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공기나 물 등 유체(流體)의 흐름을 분석하는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컴퓨터 그래픽(CG)에 접목시켜 배우 빌 나이 얼굴을 문어 수염을 가진 데비 존스 선장으로 만들었다. 사진 디즈니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공기나 물 등 유체(流體)의 흐름을 분석하는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컴퓨터 그래픽(CG)에 접목시켜 배우 빌 나이 얼굴을 문어 수염을 가진 데비 존스 선장으로 만들었다. 사진 디즈니

2017년 교육부에서 발표한 사교육비 현황 보고서. 여기에는 전체 사교육비 18조6000억원 중 수학에 들어간 돈이 5조4000억원이라고 쓰여 있다. 수많은 과목 중에서 수학 학원과 과외에만 사교육비의 29%가 들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수학은 여전히 어렵고 재미없는 존재다. 게다가 환율처럼 실생활에 많이 쓰이는 계산은 물론 사칙연산마저도 계산기가 척척 해결해주는 시대라 수학이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 걸까.

대답은 일본 정부가 내놓은 ‘수리자본주의의 시대: 수학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문부과학성은 보고서에서 “수학이 국부(國富)의 원천이 되는 경제, 수리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주요 산업군을 조사하고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결과다. 보고서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도 수학, 둘째도 수학, 셋째도 수학”이라며 “수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어날 파괴적 혁신을 일으킬 보편적이고 강력한 도구”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불모지와 다름없다. 한국의 경우 수학의 학문적 수준은 세계 11위지만, 국내 수학자 중 88%가 순수 학자로 수리자본주의를 이끌 인력이 부족하다. 반면, 미국에선 수학 박사의 30%, 일본은 12%가 고액 연봉을 받고 기업에 취직한다. 이에 정부는 2016년 기준 1.8% 수준인 수학 박사의 산업계 진출 비율을 2021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응은 미흡하다. 우선 예산이 부족하다. 국내 유일의 수학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인 국가수리과학연구소가 올해 배정받은 예산은 90억원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 가운데 꼴찌다. 김치연구소(147억원)보다 적다. ‘수학이 힘이 될 시대’를 앞두고 수학이 중요한 이유와 수학 인재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을 보고서를 통해 살펴봤다.


수학은 암기 아닌 응용, 4차 산업에 필요한 사고력 키워

수학은 응용 사고를 하기 위한 기초 원리를 배우는 학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지식의 총량이 많아지고, 새로운 지식이 계속 쏟아진다. 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느냐보다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이때 필요한 것이 수학이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미적분 문제를 풀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미적분과 같은 수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면 IT·영화·경제 등 다른 분야에 적용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가속화한 AI가 대표적이다. AI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세돌 9단을 꺾은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AI ‘알파고’. 이를 움직이게 한 알고리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명령의 구성과 절차)의 기반은 수학이다. 딥마인드는 수학을 기반으로 바둑 대국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계산했고, 이를 알파고가 학습해 승리했다.

일본 전자상거래 기업 라쿠텐은 “앞으로 AI가 산업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AI를 개선·발전시킬 때 수학과 과학 소양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수학을 기반으로 한 통계학이야말로 빅데이터 시대에 넘쳐나는 자료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다”고 덧붙였다.

영국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수학을 꼽았다. 영국 총리 직속 ‘공학 및 자연과학 연구위원회’는 지난해 발표한 ‘수학의 시대’라는 보고서를 통해 “21세기 산업은 수학이 좌우할 것”이라며 수학이 영국 전체 고용의 10%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수학전공자 점점 더 필요…교육 쇄신, 산·학 협력 절실

산업 분야에서 수학전공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수학이 갖는 논리력, 통찰력이 새로운 산업 트렌드와 맞물려 재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7~8년 사이에 미국 인기 직업 상위 10위 안에 수학 관련 직업이 4개 들어갔다. 다보스포럼 미래고용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 인재의 핵심 역량은 수학적 사고”라며 새로 태어날 미래 직업 200만종 중 41만 종을 수학 관련 직업이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예상한 듯 2006년부터 수학 능력을 갖춘 인재 양성에 나섰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먼저 충격요법을 썼다. ‘잊힌 수학·과학’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열악한 수학 연구환경, 낮은 연구 수준을 꼬집은 것. 이후 일본 정부는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산·학 협력이 이뤄지도록 했다. 학생 때부터 기업과 연구과제를 수행한 이들이 수학 박사 과정을 밟은 이후 자연스럽게 기업으로 갈 수 있는 통로를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경제산업성과 문부과학성은 수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의 수학 교육 전면 쇄신 방안을 추가로 제시했다. 도쿄대·교토대·홋카이도대·오사카대·규슈대·시가대 등 6개 대학을 중심으로 수학 교육과정을 새로 구성할 예정이며 추후 여타 20개 대학으로 확산하기로 했다. 또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때 수학 교육을 이수한 사람에게 가점을 주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실제로 일본에선 수학 전공자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2019년 채용인력을 2년 전보다 7.7% 줄일 것이라면서도 수학 전공자는 69.2% 더 늘리겠다고 답했다.


plus point

수학으로 ‘토이스토리’ 성공시킨 잡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수학 인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잡스는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뒤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를 인수해 장난감들의 우정과 모험을 다룬 ‘토이 스토리’를 만들었다. 잡스는 ‘토이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애니메이션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수학자들을 대거 고용했다. 3차원(3D) 장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에는 치밀한 수학 공식이 적용됐고, 손으로 그린 그림보다 부드럽고 생생한 영상이 등장했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토이 스토리’는 전 세계에서 3억6200만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수학자들은 수학에 기반한 컴퓨터 그래픽(CG)을 이용해 3D 애니메이션 기법을 연구했다. 이들은 작가들이 그린 그림을 수식으로 변환했다. 다음엔 미분 공식을 사용해 인물이나 배경 그림을 확대해도 선명한 그림을 만들어내도록 했다. 수학 공식을 이용해 하나의 그림을 늘이거나 줄여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제작 기간과 투자비를 줄인 ‘토이 스토리’가 탄생했다.

잡스가 불어넣은 ‘애니메이션계 수학’ 바람은 픽사를 인수한 디즈니에도 이어졌다. 디즈니가 만든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거대한 파도는 CG로 만들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응용수학자인 론 페드큐 교수가 공기나 물 등 유체(流體)의 흐름을 분석하는 수학 공식을 CG에 적용해 파도가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페드큐 교수는 이 성과를 인정받아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받았다.

정미하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