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울산과학기술원 2차전지 연구센터에서 한 연구원이 현미경으로 전지 원자배열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정해용 기자
5일 울산과학기술원 2차전지 연구센터에서 한 연구원이 현미경으로 전지 원자배열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정해용 기자

태풍 콩레이가 북상 중이던 10월 5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의 울산과학기술원(유니스트‧UNIST)은 적막함이 가득했다. 셔틀버스 한 대가 서서히 단풍이 들기 시작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진입로를 지나 중앙광장에 멈추자 십여 명의 학생이 종종걸음으로 캠퍼스 안으로 흩어졌다.

유니스트 중앙광장을 왼쪽으로 끼고 캠퍼스 가장 뒤쪽으로 200m쯤 걷다보니 ‘Battery R&D Center’라는 흰색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 건물 앞에는 단풍나무 서너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었고 우산을 쓴 연구원들이 연신 드나들었다.

최첨단 연구 장비와 양산 설비를 갖춘 국내 최대 대학 배터리 연구소로 꼽히는 이 센터에는 9명의 국내·외 교수와 100여 명이 넘는 연구원들이 모여 있다. 스마트폰용 소형 전지는 물론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용 중대형 전지를 만들어 연구한다.

국비를 포함해 총 177억원이 투입된 이 센터는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6364㎡(1925평) 규모다. 배터리 연구만을 위한 이정도 규모의 대학 연구시설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한국 정부는 물론 삼성SDI, 현대자동차, 일본 전자현미경 업체 지올(JEOL) 등도 센터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연구센터 소개를 맡은 조재필(센터장) 교수는 청바지에 유니스트 로고가 박힌 푸른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를 따라 들어간 센터의 내부는 연구센터라기보다는 제조공장에 가까웠다. 이곳에선 큰 벽돌만한 전기차 배터리를 매달 수십킬로그램씩 생산하고, 이를 수백만분의 1로 확대한 후 원자구조까지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하다.

첫 번째 들른 곳은 센터 1층의 ‘드라이 룸(Dry Room)’으로 불리는 전지제조실. 출입문에는 ‘최대수용인원 6명’이라는 경고 문구가 있었다. 이곳은 배터리 제조를 위해 공기 중의 수분을 0.1%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출입자들이 호흡하면서 내뿜는 수분량이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용 인원을 제한하는 것이다. 드라이 룸 안은 너무 건조해서 사람이 한 시간 이상 있기 힘들고 여성 연구원의 경우 수십 분 정도면 화장이 모두 말라버릴 정도다.


고가의 최첨단 장비 갖춰

드라이 룸 옆 연구실로 들어서자 4m 정도의 긴 원통 형태의 현미경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곳에만 있는 2차전지 투과전자현미경(TEM·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이다. 전지가 과열된다든지 문제가 생길 경우 수백만 배까지 확대해 원자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다. 일본의 지올이 만든 이 현미경은 45억원짜리다. 컴퓨터 스크린의 까만 점(원자)들을 들여다보고 있던 한 연구원은 “서울 도곡동 아파트보다도 훨씬 비싼 장치”라며 웃었다. 조 교수는 이 비싼 게 일본 회사의 제품이라며 씁쓸해했다. 스크린에 확대된 전지의 원자 배열은 마치 회색 스웨터처럼 흰색 바탕에 까만 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1층의 또 다른 2차전지 분석 장소는 5m 거리의 맞은편에 있었다. 투박한 사각형 원통 중간에 지름 2~3㎝가량의 쇠봉이 있는 이 기계는 포커스드 이온 빔(FIB‧Focused Ion Beam)으로 불린다. 전지의 중간을 절단해 단면을 분석할 수 있는 장치다. 기계 우측 상단에는 일본의 전자기기 회사 히타치(HITACHI)의 로고가 있었다. 투과전자현미경보다 가격이 저렴하지만 그래도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 한 채 값인 16억원에 달한다.

“큰 것(전지)을 보여 주겠다”라는 조 교수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본격적으로 전지를 생산하는 설비들이 나타났다. 삼성SDI와 함께 생산하는 전기차용 중대형 전지 양산 장치가 중앙에 들어서 있었다. 여기선 양‧음극과 전해질을 압축해 코팅하고 실제 완제품 전지까지 만들 수 있다.

생산 장비 옆쪽에는 대형 냉장고 형태의 전지 실험장치가 놓여 있었다. 장치의 문을 여니 완성된 전지가 6가닥의 전선과 연결돼 가동되고 있었다. 전기차 등에 사용될 때 배터리를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을지 실험하기 위해 충전과 방전이 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 꺼낸 전지는 삼성SDI와 함께 만든 제품인데 한 손으로 들기에는 다소 벅찰 정도로 무거웠다.

이 센터에서는 매달 50kg 정도의 2차전지를 생산해 이를 분석한다. 배터리 50kg은 스마트폰 500개에 들어가는 용량이다.

“쓸데없이 책만 많은 연구실은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는 조 교수의 말을 뒤로하고 센터를 나섰다. 센터 밖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plus point

[Interview] 조재필 유니스트 교수
“폭발 위험 없는 전고체전지 2020년대 중반 나온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 교수(2차전지 산학연 연구센터장). 사진 울산과학기술원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 교수(2차전지 산학연 연구센터장). 사진 울산과학기술원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뷰 101번 고속도로를 달리던 전기차 테슬라 ‘모델X’가 갑자기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으며 뒤따르던 차량 2대와 추돌했다. 모델X는 불길에 휩싸였고 38세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미국 소방‧경찰 당국이 추정하는 사고 원인은 전기차에 들어간 리튬이온배터리 과열이었다. 2016년부터 이와 비슷한 사고가 매년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주차돼 있던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에서 화재가 발생해(8월 1일 경북 경산시) 전기차의 안전성을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이렇게 불안하게 전기차를 사용하는 일은 향후 10년 안에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발열 가능성이 없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All-Solid State)전지의 상용화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전지 연구기관인 울산과학기술원 2차전지 연구센터의 조재필 센터장에게 전기차 배터리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리튬이온전지와 비교해 전고체전지는 얼마나 안전한가.
“지금의 리튬이온배터리는 전해질로 액체를 사용하는데 충전할 때 열이 발생해 배터리가 가열된다. 섭씨 70°c 이상의 고온까지 가열되는데 이러다가 폭발 등 사고가 발생한다. 냉각수를 사용하긴 하지만 언제든 사고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전고체전지는 전해질이 고체여서 가열되지 않아 폭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

전고체전지로 전기차를 본격적으로 만들 수 있는 시기는.
“도요타가 2022년까지 전고체전지가 탑재된 전기차를 선보인다고 했는데 (목표 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대 중반쯤 되면 전고체전지를 탑재한 전기차를 연간 5000대가량 만들어내는 수준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2030년쯤 되면 매년 1만 대 이상 전기차를 100% 전고체전지를 탑재해서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SDI나 LG화학 등 국내 전지 제조사들은 리튬이온전지 부문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리튬이온전지의 안전성이나 기능성을 강화하는 게 나을 수 있지 않나.
“발화 가능성도 문제지만 지금 리튬이온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선 아무리 빨라도 30분에서 1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고열에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고속충전이 어렵다. 전고체전지를 이용하면 10분에서 15분이면 100% 충전할 수 있고 한 번 충전으로 수백킬로미터를 운행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을 두고 1시간씩 충전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장기적으로는 무조건 전고체전지로 가야 한다. 방법이 없다.”


▒ 조재필
경북대 재료공학과, 아이오와주립대 세라믹공학 박사, 삼성SDI R&D센터 수석연구원, 한양대 응용화학과 교수, 울산과학기술원 연구처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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