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호 한국외대 법학과, 창업, 로컬 모바일상품권 기업‘브로컬리마켓’, 중소기업중앙회장 표창 수상 / 사진 벤디스
조정호
한국외대 법학과, 창업, 로컬 모바일상품권 기업‘브로컬리마켓’, 중소기업중앙회장 표창 수상 / 사진 벤디스

“코로나19 때문에 나가기 좀 그러니까 오늘은 샌드위치 어때요?”

“찬성입니다.” “저도 찬성이요.”

서울 마곡동에 있는 로봇 솔루션 기업 ‘로보티즈’의 임직원들이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은 ‘점심 정하기’다. 오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식권대장’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각자 메뉴를 선택하면, 해당 식당으로 주문이 전달된다. 오전 11시쯤 로보티즈 사옥 앞에서 출발한 자율주행 배달 로봇은 450m 거리의 식당으로 이동한다. 로봇이 샌드위치 40인분을 싣고 다시 회사 앞으로 돌아온 시점은 오전 11시 25분. 각자의 음식을 받아들고 바로 식사를 마친 직원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등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보낸다. 식당까지 걸어가서 메뉴를 정하고, 다시 돌아오는 데 소중한 점심시간의 절반을 써야 했던 예전엔 누릴 수 없었던 여유다.

‘로봇’ ‘배달’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던 한 스타트업이 잡힐 듯 잡히지 않던 ‘무인 배달 상용화’의 첫발을 내딛고 있다. 기업용 모바일 식대 관리 솔루션, 식권대장을 운영하는 벤디스는 로보티즈와 협업해 한 달여간의 로봇 배달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동안 배달 로봇 상용화를 가로막았던 가장 큰 장애물은 시험 환경과 실제 현장의 괴리였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 형제들’은 지난해 12월 “건국대 서울캠퍼스에서 실외 자율주행 배달 로봇 ‘딜리’를 이용해 25일 동안 2219건의 주문을 성공적으로 처리했다”고 밝혔지만, 당시 시험은 캠퍼스 내 음식점 3곳에서 지정된 정류장 9곳으로 배달을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수령지도 목적지도 제각각, 다른 주문 네댓 개를 한 번에 수행하기 위해 그때그때 최적의 동선을 짜고, 주차 차량으로 꽉 막힌 복잡한 골목길을 헤쳐나가는 인간 배달원의 능력을 따라잡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벤디스가 로보티즈와 함께 계획하고 있는 직장 로봇 배달 서비스는 시험과 현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강점이다. 조정호 벤디스 대표는 4월 14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이코노미조선’과 만나 “직장인의 점심시간대 단체 주문을 로봇이 수행하게 하는 서비스는 가정배달에 비해 배달 경로가 단순하고, 도로가 잘 정비된 오피스 타운은 자율주행 난도도 상대적으로 낮다”고 말했다.


로보티즈에서 개발한 자율주행 배달 로봇이 식권대장 앱을 통해 주문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사진 벤디스
로보티즈에서 개발한 자율주행 배달 로봇이 식권대장 앱을 통해 주문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사진 벤디스
지난 1월 벤디스에서 출시해 석 달 만에 6만여 개가 팔린 간식대장. 사진 벤디스
지난 1월 벤디스에서 출시해 석 달 만에 6만여 개가 팔린 간식대장. 사진 벤디스

벤디스는 원래 어떤 기업인가.
“고객사가 종이식권이나 식대 장부, 법인카드 대신 모바일 앱을 통해 식대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이다. 종이식권은 만드는 비용부터 나눠주는 수고, 월말에 식당 수십 곳을 돌며 걷어 결산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회계부서의 고통 그 자체였다. 식대 장부나 법인카드 역시 수작업 비중이 컸고, 과다 지출이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식당 입장에서도 관리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식권대장은 모바일 앱을 통해 식대를 지급하고, 결산도 ‘원클릭’으로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양측의 비효율성을 해결하는 솔루션이다. 고객사 설문 조사를 해보니 식대 관리 부서의 평균 업무가 60%나 줄었고, 식대도 20% 절감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 번이라도 식권대장을 써본 회계 직원은 다시는 종이식권으로 돌아갈 수 없다. 신규 고객사 가운데 식권대장을 쓰는 회사에서 안 쓰는 회사로 이직한 직원이 전파한 경우도 많다.”

고객사 수와 거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현재 현대오일뱅크, 애경산업 등 대기업부터 산업은행,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380개 고객사가 식권대장을 사용하고 있다. 매달 거래되는 식대 규모는 50억원 정도다. 기업에는 서비스 사용료를 받고, 식당에는 법인카드 수수료 정도의 수익을 거둔다.”

식대 관리 서비스가 어떻게 로봇 배달로 이어졌는지 상상이 안 되는데.
“일단 식권대장 서비스가 고도화한 과정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식권대장은 회사와 가맹 식당을 상대로 하는 B2B 솔루션이지만, 실제로 식권대장을 통해 밥값을 내는 주체는 직장인이다. 이 때문에 직장인의 식사 효용을 높여주기 위해 다양한 기능을 개발해왔다. 대표적으로 한 사람이 테이블 전체를 계산할 수 있도록 하는 ‘함께 결제’라든지, 구내식당과 외부 제휴 식당을 가리지 않고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기능 등이다. 그중 ‘예약식사’라는 기능이 로봇 배달의 실마리가 됐다. 직장인의 점심시간이 안 그래도 짧은데 식당에 가서 줄 서고 조리를 기다리다 보면 커피 한잔도 마실 틈이 없어지지 않나. 미리 주문을 넣어두고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식사할 수 있게 했더니 호응이 컸다. 여기서 더 점심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식당에 가는 시간마저 없애는 ‘예약배달’이다. 그런데 제한된 식대에서 비싼 ‘인간 배달원’ 운임까지 낸다는 건 부담이다. 그런 상황에서 로봇 배달이 돌파구로 다가왔다.”

로보티즈와 협업하게 된 계기는.
“식권대장의 고객사였던 로보티즈가 공동 프로젝트를 먼저 제안했다. 로보티즈는 배달 로봇 기술이 있고, 우리는 이를 시험하고 상용화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 사업성을 분석해보니 식권대장에서 로봇 배달의 상용화가 가장 쉽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정배달의 경우 변수가 많은데, 직장 배달은 기본값이 10인분 이상 단체주문이고 경로도 단순하다. 이용자에게 줄 수 있는 효용도 뚜렷하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사라지면 소중한 점심시간이 20분은 늘어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로봇 배달 등 비대면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우리 또한 코로나19 영향으로 로봇 배달 실증 테스트 일정을 앞당겼다. 배달 수요가 폭증하고 감염 우려로 ‘문 앞 배송’을 하는 상황인데, 로봇만큼 확실한 해결책이 있겠나. 최근에 신상품을 내놓으면서도 ‘비대면 시장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구나’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선물처럼 주고받을 수 있는 스낵바 콘셉트의 ‘간식대장’인데, 별다른 마케팅 없이 석 달 동안 6만 개가 팔렸다. 만날 수 없으니 선물의 의미가 커졌다. 제약 회사처럼 영업 비중이 큰 곳에서 3000개씩 대량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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