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_50.jpg
글로벌 IT 업계의 연령 차별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년층일수록 IT 업계에서의 창업 성공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12월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중싱그룹(ZTE)의 연구·개발(R&D) 엔지니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이 위치한 ZTE 본사 건물 26층에서 투신 자살했다. 이 엔지니어의 죽음은 아내가 쓴 블로그 글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아내는 “남편이 부당하게 해고됐다”고 주장했지만, ZTE 측은 이 엔지니어의 해고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앞길이 창창한 엔지니어의 죽음을 두고 각종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현지 언론과 네티즌들은 이 엔지니어의 나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42세인 그가 ‘고령’이라는 이유로 해고됐을 수 있다는 추측이다.

미국 경제 주간지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이 같은 사례를 소개하며 ‘30대 이상 엔지니어들의 중년 위기’가 중국 정보통신(IT) 업계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고 5월 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IT 업계에선 30대 이상은 퇴물로 간주돼 이력서조차 내기 어렵다고 한다. 실제 중국 구직 플랫폼인 짜오핀닷컴에 따르면, 중국 기술직 노동자의 75%는 ‘30대 미만’으로 나타났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 스타트업은 ‘대학은 안 나와도 괜찮다. 하지만 30세를 넘겼다면 아예 지원하지 말라’는 채용 공고문을 올려놓기도 했다.

중국 IT 업계가 노골적으로 젊은 인력을 선호하는 풍토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흘러간 것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젊은 사람들이 더 똑똑하다(young people are just smarter)”며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싶다면 기술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만 고용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은 ‘틸 펠로십(Thiel Fellowship)’ 재단을 통해 ‘20 언더(under) 20’이라는 장학금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창의적이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20세 이하 청년 20명을 뽑아 2년간 10만달러의 창업 자금을 지원한다.

연령 차별은 전 세계 IT 업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특히 IT 관련 창업은 청년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벤저민 존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교수는 “청년들이 특히 기술 분야에서 (중년층에 비해) 더 나은 기업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며 “청년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현재의 패러다임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통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기업가들이 ‘디지털 네이티브(컴퓨터,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세대)’라는 점 역시 IT 업계가 이들을 선호하는 이유다. 젊은 기업가들은 어떻게 해야 기술을 통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젊은 기업가들은 미혼인 경우가 많아 책임져야 할 가족이나 주택담보대출이 없는 경우가 많다. 존스 교수는 “중년층 기업가들이 주어진 책임감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 젊은 기업가들은 매 시간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입해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 업계의 ‘젊음’ 선호는 틀렸다

252_50_1.gif

그러나 연구 결과, 젊은 기업가들을 선호하는 IT 업계의 판단은 잘못된 것으로 나타났다. 존스 교수는 미국 인구조사국의 재비어 미란다와 피에르 아주레이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 등과 함께 미국 인구 정보, 세금 신고 현황 등을 결합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최소 한 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한 270만 명의 회사 창립자 목록을 작성했다. 이들이 기업을 처음 시작할 당시의 평균나이는 41.9세였다.

그러나 이 270만 명의 회사 창립자들은 식당, 네일숍 등 소매업체를 운영하는 이들까지 모두 포함된 것이다. 이 때문에 연구진들은 기술 관련 업체만으로 범위를 제한하고, 그중에서도 상위 0.1%의 고속 성장을 이룬 스타트업만 또다시 골라냈다. 그 결과, 창업자들의 평균나이는 45.0세였다. 존스 교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창업자들의 나이가 훨씬 많아 굉장히 놀랐다”고 말했다.

252_50_2.gif

연구진은 40대 이상 중년 창업자가 성공적으로 ‘엑싯(exit·투자금 회수)’할 확률이 20대 창업자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했다. 다른 회사를 인수하거나, 기업공개(IPO)를 통해 상장된 업체를 살펴보니, 그 업체들의 창업자 평균나이는 46.7세였다. 연구진은 “회사를 창립한 사람들 중 성공할 확률을 계산해 연령대별 ‘타율 평균(batting average)’을 조사한 결과, 50대 창업자가 30대 창업자보다 상위 기업을 창립할 확률이 1.8배 높았다”며 “반면 20대 창업자들은 기업을 성공시킬 확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존스 교수는 나이를 기준으로 창업자들의 성공 가능성을 과대, 혹은 과소평가하는 것은 그들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고 경고했다. 그는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중년층 기업가에게 투자하는 것을 꺼린다면, 잠재적 성공 가능성이 있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고난을 겪게 될 것”이라며 “나아가 기업가 정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적절한 인력에게 자원을 배당하지 않게 함으로써 사회·경제적 번영을 이끌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252_50_3.jpg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젊은이들이 더 똑똑하다”고 주장한다. 사진 블룸버그


중년 기업가의 무기는 ‘경험과 나이’

그렇다면 40~50대 중년 기업가가 20대 기업가보다 성공 확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그들의 풍부한 ‘경험’이 성공의 밑거름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존스 교수는 “중년층 기업가들은 소비자 트렌드, 특히 젊은 세대의 습관에 대해 다소 둔감할 수 있지만, 그 이외의 사업 기회에 대해선 젊은 기업가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라며 “경험은 특정 시장과 특정 기술에 대한 상당한 통찰력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존스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창업하려고 하는 산업계에서 3년 이상 경험을 쌓은 이들은 창업 후 상위 0.1%에 올라설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인·구직 소셜미디어 링크드인(Linkedin)의 공동 설립자이자 회장인 리드 호프만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자신이 창업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가장 짧은 길이 취업이라고 봤다. 호프만은 애플 재직 당시 ‘이월드(eWorld)’라는 초기 형태의 소셜네트워크를 기획했고, 이후 후지쯔를 거쳐 30세 때 자신의 첫 스타트업인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소셜넷닷컴(SocialNet.com)’을 창업했다. 그가 링크드인을 창업한 것은 36세 때였다.

중년 기업가는 의사 소통 능력에서도 젊은 기업가를 앞지른다. IT 업계에서의 창업이라는 것은 단순히 뛰어난 기술만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외 다양한 사업 분야를 아우르고 수많은 파트너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커리어 컨설팅 회사인 키스톤 어소시에이츠의 제인 맷슨 수석부사장은 “많은 회사들은 기술 인력이 비기술 사업부와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며 “기업들은 의사 소통, 프레젠테이션 기술, 문제 해결, 간단한 대인 관계와 글 쓰기 기술이 가져다 주는 가치를 보다 무겁게 여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년층 기업가의 나이 자체도 IT 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65세 이상 베이비붐 세대의 67%는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42%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 시대에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IT 업계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IT 업계의 연령 차별 현상 때문에 중년층 이상의 니즈에 맞춘 기술이 제대로 출시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조지아공대 지원기술 및 환경접근센터의 트레이시 미츠너 선임연구원은 “나이 든 어른들은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과 젊은 사람들만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미국 인구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접근할 수 있는 제품을 설계해야 하는데, 지금의 제품은 (밀레니얼 세대가 설계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 인구의 세대 변화 전문 컨설턴트인 사라 깁슨 역시 “세대별 선호도를 기반으로 고객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가정하고 설계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며 “세대별로 사용하는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을 사용하는 습관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52_50_4.jpg
국내 IT 업계가 모여 있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디지털밸리의 출근길. 사진 조선일보 DB


사내 기업가제 적극 활용해야

존스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래 종사한 분야에서 창업할 경우 성공 확률이 더 높고, 40대 이상부터 창업 기회도 훨씬 많아진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소셜미디어 관리 서비스인 훗스위트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라이언 홈스는 “나이 많은 혁신가들의 재능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며 “청년 중심의 기술 업계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사내 기업가제(interapreneurship)’라는 답을 찾았다”고 말했다.

사내 기업가제란 사원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기 위한 제도로, 사원의 아이디어를 활용해 기업 전체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다. 사내 기업가로 선정된 직원은 기존 급여뿐만 아니라 사내 벤처 비즈니스의 팀장이 돼 사업 조직을 구성하고 필요한 자금과 인력을 지원받는다. 기업은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 지원하며, 이익이 발생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실패한다 해도 불이익을 주지는 않는다.

홈스에 따르면 구글은 ‘20%의 시간’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엔지니어들에게 일주일에 하루씩 ‘열정 프로젝트(passion project)’를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인텔은 1998년부터 ‘뉴 비즈니스 이니셔티브’를 사내에 설립해 직원들의 창업 아이디어에 투자하고 있다. 훗스위트는 부서들이 수주에 걸쳐 파트너십을 맺도록 장려한다. 이를 통해 일 년에 한 번씩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다. 홈스는 “이 같은 제도를 통해 시장의 판도를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제품 또는 서비스가 출시되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 내부 분위기도 굉장한 활기를 띤다”고 말했다.

IT 업계의 변화는 시시각각 일어나는 만큼, 중년의 기술자 또는 기업가도 젊은이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미국 IT 전문매체 와이어드는 ‘기술 세계에서 늙은이가 살아남는 법’이라는 기사를 통해 △주변 직원들과 꾸준히 소통해 그들의 연령, 문화, 성별 등에 따른 차이를 이해하고 △근무하는 동안 전문성 개발을 멈추지 않아야 하며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젊은 직원들과 나눠야 한다고 조언했다.


plus point

직장 다니다 그만두고 창업 성공한 한국 기업인들

252_50_5.jpg
39세에 창업해 샐러리맨 신화를 일군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한국에서도 중년에 기업을 설립해 그 분야의 최고로 우뚝 선 성공 사례가 많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맨손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로 꼽힌다.

1958년생인 박 회장은 대학 졸업 직후 동양증권에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해 1988년 한신증권으로 이직, 1991년 33세의 나이에 동원증권의 국내 증권 업계 최연소 지점장이 됐다. 그는 당시 주식 약정 규모만 1000억원을 넘어서는 등, 전국 1위에 오르는 실적으로 승승장구하며 미래를 보장받았지만 1997년 과감히 뛰쳐나와 창업을 택했다. 미래에셋캐피탈을 창업할 당시 그의 나이는 불혹을 앞둔 39세였다. 지난해 기준 미래에셋금융그룹은 자기자본 14조원, 임직원 1만4200명, 15개국 40개 법인을 거느린 국내 최대 금융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바이오제약 산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성공한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 역시 비슷한 사례다. 서 회장은 대학 졸업 후 삼성전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생산성본부로 자리를 옮겨 대우그룹 컨설팅을 하다 김우중 회장의 눈에 들어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고문으로 일했다. 그러다 IMF 때 직장을 잃었고, 바이오제약 산업이 유망하다는 판단하에 대우자동차 출신 동료 10여 명과 셀트리온의 전신 ‘넥솔’을 창업했다. 지난해 서 회장은 4조4441억원 규모의 셀트리온 헬스케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국내 6위 주식 부자에 올랐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창업하려는 분야에 오래 종사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다. 그는 10세 때 외할머니로부터 얻은 병아리 10마리를 닭으로 키워 판 돈으로 병아리 100마리를 다시 샀다고 한다. 그 병아리를 또 키워 파는 방식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돼지 18마리를 사들였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고교 시절 닭 1000마리, 돼지 30마리를 가진 고교생 사업가로 성장했다. 이후 20대에는 식품 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30세에 하림식품을 설립했다. 사육·사료·가공·유통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현재 하림그룹은 연매출 4조원이 넘는 국내 최대 축산 업체로 성장했다.

이윤정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