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발 SPA 브랜드 페이리스가 지난 11월 가짜 명품 매장을 열고 패션 분야의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을 초대해 자사의 저렴한 신발을 고가에 판매했다. ‘저가 신발도 고급스럽게 포장하면 비싸게 팔릴 수 있을까’에 대한 실험이었다. 사진은 기존 페이리스 매장(왼쪽)과 가짜 명품 매장. 사진 페이리스
미국 신발 SPA 브랜드 페이리스가 지난 11월 가짜 명품 매장을 열고 패션 분야의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을 초대해 자사의 저렴한 신발을 고가에 판매했다. ‘저가 신발도 고급스럽게 포장하면 비싸게 팔릴 수 있을까’에 대한 실험이었다. 사진은 기존 페이리스 매장(왼쪽)과 가짜 명품 매장. 사진 페이리스

지난 11월말 미국 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에서는 소비자의 브랜드 인식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진행됐다. 미국 신발 제조·유통 일괄형(SPA) 브랜드 페이리스(Payless)가 가짜 명품 매장을 열고 패션 분야의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influencer·SNS 등에서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을 초대해 자사의 저렴한 신발을 고가에 판매한 것이다. ‘저가 신발도 고급스럽게 포장하면 비싸게 팔릴 수 있을까’에 대한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의 마케팅 회사 ‘DCX Growth Accelerator’에 의해 아주 정교하고 세밀하게 계획됐다.

페이리스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의 한 쇼핑몰 매장을 6일간 임대해 ‘팔레시(Palessi)’라는 가짜 브랜드를 만든 후 이곳에 팝업스토어(Pop-up store)를 열었다. 매장 조명부터 장식품, 점원들까지 최대한 고급스럽게 세팅했다. 그리고 유명한 패션 인플루언서들을 이곳에 초대했다.

팔레시 매장의 신발들은 모두 페이리스의 제품이었다. 페이리스는 고급 부티크처럼 소수 제품만 매장에 진열했고 35달러짜리 신발에 원래 판매가의 18배가 넘는 가격(645달러)을 매겼다. 또 페이리스 로고가 찍힌 제품에 정교하게 팔레시 라벨을 붙였다.


몇 시간 만에 3000달러어치 신발 판매

페이리스는 팔레시를 이탈리아의 신발 장인 브루노 팔레시(Bruno Palessi)가 만든 ‘하이엔드 패션(high-end fashion·최고급 패션)’ 브랜드로 소개했다. 팔레시를 명품 브랜드로 인식한 인플루언서들은 이날 수백달러를 내고 값싼 페이리스 신발을 구입했다. “정말 고급스럽고 훌륭한 신발”이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이날 매장에서는 오픈 몇 시간 만에 3000달러(약 330만원) 상당의 제품이 판매됐다.

페이리스는 제품을 구매한 인플루언서들을 매장 뒤편으로 데려가 실험에 대해 설명하고 이들이 낸 돈을 모두 돌려줬다. 페이리스는 이들이 구입한 신발을 돌려받지 않은 대신 이들이 팔레시의 신발에 대해 평가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광고로 활용했다.

온라인상에서는 페이리스의 고급 브랜드 위장 실험에 대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마케팅 측면에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독특한 실험으로 페이리스를 전혀 모르던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알렸기 때문이다. 세라 카우치 페이리스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페이리스의 제품이 저렴하면서도 명품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마케팅 교수와 미국 리하이대 마케팅 조교수는 마케팅 측면에서 이번 페이리스의 실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네 가지를 소개했다.


수백가지의 신발이 빼곡하게 쌓여있는 페이리스 매장. 사진 페이리스
수백가지의 신발이 빼곡하게 쌓여있는 페이리스 매장. 사진 페이리스

1│품질 검증 없이도 명품 브랜드로 인식

페이리스의 실험은 제품을 둘러싼 판매환경이 소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바라 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마케팅 교수는 “매장을 방문한 인플루언서들은 신발 자체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환경적 신호를 통해 자신이 고급 신발을 구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페이리스는 매우 멋진 포장(packaging)으로 제품의 품질을 평가하는 소비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페이리스의 팝업스토어는 완벽하게 꾸며졌다. 여느 명품 브랜드의 론칭 행사장처럼 입구에는 포토월이 마련돼 있었고, 행사 현장을 촬영하는 전문 스태프도 고용했다. 단순함을 극대화한 로고(Palessi) 앞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조각상을 배치했고, 매장에는 금장 마네킹을 세워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페이리스 매장에는 수백가지의 신발이 빼곡하게 쌓여 진열돼있지만, 팔레시 매장에는 고급 부티크처럼 선별된 소수의 제품만 여유 공간을 충분히 갖도록 배치됐다. 매장을 브랜드 이미지를 나타내는 하나의 ‘포장지’로 보고 매우 멋지고 고급스럽게 만든 것이다. 이런 매장 환경은 인플루언서들에게 자신들이 이탈리아 신발 장인이 만든 아주 고급스러운 신발 브랜드 출시 행사장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했다. 명품 브랜드 행사장에 온 것처럼 쇼핑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

페이리스의 실험은 ‘소비자가 매장에서 인식한 브랜드 이미지가 제품 품질에 대한 예측을 결정 짓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컨대 팔레시를 명품 브랜드로 인식한 인플루언서들은 자연스럽게 제품의 질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칸 교수는 “신발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인 제품일지라도 제품에 대한 평가는 ‘포장’의 영향을 받는다”며 “페이리스는 소비자의 행동을 매우 기민하게 예측하고 이를 활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소비자들이 신발을 단지 들어보고 살펴보는 것만으로 제품의 질을 판단하긴 어렵다. 신발의 품질을 판단하려면 신어보고 착용감을 느껴봐야 하기 때문에 몇 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페이리스의 실험에서 보듯 소비자들은 순간적으로 인식한 브랜드 이미지를 토대로 구매를 결정했다. 매장에서의 경험이 제품 품질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도 소비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매장 위치·제품 진열이 착각 일으켜

페이리스는 이번 행사에서 촬영한 영상을 광고 영상으로 활용했다. 영상에는 인플루언서들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디자인”이라며 페이리스의 신발을 극찬하는 모습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고 “말도 안 돼(Shut up!)”라며 충격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실험을 통해 회사는 ‘패션 인플루언서들조차 명품으로 착각할 정도의 제품을 페이리스에서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실험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완벽하고 철저한 준비가 실험을 성공시켰다고 분석했다. 인플루언서들이 매장에 초대됐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것을 절대 알아차릴 수 없었다. 페이리스는 이 실험의 시작과 끝을 완벽하게 계획했기 때문이다. 칸 교수는 “페이리스는 팔레시 매장의 위치와 제품 진열, 행사 촬영 방식 등 실험의 모든 단계를 철저히 준비했다”며 “빈틈없는 기획이 마케팅 실험을 성공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도비카 케사레오 미국 리하이대 마케팅 조교수는 “페이리스가 6일간 임대한 팔레시 매장은 과거 명품 브랜드 ‘아르마니(Armani)’ 매장이 있던 곳이었고 루이뷔통, 마이클 코어스, 티파니 등 고급 명품 브랜드 매장 근처 자리”라며 “브랜딩 관점에서 볼 때 소비자들은 이들 브랜드와 비슷한 수준의 브랜드만이 이 자리에 입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매장 위치까지 신중하게 고려한 페이리스의 전략이 인플루언서들을 완벽히 속게 만든 것이다.


가짜 명품 브랜드 출시 행사에 초대된 인플루언서들은 페이리스의 제품을 명품이라 착각하고 최대 18배에 달하는 비싼 돈을 주고 신발을 구입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가짜 명품 브랜드 출시 행사에 초대된 인플루언서들은 페이리스의 제품을 명품이라 착각하고 최대 18배에 달하는 비싼 돈을 주고 신발을 구입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3│트렌드 주도하는 인플루언서 적극 활용

페이리스는 소셜 미디어의 강력한 전파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우선 인플루언서들을 대거 초청해 이들을 팔로우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했고, 이 실험을 촬영한 영상을 광고로 만들어 온라인상에서 적극적으로 공유되도록 했다.

소셜 미디어의 강력한 전파력은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나온다. 이들은 수백만명의 잠재적 소비자들이 팔로우하는 자신의 계정에 제품을 등장시킴으로써 제품을 홍보하고 전파한다. 모비인사이드가 브랜드 마케터 18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지난해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집행한 사람은 86%,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효과적이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92%에 달했다.

와튼스쿨이 분석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 젊은 여성의 86%가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특정 인플루언서 계정에 접속해 정보를 얻는다. 케사레오 조교수는 “모든 정보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유되는 디지털 시대에 페이리스가 인플루언서를 마케팅에 활용한 것은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인플루언서들은 이미 소매업체의 마케터, 패션 기자들, 디자이너들을 대체하면서 패션 트렌드를 전파하는 주체로 활약하고 있다. 와튼스쿨은 인플루언서들이 빠르게 변하는 패션 트렌드를 알리고 심지어는 트렌드를 주도하기까지 하면서 SPA 브랜드와 같은 패스트패션 산업이 빠르게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SPA 업계는 급변하는 소비자 니즈에 맞춰 싸고 저렴한 의류·신발 등을 빠르게 공급해왔다.

재미있는 영상을 보고 공유하기를 즐기는 밀레니얼 세대에 동영상을 통한 마케팅은 매우 효과적이다. 칸 교수는 “페이리스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플루언서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그대로 광고에 활용한 것은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었다”며 “재미있고 놀라운 감정 변화를 담은 영상은 임팩트가 크고 이러한 영상이 소셜 미디어상에 공유되고 게시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이 신발은 기존 판매가의 18배가 넘는 가격(645달러)에 판매됐다. 사진 페이리스
이 신발은 기존 판매가의 18배가 넘는 가격(645달러)에 판매됐다. 사진 페이리스

4│독특한 경험 줘야 소비자가 온다

페이리스는 이번 실험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홍보 효과를 얻었다. 또 그동안 부정적인 이슈들로만 다뤄졌던 페이리스의 헤드라인을 단번에 반대로 바꿔놓았다.

페이리스의 헤드라인은 한동안 부정적이었다. 1956년 미국 캔자스주 토피카에서 설립돼 30여개국에 4400여개 매장을 운영해온 페이리스는 지난해 4월 경영 악화로 파산 신청을 한 이후 현재까지 700여곳의 매장을 닫았다. 온라인 중심 쇼핑 문화가 확산되면서 대형 매장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판매에 주력해온 페이리스가 매출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번 실험 성공으로 인해 대대적으로 언론에 다뤄지기 전까지 페이리스를 장식한 키워드는 ‘파산’과 ‘매장 철수’ 같은 것들이었다.

칸 교수는 “페이리스는 이번 실험으로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을뿐더러 키보드 앞에서 온라인 쇼핑만 하던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다시 불러모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 소매업계는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팝업스토어나 쇼룸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나이키는 최근들어 단 4일 동안만 운영되는 팝업스토어를 열고 고가의 제품을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케사레오 조교수는 “기업이 고객과 상호작용을 하려고 할 때 실제 오프라인 매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다”며 “매장에서만 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 소비자를 매장에 오게끔 하고 이 경험이 다시 온라인에 게시돼 디지털 세계에서 공유될 수 있다”고 말했다.

페이리스의 실험이 마케팅 성공사례로 주목받고 있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실험이 페이리스를 잘 몰랐던 소비자들에게 페이리스를 알리는 계기가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품을 구매하던 소비자가 페이리스를 구매하려 하진 않을 거라는 시각이다.


지속적인 소비자 유입은 숙제

칸 교수는 “명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단순히 저렴한 명품 모조품을 구매하기 위해 페이리스에 가진 않을 것”이라며 “일반적인 페이리스 매장은 가짜 팔레시 매장만큼 세련되고 고급스럽지 않다”고 지적했다. 케사레오 조교수 역시 “페이리스가 광고에 들인 돈과 노력보다도 더 큰 홍보 효과를 봤겠지만 이 효과가 장기적인 이익으로 전환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알린 것과 더불어 페이리스가 실제로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칸 교수는 “이번 실험이 저렴한 가격에 세련된 디자인을 찾는 젊은 소비자층에 페이리스가 가볼 만한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줬을 것”이라며 “이런 소비자를 꾸준히 유입시키는 게 앞으로 페이리스에 주어진 과제”라고 설명했다.


plus point

새로운 유행 만드는 팝업스토어

나이키의 팝업스토어. 사진 유튜브 캡처
나이키의 팝업스토어. 사진 유튜브 캡처

글로벌 유통업계가 잠깐 열었다가 판매가 끝나면 철수하는 ‘팝업스토어’를 주목하고 있다. 팝업스토어는 대도시 한복판에서 새로운 유행을 만들거나 신제품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나이키는 최근 들어 단 4일만 운영되는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다. 고가의 제품을 한정 수량으로 팔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밤을 새워서 팝업스토어가 문을 열기만을 기다린다.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도 최근 팝업스토어에서 일부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이 브랜드의 충성 소비자들은 기꺼이 팝업스토어를 찾아 누구보다 먼저 신제품을 접하고 한정 판매되는 제품을 산다. 왜 이런 불편하고 낯선 경험에 소비자가 열광할까. 전문가들은 “고정된 장소, 고정된 서비스에선 찾을 수 없는 즐거움과 재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팝업스토어는 한시적이고 새롭다. 팝업스토어를 찾는 사람들은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누구보다 앞서 경험한다는 데서 자부심을 느낀다. 이들은 흔한 경험이 아니라 ‘새로움’을 찾는 사람들이다. 온라인 쇼핑에 밀려 오프라인 매장의 소비자들을 잃고 있는 기업은 팝업스토어를 주목해야 한다. 온라인 쇼핑에선 제공하지 못하는 새로운 경험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기업 회생의 기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예리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