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진(50)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국내서 손꼽히는 자동차 산업 전문가다. 경영학자로서는 다소 이례적으로 자동차 산업이라는 특정 업종을 훤히 꿰뚫고 있다. 그 덕에 현재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한국자동차산업학회는 산·학·연 협력을 바탕으로 자동차 산업 발전을 모색하는 연구단체다. 학계, 업계, 연구소 등에 종사하는 150여 명의 전문가들이 참여 중이다. 주 교수가 자동차 산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년째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조교수 시절이던 1991년 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로 학자적 관심을 자동차 산업에 꾸준히 둬왔다. 지난해에는 미국 국제경영학회가 수여하는 ‘JIBS 데케이드 어워드’ 최우수 논문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 국제경영학회 학술지인 에 실린 논문 가운데 10년 뒤 가장 많이 인용되고 큰 영향을 끼친 논문에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이다. 주 교수는 지난 2000년 ‘기업 간 신뢰 구축의 영향 변수에 관한 연구: 한국·미국·일본의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란 제목의 논문을 JIBS에 게재한 바 있다. 주 교수와 만나 최근 패러다임의 변혁기에 들어선 세계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차 산업 ‘생존 키워드’는  고연비·전장<전자장치>·친환경이다”

도요타 파문은 ‘관리능력’의 문제 … 미국의 정치적 의도도 개입

현대차 약진 원가관리·품질 덕분 … 신차 지속적 성공 이어져야

 “경영학자 입장에서 자동차 산업은 매혹적인 부분이 많아요. 새로운 경영 혁신이 자동차 산업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거든요. ‘대량생산’은 포드가 만들어냈고,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제품 차별화(혹은 시장 세분화)’는 GM이 시작했죠. 또 ‘전사적 품질관리(TQM)’는 도요타가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후 모든 산업에 확산됐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요즘 경영학자들의 화두 중 하나인 ‘기업 간 신뢰와 상생’ 연구에도 자동차 산업은 효용성이 큽니다. 일례로 완성차 부가가치의 70%는 협력업체로부터 나옵니다. 그만큼 자동차 산업에서 기업 간 협력이 매우 중요한 변수라는 거죠.”

주우진 교수는 경영학이라는 학문과 자동차 산업의 긴밀한 연관성부터 설명했다. 다른 어떤 산업보다 경영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하는 분야가 바로 자동차 산업이라는 것이다. 그가 자동차 산업을 학문적으로 들여다본 첫 번째 계기는 MIT 조교수 시절 이른바 ‘린(Lean) 생산방식’에 대한 연구에 동참했을 때다. 린 생산방식은 작업공정 혁신을 통해 비용을 줄이는 반면 생산성은 높이는 일본 도요타의 생산방식을 일컫는다. 낭비 요소를 최대한 없애 날씬한 생산방식이라는 뜻에서 ‘린’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자연스레 화제가 도요타 리콜 파문으로 넘어갔다. ‘품질의 대명사’로 불리던 도요타가 최근 대규모 리콜 사태를 빚은 데 대한 주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도요타가 양적 팽창(세계시장 점유율 확대)을 뒷받침할 만한 관리자 양성에 소홀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봅니다. 기술적 문제라기보다는 관리 능력이 부족했다는 거죠. 특히 도요타는 ‘중앙집권적’ 경영체제인 까닭에 해외시장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것이 화를 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요타는 품질 신화를 바탕으로 2000년대 이후 해외 생산을 급격하게 확대해 왔다.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물량 공세에 대대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던 것이다. 이 와중에 특유의 치밀한 품질관리 시스템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주 교수 역시 동의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게 도요타 리콜 파문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는 게 주 교수의 견해다. 그의 말이다.

“미국 정치인들의 정치적 의도도 깔려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도요타를 견제함으로써 GM이나 포드를 살리자는 거죠. GM에는 엄청난 규모의 구제금융이 투입됐습니다. 미국 정부 지분이 60%에 달해요. 결국 자국 자동차 산업을 살리기 위해 보호주의를 발동한 셈이죠. 게다가 요즘 미·일 양국 관계가 여러 정치적 이슈로 썩 좋지는 않잖습니까? 도요타 리콜 사태가 불거진 것은 그런 점에서 정치적 문제와 결부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도요타 북미 시장 판매량 회복의 비밀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지난 3월 북미 자동차 시장에서 도요타의 판매량이 눈에 띄는 회복세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도요타의 3월 판매량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각각 41%, 24%나 증가했다는 소식이다. 그로기 상태로 몰린 듯했던 도요타로선 급반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전반적인 경기 회복세와 더불어 무이자 장기할부 프로그램 등 대대적인 판촉 전략을 쓴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렇더라도 도요타의 ‘맷집’은 분명 놀라운 측면이 있다. 주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도요타가 북미 시장에서 장기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소비자 조사를 해보면 2등 브랜드의 실수에는 냉정하지만 1등 브랜드의 잘못에는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바로 1등 브랜드의 프리미엄입니다. 대규모 리콜 사태에도 도요타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원인인 셈이지요. 하지만 한 번 더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 도요타 역시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겁니다. 야구에서는 ‘삼진아웃’의 룰이 통하지만 기업 세계에서는 ‘이진아웃(두 번 잘못하면 끝장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도요타도 앞으로 ‘품질’이라는 두 글자를 더욱 뇌리에 새길 겁니다.”

세계 최고 자동차업체인 도요타가 리콜 파문으로 체면을 구겼다면, 한때 변방에 머물렀던 현대·기아차그룹은 품질과 디자인, 브랜드 가치 상승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의 다크호스로 등장하고 있다. 한·일 양국 대표 주자 간에 명암이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최근 수년간 현대·기아차의 질주는 눈부시다. 단순히 판매물량 증가세만 돋보이는 게 아니다. 미국 유력 언론은 현대·기아차의 고객 신뢰도나 소프트파워를 세계 5위권으로 평가할 정도다. 한마디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톱5 업체로 도약한 셈이다.

주 교수는 현대·기아차의 약진을 어떻게 평가할까. “근래 현대·기아차가 보여주고 있는 성과는 ‘실체’가 있는 실적입니다. 두 가지 요소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원가관리를 잘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품질이 좋아졌다는 점이죠. 특히 현대·기아차의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현대·기아차의 성공은 어느 정도 지속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자동차 산업이라는 게 부침이 심한 업종이라는 점은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잘나가는 회사라도 몇 가지 신차 모델만 실패하더라도 경영에 큰 타격을 입거든요.”

현대차 고급 차종은 ‘브랜드 분리 전략’ 써야

현대·기아차는 최근까지만 해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소형차·저가(低價)차 메이커 이미지가 고착돼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에도 점차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 엿보인다. 럭셔리 세단인 현대차 ‘제네시스’가 지난해 한국 자동차 모델로는 최초로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된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 사건이다. 현대·기아차가 고급차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에는 또 다른 대형 세단인 ‘에쿠스’도 북미 시장에 진출한다.

“현대·기아차가 제네시스나 에쿠스 등 고급차종을 북미 시장에서 성공시키려면 판매 채널과 브랜드를 분리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또한 매장을 고급화하고 고객 서비스의 질을 한층 제고해야 하지요. 이런 것은 저가차, 소형차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는 전략적 수단입니다. 도요타도 북미 시장에서는 ‘렉서스’ 브랜드로 고급 대형차 시장을 뚫었지 않습니까? 세계적 자동차업체인 폭스바겐의 고급 대형차종인 ‘페이톤’은 북미 시장에서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소형차 브랜드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죠. 그만큼 고급차 시장 진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 교수는 현대·기아차의 지속적인 성공에는 두 가지 변수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향후 출시할 신차 모델의 성공이 지속되느냐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고급차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둘 다 만만한 숙제는 아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로서는 반드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량 기준으로 톱5 업체는 도요타, GM, 폭스바겐, 포드, 현대·기아차 순이다. GM과 폭스바겐은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중이다. 현대·기아차는 톱5를 넘어 더 높은 고지로 올라갈 수 있을까. 주 교수는 다소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상위 업체들의 방어벽이 생각보다 훨씬 견고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도요타, GM, 폭스바겐, 포드 등은 각자 상당한 규모의 ‘홈구장’을 갖고 있지만 현대·기아차는 ‘홈구장’이 너무 작습니다. 한국 내수시장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됩니까? 금융위기 이후 GM이나 포드 같은 미국 업체들이 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만,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안 망합니다. 그건 바로 미국 시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자동차 판매량 기준으로 중국에 세계 1위 시장 자리를 내줬지만, 판매금액 기준으로는 여전히 세계 최대 시장이에요.”

결국 현대·기아차가 판매량 확대를 위한 전략적 승부수를 던질 곳은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신흥시장이다. 특히 방대한 인구를 가진 친디아(중국과 인도) 시장 공략에 한층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게 주 교수의 조언이다. 현재 중국과 인도는 자국 자동차업체 육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수시장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는 향후 현지 업체들과의 한바탕 혈전이 불가피한 셈이다.

국내 그린카 기술은 선진국 대비 76%

세계 자동차 산업은 지금 본격적으로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접어든 상황이다. 20세기가 내연기관 차량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친환경 차량(그린카)의 시대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하이브리드카가 상용화되기 시작한 데 이어 올해는 전기차 시장까지 열렸다.

“고유가나 환경 이슈 때문에 결국 친환경 차량 시대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당분간 자동차 시장은 기존 내연기관 차량과 친환경 차량 시장으로 이분화될 것으로 봐요. 성능이나 파워를 원하는 소비자들은 많은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연기관 차량을 구입할 겁니다. 그렇지만 내연기관 차량 시장은 갈수록 작아지겠지요. 전체 자동차 시장의 대세가 친환경 차량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이 언제가 될지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주 교수는 친환경 차량 시대가 급물살을 타기에는 제반 여건이 성숙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무엇보다 차량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다. 그나마 정부가 정책적 뒷받침을 하는 선진국들의 사정은 좀 나은 편이다.

“선진국에서는 친환경 차량을 구입할 때 보조금을 ‘세게’ 줍니다. 그 덕에 친환경 차량 보급 속도가 빨라지고 있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친환경 차량 보급이 좀 더디지 않을까 합니다. 기술적인 측면도 살펴봐야 할 대목입니다. 국내 그린카 기술은 선진국 대비 76%선에 그치고 있습니다. 지난해 현대·기아차가 하이브리드카를 출시하기는 했지만 시장 활성화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 교수는 세계 자동차 산업의 판도 변화 속에서 생존하려면 세 가지 핵심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연비 차량 개발 역량, 전장(電裝) 부문 역량, 친환경 부문 역량이 바로 그것이다. 세 가지 역량은 모두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과 맞물려 있다.

“앞으로 자동차 시장은 고연비 차량, 스마트카, 그린카가 주도할 겁니다. 당연히 각 분야에 연관된 핵심기술을 확보해야 살아남겠지요. 저는 이런 흐름이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특히 자동차가 전자화하는 전환기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과거 한국 휴대전화 산업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반도체 역량을 접목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에서 자동차 산업도 비슷한 기회를 맞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산업이든 ‘변혁기’에 큰 기회가 오기 마련입니다.”

한국 자동차 산업 ‘경쟁구조’ 복원해야

자동차 산업은 전후방 산업에 대한 파급력이 엄청나다. 당연히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막대하다.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면 국가 경제도 선순환적인 발전을 기할 수 있다. 자동차 강국들이 한결같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다만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려면 적절한 경쟁 시장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주 교수의 지적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자동차 강국은 최소 서너 개의 유력 업체가 상호 경쟁을 벌이는 시장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시장은 현대·기아차의 지배력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 주 교수의 설명이다.

“자동차 산업은 한 나라의 기간산업입니다. 특정 회사에 힘이 집중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만약 그 회사가 위기를 맞게 되면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죠. 도요타도 모두가 잘한다고 띄워주다 보니까 자만에 빠져 그런 사단이 난 것 아닙니까? 한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독과점의 폐해가 발생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따라서 한국 자동차 산업이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현대·기아차 외에도 르노삼성, GM대우, 쌍용 등이 적절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주우진 교수 프로필

주우진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MIT에서 조교수를 역임했으며, 버클리 대학에서 초청 부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1993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주 교수는 2003년 미국 마케팅교육저널에서 선정한 ‘아시아·태평양 Top 10 교수’에 2위로 뽑히는 등 국제적으로 연구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 마케팅학회 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 한국기업경영학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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