고 있다. 그 중 70%가 제조업이라는 게 삼성경제연구소 조사다. 통계청이 집계한 소상공인을 포함한 한국의 사업체 수 300만 개에 비하면 중견기업 비중은 실제 제로에 가까운 수치다.

이 같은 한국 중견기업들을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에 가까운 중견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을 졸업한 수준의 중견기업이 훨씬 많다. 매출액 기준 400억~3000억원 사이 기업이 전체 기업 중 83%에 이르기 때문이다. 특히 3000억원 이상 기업은 매년 감소 추세라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의 진입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견기업인들은 정부의 산업정책에서 항상 소외돼 왔다며 불만이 많다. 중견기업 남성의 오너이자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인 윤봉수 회장은 “중견기업 육성에 대한 ‘당근’책 없이 중소기업 졸업 즉시 ‘채찍’만 있어 경쟁력 있는 기업들도 중소기업 울타리에 안주하는 편법을 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중소기업엔 ‘당근’ 중견기업엔 ‘채찍’?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종업원 300~1000인 사이의 제조업체 666개 중 3년간 중소기업 유예기간에 해당되고 있는 56개 사를 조사한 결과는 이 같은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56개 사 중 절반이 넘는 33개 사(58.9%)가 ‘중소기업으로 다시 복귀를 희망’했다. 아예 17.9%인 10개 사는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기업을 분사하거나 자회사를 설립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말하자면 ‘중견기업 기피 현상’이 만연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이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현실은 고스란히 국가 경쟁력의 손실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중견기업인들은 “중소기업 지원에는 18개 부처, 146개 지원기관이 1000여 개 시책을 운영중이라 뭐가 뭔지도 모를 정도이지만 중견기업 지원책은 아직까지는 전무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정부 정책만 나무랄 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중견기업 대책은 없다는 게 근거다. 특히 중견기업 스스로 성장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대학 교수는 “우리나라 중견기업들의 R&D(연구개발비) 비중이 중소기업보다 못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자료에 따르면 “업력 10년 이상인 국내 중견기업들은 부동산 등 자산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R&D 혁신 역량 부족으로 매출은 정체되고 수익성은 하락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기업 규모별 매출액 대비 R&D 비중(2005년)을 비교해보면 대기업은 3.10%, 중견기업은 1.84%로 나타났다. 이는 중소기업의 2.06%보다 낮은 수치다. 이와 관련 중견기업 소속 한 임원은 “회사를 더 크게 키워봐야 규제만 늘뿐 실익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데다, 먹고살 기반이 확보된 중견기업들이 많아 새롭게 투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견기업특별법’, 1년째 상정조차 못해

중견기업 기피 현상은 국가 경쟁력에 마이너스 요인이란 점에서 중견기업에 대한 육성책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차츰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한나라당 이혜훈, 황우려 의원 등 13명이 2005년 8월 ‘중견기업 지원에 대한 특별조치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제조업의 경우 상시근로자 300~1000명 또는 자본금 80억~1000억원을 기준으로 하여 해당기업에 규제완화와 세제상 혜택을 부여해 중견기업을 키우자는 게 골자다. 문제는 1년 6개월이 넘도록 상정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한국 중소기업에 비해서 중견기업의 추락한 위상은 양대 업계를 대변하는 협회의 1년 예산만 비교해 봐도 무게감 차이가 확연하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올해 예산은 일반회계만 162억원에 이르는 반면, 중견기업연합회 예산은 고작 5억원 남짓하다.

특히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는 공제사업기금만 4765억원이 확보돼있지만 숙원사업인 중견기업연합회관 설립을 위한 중견기업연합회 기금은 8000만원만 달랑 확보된 상태다. 2월말 신임 회장을 뽑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선거에는 5명이 입후보, 국회의원 선거 뺨치는 치열한 선거전이 진행 중이지만, 2월14일 끝난 중견기업연합회 총회에선 만장일치로 윤봉수 회장의 연임을 추인한 모습도 상반됐다.

한마디로 중견기업인들의 ‘기’가 꺾인 게 한국 경제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12월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질 좋은 성장을 위한 중견기업 발전 방안’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 차원의 중견기업 대책 1호다.

요는 현재 700개 사 수준인 중견기업 숫자를 2011년 1200개, 2015년에는 현재의 2.5배인 1700개 사로 확대하겠다는 비전이다. 문제는 총론만 있지 각론까지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중견기업인들은 ‘반색’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한 중견기업인은 “딱 부러진 대책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중견기업 육성이란 목소리가 정부에서 나온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발전”이라고 표현했다. 그동안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던 중견기업들의 소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중견기업연합회는 중견기업 발전 방안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해놓고 있다. 중견기업연합회가 447개 회원사를 대신해 내놓은 대안은 3년으로 제한된 중소기업졸업제도의 유예기간 연장, 수도권 공장 총량제 등 중견기업 진입 시 적용되는 규제 완화,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내 지방세 중과세 폐지, 외국인 고용허가제 확대, 중소·중견기업 간 M&A 특례 확대 등이다.

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중견기업인들 스스로 R&D 투자와 신기술 확보 등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노력이 선행 과제”라며 “이제 정부도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한국 경제의 ‘허리 기업’들을 정책적으로 육성해야할 시점에 온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Part2 윤봉수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인터뷰

“3년 내 회원사 1000개 사

확보해 경제 6단체 되겠다”

윤봉수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선진 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선 ‘강한 허리’가 필수”라면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시스템이 잘 작동돼야 선진국 진입도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지난 2월14일 오전 11시 서울 힐튼호텔 그랜드볼룸. 이곳에선 2007년 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 정기총회가 열렸다. 개회 시간이 다가오자 윤봉수(73) 중견련 회장을 비롯, 주진우 사조산업 회장, 이광원 능원금속 회장, 김영환 서원인텍 회장, 김정자 유진기공산업 회장, 최관수 디지아이 사장, 박인주 제니엘 사장 등 중견기업 오너들이 속속 입장했다. 새로 고문으로 영입된 김영수 케드콤 회장(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도 눈에 띄었다.

이날의 주요 안건은 신임 연합회장 선출이 하이라이트. 업계 좌장격인 유기정 삼화인쇄 회장(중견련 명예회장)이 임시 사회를 봤고, 회원 추천을 받은 현 윤봉수 중견련 회장이 3년 임기의 제 5대 회장에 만장일치로 재추대됐다.

중견련은 1990년 2월 ‘한국경제인동우회’로 출발, 1998년 중견련으로 명칭을 바꿨다. 올해로 창립 17년 된 중견련은 1995년 통상산업부(현 산업자원부)에서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고 유기정 삼화인쇄 회장이 초대 회장,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2대), 이상운 그레이스아시아 회장(3대)에 이어 4대와 5대를 윤봉수 회장이 연임하게 됐다.

윤 회장은 연임사에서 “현재 447개 사인 회원사를 새로운 임기(3년) 내 1000여개 사로 확대해 경제 6단체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윤 회장은 1958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65년 전자제품 수출회사인 남성을 설립한 중견기업인으로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수석부회장, 한국무역협회 수석부회장 등을 거쳐 2003년 2월부터 4대 중견련 회장에 이어 5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다음은 윤봉수 회장과의 일문일답.

회장 연임을 축하드린다. 재추대 소감은.

지난 3년간 회장직을 수행해오면서 2006년이 가장 뜻 깊은 한 해였다. 특히 산업자원부가 지난 연말 중견기업을 현재의 2.5배인 1700개 사로 확대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점이 성과다. 2007년은 성장 동력 부재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에 중견기업의 중요성을 대외적으로 더욱 알리는 한 해로 만들 것이다.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3년 전 첫 취임 때와 현재의 중견기업 위상을 비교한다면

지난 임기 중 회원 200여 개 사가 447개 사로 늘어났다. 이는 학계와 언론계에서 중견기업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된 과정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관심의 사각지대였던 중견기업에 대한 관심을 고양시킨 게 달라진 점이라고 생각한다.

중견기업 육성이 왜 중요하다고 보는가.

우리 경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가 너무 심하다. 어찌 보면 중견기업은 ‘낀 기업’ 신세였다.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방치돼 온 셈이다. 선진 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선 ‘강한 허리’가 필수다.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시스템이 잘 작동돼야 가능하다.

250인 이상 고용하는 기업체 수는 우리나라가 전체 기업 중 0.2%밖에 안 된다. 일본 1.4%와 독일 2.2%보다 중견기업 비중이 낮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세제나 금융 혜택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중소기업을) 졸업한 회사들이 (중견기업으로) 와야 하는데 ‘분사’ 등을 통해 중소기업에 안주하려고 하는 게 보통이다. 혜택이 사라지는 ‘험한 세상’에 누가 오려고 하겠는가.

중소기업을 졸업한 중견기업들에게도 중소기업에 준하는 혜택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렇다. 중소기업 범주를 벗어났다고 당장 대기업과 싸워 이기라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고 본다. 이젠 특별법안을 만들 때가 됐다. 정부에서 중견기업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한다. 그것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소기업으로서 혜택을 받아 성장했다면 그 혜택을 이젠 국가에 반납하는 게 오히려 옳은 건 아닌지.

논리상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대기업에 비해 조직력, 자금력이 절대 열세다. 중견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조금 더 기다려줘야 하고 정부는 육성해주는 게 옳다고 본다.

다른 나라에도 중견기업 육성책은 없지 않은가.

그런 법률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그러나 한국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차별된 정책을 펴고 있다. 중소기업 지원은 세제 등 1000여 가지가 넘는다.

정부가 지난 연말 중견기업 육성대책을 발표했는데, 올해 안에 입법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정부 차원에서 중견기업을 키운다는 얘기는 지금이 처음 나온 말이다. 우리 중견기업인들 모두 희망적으로 기대하고 있다. 곧 정부도 추가 대책 안을 내놓을 것이고 향후 연합회 차원에서도 연구를 해서 정부에 제안하겠다.

실제 중견기업 남성의 오너로서 중견기업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애로 사항은 뭔가.

연합회는 2005년부터 매년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중견기업 발전 방안 수립을 위한 설문조사’를 벌여왔다. 그 결과를 보면 중견기업들은 대기업과 비교해 자금과 기술이 달리는 것으로 나온다. 특히 해외시장 진출 역량, R&D와 마케팅 등 핵심 분야의 인력 부족 현상이 가장 심각하다. 정부는 중견기업의 성장 유형별로 맞춤식 정책 지원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중견기업 대표로서 중견기업 발전 방안을 제시한다면.

일단 중견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가장 시급한 건 제도적 뒷받침이다. 특별입법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기업 규모를 키우는 M&A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자본이 산업 쪽으로 흐를 수 있도록 중견기업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올해 가장 큰 사업 목표가 있다면.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첫 번째는 중견기업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입안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정부 관계 부처와 함께 중견기업 발전을 위한 연구에 참여해 중견기업인들의 뜻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 두 번째는 회원사 배가 운동을 펼치겠다. 임기 내 1000개 사 달성을 목표로 추진할 것이다. 한 개 회원사당 한 개 회사를 한 달 내에 유치하는 회원 유치 활동을 제안하겠다. 이를 통해 중견련이 경제 6단체로 거듭나겠다는게 목표다.

윤 회장은 인터뷰 끝에 “중견기업인의 날도 제정하고 중견련 회관도 짓고 싶다”면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오지 않으려는 현상은 막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Part3 [열전! 중견기업 오너들] 일본 ‘100엔 시장’ 석권한 박정부 한일맨파워 사장

1000원짜리로 1조원 수출한 巨商

45세에 ‘맨손 창업’,‘열도’를 삼켰다

“직장생활 15년 동안 정말 하루를 25시간처럼 일에 미쳐서 보냈습니다. 그런 제가 그것도 40대 중반의 나이에 창업을 결심했을 때 가장 고민됐던 부분은 ‘나에게 아직도 그런 열정이 남아있을까’ 였습니다.”

박정부 사장을 알려면 먼저 일본 100엔 숍 시장을 봐야 한다. ‘박정부의 성공=일본 100엔 숍 신화’와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100엔 숍의 대명사는 일본 전역에 거미줄 같은 2500여 체인망을 구축한 다이소산업. 현재 일본 100엔 숍 시장의 70%를 장악한 회사다. 연간 매출액만 한화로 3조원에 이른다.

이 다이소산업의 최대 공급자가 바로 한국의 박정부 사장이다. 다이소가 외국에서 공수한 물건 3개 중 하나를 그가 대준다. 연간 수출 물량만 상품 개수로 약 5억 개. 공휴일을 빼면 하루 수출량만 160만 개에 달하는 셈이다.

얼핏 감이 안 오겠지만 이 정도 물량이면 매일 2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39개씩 실어 나르는 막대한 양이다. 이렇게 그는 1988년 창업 후 20년 가까이 일본 다이소산업 한 개 회사만을 상대로 누적 매출 1조원어치 이상의 상품을 수출해왔다. 1997년 1000만불탑 수상부터 시작해 3000만불탑(2000년), 1억불탑(2002년) 수상은 그가 쌓아올린 금자탑이다.

1000원짜리 생활용품 수출 외길로 한국의 대표적인 ‘만물상 수출기업’을 키워낸 박정부 사장. 그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바이어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을 수 있었을까.

2월14일 오후 경기도 용인 기흥에 물류센터와 본사를 둔 다이소아성산업 본사에서 만난 박 사장의 대답은 “뭐, 정직했으니까”란 단순한 답변. 재차 묻자 부연 설명으로 따라온 말이 “그들 눈에 맞는 품질, 가격, 그리고 철저한 납기 준수를 생명처럼 여겼다”고 들려준다.

여기서 앵글을 그의 파트너 일본 다이소산업으로 돌려보자. 1977년 야노 히로다케(64) 회장이 다이소산업을 창업했으니 박 사장 보다 사업이 11년 빨랐다. 이 회사가 가파른 성장곡선을 보인 때는 1995년 일본이 ‘10년 불황’에 빠져들던 초입이었다.

잘 나가던 공장장 작업복을 던지다

‘불황에 더 잘 팔린다’는 100엔 숍 특성상 1990년대 중반 이후 수요는 말 그대로 ‘폭발’이었다. 밀려드는 수요에 제때 물량을 공급해준 업체가 한국의 한일맨파워였다. 말하자면 일본 100엔 숍 신화에 있어 두 사람은 ‘환상의 복식조’였던 셈이다.

이 같은 사업 우정은 2001년 9월 한일맨파워의 국내 유통법인인 아성산업에 다이소가 지분 34%(38억원)를 투자하는 파트너십으로 발전했다. 그렇게 재탄생한 회사가 다이소아성산업이다. 1997년 5월 서울 천호동에 15평짜리 점포가 국내 1호점. 당시 간판은 ‘아스코이븐프라자’(현재 ‘다이소’로 브랜드 개명)였다. 일본 100엔 숍이 ‘1000원 숍’이란 이름으로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사업 10년째인 올해 2월 현재 전국에 매장 수가 360여 개에 달한다. 올 연말까지 매장 500개로 전국 네트워크를 넓힐 예정이다.

박 사장은 이 얘기가 나왔을 때 눈이 번쩍거렸다. 박 사장을 사업가로 키워준 회사가 수출기업 한일맨파워였다면 미래의 성장 동력은 내수기업 다이소아성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서울 도곡동(한일맨파워 본사)보다 기흥에 머무를 때가 더 많다.

두 회사의 덩치는 얼마나 될까. “지난해 매출액은 수출기업인 한일맨파워가 1350억원이었고, 내수기업인 다이소아성이 처음으로 1000억원을 돌파(1050억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를 주목해 달라”고 덧붙인다. 올해는 내수 매출액이 1800억원으로 수출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최근 엔화 값이 떨어져 마음고생이 심한 박 사장에게 내수시장의 호조는 숨통을 틔워준 ‘효자’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박 사장이 20년간 일궈낸 성적표의 대강이다. 그러나 정작 더 궁금한 건 직장인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과정이다. 그는 “옛 얘기는 말자”며 말문을 막았지만 “몇 마디만 하겠다”며 곧 ‘과거’를 회상하는 표정을 지었다.

“1984년쯤 됐을 겁니다. 구로 3공단에 있던 우리 회사(풍우실업, 현 우리조명)엔 노조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는데 직원 1000여 명이 정문을 막고 있는 겁니다. 경위를 알아봤더니 ‘위장 취업자’들이 부추겼던 것이죠. 그날로 회사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화살이 온통 공장장이었던 저에게 쏠리더라고요.”

사실 그는 그 ‘사건’ 전만 해도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나와 1973년 입사 후 6개월 만에 공장의 작업표준화, 관리표준화를 이뤄놓은 것도 ‘신입사원 박정부’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후 품질관리본부장, 자재관리부장, 생산부장 등 요직은 두루 거쳤다. 그러나 그 사건은 오래도록 당시 박 공장장을 괴롭혔다.

“간부회의 때마다 오너한테 시쳇말로 ‘찐따’가 되는 기분을 3년 넘게 버텨도 봤습니다. 월급쟁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만큼 애정이 많았던 회사였거든요. ‘이젠 때가 됐구나’ 느꼈습니다.”

그때가 1988년, 그의 나이 45세였다. “하루를 25시간처럼 일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만큼 허탈감도 컸다. 그는 “당시 사업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내가 그런 열정이 남아 있나가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

결심이 서자 행동은 일사천리였다. 그해 10월 ‘한일맨파워’란 회사를 차렸다. 이름에서 풍기듯 일본 지역 연수 및 세미나 지원업체. 일본 와세다대 출신인 친동생 박덕수씨가 당시 일본에 차린 일한기획과 함께 한 사업이다. 삼성, 현대, LG 등 대기업의 한국 내 영업을 형이 이끌고 동생은 현지 진행을 맡았다.



수출 첫 오더 ‘재떨이’ 때 ‘쓴맛’부터 경험

사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업가를 꿈꿔왔다. 1963년 서울 영등포고 졸업 후 스무 살 나이에 ‘무역’을 배우겠다며 홍콩 현지에서 사업을 해봤던 그였다. 대학 졸업(1973년)이 동년배보다 2~3년 늦은 것도 ‘사업’ 때문이었다.

“결국은 실패하고 귀국했지만 그때부터 ‘무역인’ 꿈을 버리진 않았습니다. 한일맨파워를 세웠어도 저는 연수사업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무역’에 온통 전념했으니까요.”

특히 그는 사업 첫 출발을 집에서 시작했다. 서울 후암동 노모 댁의 거실이 한일맨파워의 발상지였던 것. 현 김상훈 한일맨파워 부사장이 그때부터 박 사장과 함께한 유일한 창업멤버다.

그가 수출업체로 첫 오더를 받은 건 창업 후 두 달만인 1988년 12월. 일본 주류도매업체인 N사에 납품한 판촉물 ‘유리 재떨이’ 5000개였다.

“이거야 원, ‘첫 빠따’부터 클레임이 걸리지 뭡니까. 수업료 단단히 치렀습니다.”

담배 재를 끄면 유리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로선 자존심 문제였다. 해답은 100% 리콜. 5000개 물량 고스란히 돈을 떼였다.

그랬던 그가 성공가도를 밟은 건 100엔 숍 업체 다이소를 만나면서부터다. 1989년 12월이었다. 일본 히로시마 본사로 군대 ‘따블백’ 같은 샘플 백에 상품을 가득 싣고 떠났다.

막상 야노 회장(당시 사장)과 부인(당시 전무) 앞에 서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야노 회장은 상품이 성에 안 차면 책상을 뒤엎고 샘플 백 채로 상품을 집어던지는 성미였기 때문이다.

“야노 회장은 사업만 8번 실패한 사람이니까 이해도 됩니다. 상담할 때 웃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직원은 그 즉시 ‘호통’이 떨어집니다. 외부 협력업체들에게 그러진 않았지만, 그 사람들도 보라 이거죠. 첫 거래 때 헤어핀 등 헤어액세서리 제품에 OK 사인을 내더군요. 한번 들어가기가 어렵지 들어가면 대량 오더였죠. 첫 거래 때 물량이 지금 생각해도 몇 백만엔은 됐을 겁니다. 결국 ‘신뢰’가 열쇠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 신뢰는 가격과 품질이었다. 이때부터 엔지니어 출신 박정부 사장은 ‘상품 개발’에 올인했다. 지금도 영업과 마케팅, 매장 관리 등은 다른 사람 맡겨도 상품은 기획부터 디자인, 제품개발까지 박 사장 손을 거친다. 박 사장이 지금까지 개발해온 제품 가짓수만 무려 5만여 종이 넘는다. 1년이면 보통 1000여 개 이상씩 개발해왔다. 주방용품을 비롯, 사무용품, 문구팬시, 인테리어, 액세서리, 화장품 등 그의 손을 안 거치는 제품군이 없다.

가격 전략도 독특하다. 현재는 500원,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제품까지 있지만 초창기만 해도 1000원짜리 상품이 100%였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물건 하나를 생산비, 물류비, 관세까지 다 합쳐 단돈 300~400원(납품가 기준)에 수출하려면 얼마나 손이 많이 갈지….”

박 사장의 저가 비결은 한마디로 바잉파워(구매력) 덕분이다. “죽어도 600원 밑으로는 (가격을) 못 내리겠다고 버티는 공급업체 사장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스트레스였다”고 들려준다.

“그런 사람들도 나중엔 제 발로 다시 찾아옵니다. 한 번에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물량을 주문하기 때문이죠.”

대신 그는 광고나 유통비 거품은 철저하게 통제한다. 그래야 ‘싼 게 비지떡’식 장사를 막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1000원짜리 제품이라고 품질이 나쁠 것이란 선입견을 깨왔던 게 박 사장의 20년 사업 역사다. 그것은 곧 납품가를 낮추기 위해 협력업체와 ‘1원과의 전쟁’을 벌였던 협상의 역사였다.

상품 개발을 위해 그는 세계 구석구석을 누빈다. 중국과 베트남, 인도 등 아시아는 물론 프랑스, 독일, 터키, 미국 등 안가는 곳이 없다. 1년이면 150~200일은 외국 출장이다. 국내 코스트가 높아 해외 상품 소싱이 60%에 이르는 것도 박 사장은 안타까워한다.

환갑 넘었어도 1년 절반은 ‘출장 중’

그는 출장을 다녀도 주말을 많이 활용해 직원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코노미’석만 탔고 골프도 몰랐던 ‘워커홀릭’이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는 그를 ‘사업과 결혼한 남자’라고 말한다. 요즘에도 아침 8시30분이면 회사에 출근한다. 퇴근시간을 묻자 “요즘 좀 빨리 나간다”고 한다. 그 시간이 저녁 8시나 9시께다. 그는 “아내 불만이 많아 가끔 여행이라도 하면 꼭 ‘퍼스트클래스’를 탄다”며 머쓱해했다.

“솔직히 경영자들 책 많이 본다는데 저는 못 그래요. 2월초 독일 출장 때도 <컬처코드> 몇 권 사서 같이 출장 갔던 사람들 나눠줬는데, 정작 저는 아직 20페이지도 못 넘어갔어요.”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1995년께다. 당시만 해도 다이소 이외 몇 군데 업체에 거래를 트고 있었는데 한 업체로부터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난 것이었다. 어려움은 꼭 붙어 다니는 경향이 있는 걸까. 그 무렵 연수교육을 맡아하던 직원들이 회사 자료를 모두 빼내 아예 회사를 차린 일이 겹쳤다.

“부도 충격에다, 인간적 배신까지 당했으니 정말 정신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때까지 회사는 한 번도 (수출이) 뒷걸음질한 적이 없는데, 1995년에 처음 수출액도 꺾였던 기억이 납니다.”

IMF(국제통화기금) 쇼크 이후 한일맨파워는 무역업에만 올인했다. IMF 사태로 기업 교육비예산이 깎이자 연수 손님이 뚝 끊어진 것. 반면 수출 물량은 ‘불황산업’이라는 100엔 숍 특성상 더 많이 늘어만 갔다. 당연히 무역에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박 사장은 “곰같이 묵묵히 일하는 사람 앞에 당할 자 없다”고 말하는 경영자다. 상처를 치유한 것도 더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는 정공법. 특히 자신은 수출 금액을 떼였지만 그는 한 번도 제때 물건값을 안 준적이 없다고 한다.

사업 20년간 그는 어음을 안 써온 경영자다. 100% 현금 결제다. 특히 1995년 사건 이후 어음 발행업체와는 아예 관계를 끊어왔다. ‘정직’이 신조라는 박 사장의 사업 원칙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현재 내수 유통사업으로 진행 중인 ‘다이소’ 프랜차이즈의 경우 가맹비를 받지 않는다. 보증금 1000만원도 사업을 정리하면 돌려주는 돈이다. 지난해 처음 내수사업(다이소아성산업) 매출액이 1000억원을 넘었지만 순익률은 2% 남짓하다. 납품업체 가격만 후려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도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고통을 분담하고 있는 셈이다.

프랜차이즈 업체지만 이례적으로 본사 직영점 비율이 훨씬 높다는 점도 박 사장의 경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 내가 ‘올인’해야 다른 사람도 함께 사업에 동참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는 생각에서다. 현재 360여 매장 중 70%가 직영점이다.

또 다른 이유를 묻자 “그래야 중대형 평수로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초창기 10~20평 소점포 사업이 이젠 5~100평형대 규모로 커진 셈이다. 대신 ‘실탄’이 많이 들어간다. 요지에 50~100평 매장을 열려면 최소 3억~5억원은 소요되기 때문. 올해 150개 매장을 추가로 개설한다고 했을 때 최소한 몇 백억원은 투자되는 셈이다.

“돈 걱정은 안합니다. 매일 전국 매장에서 100% 현금이 흘러 유동성이 괜찮은 데다, 그동안 깨끗하게 장사했고 건실하다는 소문이 나서 그런지 은행에서 ‘돈 좀 써 달라’며 찾아오기도 하거든요.”

“물가 0.001%라도 낮추는 게 꿈”

일본 다이소산업과 벌써 19년째 연을 맺어온 박 사장은 “요즘도 야노 회장을 만나기 전날엔 잠이 안 온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전투’라고 표현했다.

한 번 출장 때마다 직원 30명과 함께 들고 가는 3단 여행용 샘플백만 120개씩 된다. 수백 가지 상품을 한꺼번에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이나 일본 히로시마공항 직원들은 박 사장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는 1년에 1000억원 이상씩 수출해왔다. 이런 전투를 1년이면 그는 10번씩 치른다. “사석에선 정말 편안한 사람이지만 일할 땐 정말 무섭게 돌변한다”는 게 박정부 사장의 야노 회장 인물평이다.

고생한 만큼 보람도 크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10년 전 당시 ‘아스코이븐프라자’를 오픈 했을 때였죠. 20대 젊은 여성 몇 명이 왔는데, 한 친구가 열심히 상품을 들여다보자 같이 따라온 친구가 ‘야! 얼굴 팔리게 1000원짜리가 뭐냐’ 하는 겁니다. 소비자 인식이 ‘저가=저 품질’, ‘고가=고품질’이란 등식이었죠. 그러던 게 요즘은 어떤지 아십니까. 어제(2월13일) 얼마 전 개업한 경기도 안성점을 방문했는데, 한 아주머니가 제 손을 붙잡더니 이러는 겁니다. ‘볼 일 있어 서울 왕십리역에 갈 때마다 한 보따리씩 사오곤 했는데, 집 앞에 점포가 생겨 너무 고맙습니다’라고요. 이제는 질 좋고 싼 제품으로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제 노력이 헛되진 않았다고 느낄 때 기분이 좋아지죠. 어찌 보면 제가 소비자생활물가를 0.0001%라도 낮추는 데 기여하지 않았겠습니까.”

사실 그는 요즘 고민이 많다. 한 번 떨어진 후 계속 떨어지는 엔화는 오를 기미가 안 보이고 요즘엔 은퇴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주위를 둘러보면 요즘 중견기업들 사이에서도 대를 잇는 경영승계가 한창이다.(그는 현재 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과 한국무역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경인양행, 남성, 쿠쿠홈시스 등 최근 몇 년 새 2세에 경영권을 넘겨줘 잘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가족 얘기로 돌아가자 박 사장은 미안한 안색으로 바뀌었다. 그는 딸만 둘 뒀다.

“시집간 큰 애와 사위는 지난해까지 한일맨파워서 데리고 있어봤어요. 그런데 사위도 학자 타입이고, 그렇다고 둘째는 아직 어리고…….”

그러다 “아직은 때가 안됐다”면서 “내가 없어도 완전히 돌아갈 때까지는 더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업 2라운드까지는 자신의 책임이라고 못 박았다. 잡화 수출로 탄탄한 무역회사(한일맨파워)를 일궈낸 게 박정부 사장의 1라운드였다면 2010년까지 내수유통회사 다이소아성산업 매장을 1000개로 늘려놓는 게 제 2의 도전이다.

“설 연휴가 끝나는 2월20일 오전이면 저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을 겁니다. 기업가를 꿈꾼다면 정말 ‘열정’이 중요하고 고객과 직원 등 파트너와의 ‘신뢰’는 기본입니다. 그런 다음이 ‘상품’입니다.”

중견기업이란

:: 종업원 300~999명

:: 매출액 연 400억~1조원 미만의 기업

:: 숫자 - 국내 700여사로 추산

※자료: 중견기업연합회

박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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