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일을 혁신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창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대기업에서 일을 혁신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창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고(故) 스티브 잡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리드대에서 철학을 공부하다가 1년 만에 중퇴했다. 잡스는 20세에 애플을 창업하고,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I’이라는 역사적인 개인용 컴퓨터(PC)를 출시했다. 잡스와 동갑인 빌 게이츠도 20세에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했다. 미국 최고 명문대인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MS를 창업했고, PC용 운영체제(OS) MS-DOS를 개발해 31세의 나이로 억만장자가 됐다.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대에 다니면서 페이스북을 창업했다. 19세 때의 일이다. 하버드대 학생들만 이용하던 웹사이트로 시작했지만,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성격이 변하면서 세계 최대의 소셜 미디어로 성장했다. 저커버그 역시 대학을 중퇴했다.

맨손으로 창업해 부(富)를 일군 ‘기업가(entrepreneur)’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10대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대학은 중퇴하고, 20세쯤의 어린 나이에 창업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쑥쑥 커나가 30세쯤에 억만장자 대열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잡스, 게이츠, 저커버그같이 대중매체에서 많이 접한 유명한 기업가들이 대부분 이런 유형이기 때문이다. 특히 ‘창업을 하려면 어린 나이에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최근 스타트업 창업 붐이 일면서 많은 대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창업에 뛰어들었고, 정부에서도 취업난 해소를 위해 청년 창업을 장려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 강해졌다.

창업이야 나이에 상관없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많은 창업자들이 실패를 맛본다. 창업 준비가 덜 됐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좋지 않았을 수도 있고, 경영 능력이 떨어져서 실패할 수도 있다.

창업할 수 있는 능력을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확실한 건 대학은 아니다. 학교에선 실무를 경험할 수 없다. 답은 의외의 곳에 있다. 바로 ‘대기업’이다. 한국에선 청년들이 이름난 대기업에만 입사하느라 재수·삼수하면서 창업은 외면한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야말로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고,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며, 창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데도 도움이 된다. 경제학자이자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유잉 매리언 카우프만 재단(Ewing Marion Kauffman Foundation)’의 총장을 지낸 칼 스람(Carl Schramm) 시러큐스대 교수가 기업가들을 연구한 뒤 내린 결론이다.

스람 교수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비즈니스 분석 저널에 출연해 나눈 대담에서 “(창업에 관해) 우리가 가진 신화는, 유니콘 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스타트업)은 저커버그와 같은 사람들이 20대에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중간 정도의 경력(대략 10~15년)을 쌓은 30~40대들이고, 그들은 실제로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며, 이 아이디어는 사업을 성공시키기에 충분히 훌륭하다”라고 했다.

그는 ‘기업가 정신’에 대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마치 치과의사나 회계사가 되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기업가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그들이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기업가가 된다”고 했다. 기업인이 되기 위해 대학에서 기업가 정신에 대해 배울 필요는 없다. 

스람 교수는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커리큘럼은 없어져야 한다. 많은 기업가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창업하는지 배우는 게 아니라, 그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 사이에서 나온다”라고 했다. 그래서 미국에선 점점 더 많은 기업가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칼텍)에서 나오고 있다. MIT에선 기업가 정신을 강의하는 교수가 단 한 명뿐이고, 칼텍에는 아예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기업가를 두 대학이 배출해 왔다.

대기업에서 일한 경험은 창업할 때 어떤 이점을 줄까? 스람 교수는 그의 저서 ‘경영 계획을 불태워버려라– 위대한 기업가가 진짜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Burn the Business Plan: What Great Entrepreneurs Really Do)’에서 기업가가 되는 법을 배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기업 입사라고 했다. 혁신은 대학교 실험실보다 대기업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대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일이 돌아가게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대기업에서 쌓을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은 학교에선 배울 수 없는, 대단히 중요한 자원이다.


실무 경험은 창업 이후 큰 도움

다이슨을 창업한 제임스 다이슨이 대기업에 다니다 아이디어를 얻어 창업해 성공한 사례다. 그는 1970년 영국 왕립예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엔지니어링 회사인 ‘로토크(Rotork)’에 취직해 무거운 화물을 신속하게 운반할 수 있는 고속 상륙선 ‘시 트럭(Sea truck)’을 개발했다. 1970년대 다이슨은 집에서 청소하다가 진공청소기 흡입력이 시원찮아 속이 터졌다. 청소기를 분해해 먼지봉투의 미세한 구멍을 먼지가 막아 흡입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청소기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이슨은 우연히 방문한 제재소(製材所)에서 공기 회전을 이용해 공기와 톱밥을 분리하는 ‘사이클론(Cyclone)’ 기술을 보고, 진공청소기의 흡입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로 채택했다. 사이클론 방식을 진공청소기에 접목시키기 위해 5년 동안 5127개의 시제품을 제작한 끝에 1984년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지포스(G-FORCE)’를 개발했다. 그는 1983년 일본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생산해 줄 기업을 찾았고, 판매에 성공했다. 더욱 앞선 사이클론 청소기 만들기를 원한 그는 1991년 ‘다이슨’을 설립했다.

다이슨을 창업한 제임스 다이슨. 사진 다이슨
다이슨을 창업한 제임스 다이슨. 사진 다이슨

사실 잡스도 채 1년이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게임 회사 아타리에서 게임 디자이너로 일했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휼렛패커드(HP)에서 일했다.

대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뒤 창업하는 것이 좋은 한 이유는 재무적인 측면에서 20대보다 사정이 낫다는 점이다. 스람 교수는 “30~40대는 모아 놓은 저축과 자산이 있고, 친구와 가족에게서 돈을 빌릴 수도 있다. 20대와 비교해 40대엔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고, 아마 집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직업이 있는 배우자가 있어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들더라도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안정적이다”라고 했다.

다이슨이 그랬다. 다이슨이 회사를 그만두고 시제품을 제작할 때 교사인 그의 부인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적은 돈이지만 살림을 꾸릴 수 있었다. 다이슨은 매출이 35억파운드(약 5조1000억원, 2017년)에 달할 정도로 거대 기업이지만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고 가족 기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창업 초창기에 외부 자금을 받지 않아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부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미국 시애틀 본사에 위치한 아쿠아리움 개장식에서 수족관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미국 시애틀 본사에 위치한 아쿠아리움 개장식에서 수족관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현재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부자 제프 베이조스도 대기업을 다니다가 결혼한 뒤 30대에 창업한 사례다. 베이조스는 프린스턴대에서 전기공학을 배운 뒤 미국의 대형 은행이었던 뱅커스트러스트에 입사해 일하다가, 헤지펀드 ‘디이쇼(D.E. Shaw)’로 이직해 부사장까지 승진했다. 

그는 디이쇼 사무실에서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 세상에서 판매할 수 있는 상품 목록을 보다가 ‘인터넷 서점’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30세의 나이로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에 사표를 낸 베이조스는 디이쇼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 메켄지 베이조스와 함께 뉴욕을 떠나 미국 서부로 향했다. 부인이 운전하는 동안 베이조스는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베이조스 부부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창업자금을 빌려 1995년 아마존닷컴을 만들었다.

창업자 다이슨은 가족 기업으로 남아 있으면 주주들을 신경 쓰지 않고 큰 프로젝트에 자유롭게 투자하고 기술을 개발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상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스람 교수도 이 말에 동의한다. 그는 “창업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능력이 있고, 외부 투자자의 자금이 필요 없다면 회사를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남은 인생을 회사에서 보낼 수 있고, 창조성을 모두 사업에 쏟아부을 수 있다”고 했다.

중년의 창업자는 청년 창업자보다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벤저민 존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40대 이상 중년 창업자의 스타트업이 성공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확률이 20대 창업자보다 훨씬 높았다. 기업공개(IPO)를 거쳐 증시에 상장된 업체를 살펴보니 창업자 평균나이는 46.7세였다.


대기업은 혁신이 일어나는 곳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기 원하는 사람은 진취적이지 않고 창의성이 없다는 인식이 있다. 대부분의 학생이 기업에 취직하지만 말이다. 스람 교수는 “대학생들은 정부나 비영리단체,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기업에서 일하는 회사원보다 더 창의적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현실적으로는 95%의 학생이 졸업 후 기업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그들은 결코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 시러큐스대 졸업식 모습. 대학교 졸업자 대부분이 기업에 취직하지만, 여전히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시러큐스대 졸업식 모습. 대학교 졸업자 대부분이 기업에 취직하지만, 여전히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사진 블룸버그

대기업은 창의성을 펼쳐 보일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장소다. 창업해 기업인이 되기 원하지만 21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나갈 만한, 정말로 위대한 아이디어가 없다면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스람 교수는 “큰 사업체를 만들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곳이 대기업이다. 대기업에서 일을 혁신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기업은 항상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 변화를 꾀하고, 연구·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 일상 생활에 혁신을 가져오는 제품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곳이다.


plus point

국내 ICT 창업자, 40대가 강세

베이조스처럼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도 대기업에 다니다 30대에 창업해 성공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SDS에 입사한 뒤, 사내 벤처로 1997년 네이버를 세웠다. 삼성SDS에서 독립해 네이버를 창업한 해는 1999년으로 이해진 전 네이버 의장이 32세 때의 일이다. 스타트업은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청년이 창업한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은 30대 창업자가 세웠다.

최근 국내에서 창업하는 ICT 기반 스타트업 창업자는 40대가 강세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에 따르면 ICT 스타트업에서 40대 창업자 비율은 2013년 45.6%에서 지난해 49.1%로, 50대 이상은 26.9%에서 32.3%로 늘었다. 연령별로는 40대가 가장 많고, 50대가 그다음, 30대가 세 번째, 60대 이상이 네 번째다. 20대는 가장 마지막이다. 40대 이상이 창업한 기업 수가 지난해 1만8850개를 기록했다. 4년 만에 70% 늘어났다.

남들이 은퇴할 나이에 창업해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다. 최종웅(61) 인코어드테크놀로지스 대표는 1982년 금성계전에 입사해 한 회사에서만 30년 넘게 일했다. 2013년, 그는 LS산전 사장직을 내려놓고 미국 실리콘밸리에 에너지 수요 관리 스타트업을 세웠다. 실시간으로 전기 사용량을 측정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지난해엔 소프트뱅크로부터 1100만달러(약 120억원)를 투자받았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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