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태닉’은 여객선이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징발당해 영국의 병원선으로 임무를 수행하던 중 격침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브리태닉’은 여객선이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징발당해 영국의 병원선으로 임무를 수행하던 중 격침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지금은 대양을 건너는 먼 바닷길을 화물선의 수송로 정도로 사용하지만, 항공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20세기 중반까지 여객선도 이 길을 통해 대륙을 오고 갔다. 특히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북대서양 항로는 최고의 황금 노선이어서 많은 선사(船社)가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다. 그런 와중에 거대한 초호화 여객선이 속속 등장했다.

지금도 세계적 크루즈 선사인 큐나드 라인(Cunard Line)이 1907년에 루시타니아호와 모리타니아호를 연이어 취역하면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에 위기를 느낀 화이트 스타 라인(White Star Line)은 이를 능가하는 당대 최대 규모의 여객선을 만들어 대항하기로 하고 1908년부터 여객선 건조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1911년부터 순차적으로 운항에 들어간 세 척의 여객선이 올림픽급(Olympic Class)이었다.

같은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배들을 처음 건조된 선박의 이름을 따서 ‘OO급’이라고 부른다. 군함도 그러한데, 예를 들어 한국 해군이 보유한 최강 전력인 세 척의 이지스 구축함을 1번 함인 ‘DDG-991 세종대왕함’의 이름을 따서 ‘세종대왕급’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올림픽급은 자매 여객선 중에서 가장 먼저 취역한 올림픽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브리태닉(Britannic)은 올림픽급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건조된 막내 여객선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15년 취역과 동시에 징발돼 병원선으로 개조된 후 갈리폴리 전투에서 발생한 사상자들을 본국인 영국으로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렇게 영국과 터키를 오가는 여섯 번째 항해에 투입되었을 때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1916년 11월 21일 오전 8시 12분 에게해의 키오스섬 인근을 지나던 브리태닉의 선수 우현 아래에서 섬광과 더불어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배수량 4만8158t의 거대한 선박이 엄청나게 요동쳤고 이 충격으로 많은 탑승자가 쓰러졌다. 암초나 다른 선박과의 충돌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 적국인 독일의 고의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후 영국은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병원선을 공격했다는 오명을 쓰게 된 독일은 기뢰와 충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아직 사고 원인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불의의 폭발로 인해 선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브리태닉은 급속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선장 찰스 바틀릿은 즉각 퇴선 명령을 내렸다. 승객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었지만 승무원의 일사불란한 지휘를 받아 탈출에 나섰다. 브리태닉은 사고 후 불과 55분 만에 물속으로 사라졌다. 이 와중에 30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나 무려 1066명의 나머지 탑승자들은 안전하게 구조됐다. 사고 내용을 고려하면 기적적인 결과였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도 대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사건으로부터 불과 4년 전인 1912년에 있었던 비극적 사건의 교훈 때문이었다. 브리태닉보다 먼저 건조됐던 올림픽급 두 번째 여객선이 해난 사고로 침몰하면서 많은 인명 피해가 났던 적이 있었다. 그 여객선은 바로 평시에 벌어진 해난 사고로 역사상 최악의 참사를 불러왔던 타이태닉(Titanic)이었다.


100년 전 스페인독감 창궐 당시 미국 워싱턴 D.C.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차 탑승을 거부하는 승무원. 이런 역사가 있었지만, 미국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통령부터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엉뚱한 대응을 했고 결국 최대 피해국이 됐다. 사진 마이헤리티지
100년 전 스페인독감 창궐 당시 미국 워싱턴 D.C.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차 탑승을 거부하는 승무원. 이런 역사가 있었지만, 미국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통령부터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엉뚱한 대응을 했고 결국 최대 피해국이 됐다. 사진 마이헤리티지
‘타이태닉’의 최후를 묘사한 잡지 삽화. 배의 침몰보다 더 큰 문제는 구명정이 부족해서 참사를 피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타이태닉’의 최후를 묘사한 잡지 삽화. 배의 침몰보다 더 큰 문제는 구명정이 부족해서 참사를 피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교훈을 새기거나 무시하거나

올림픽급은 선체 하부에 열여섯 개로 나뉜 방수 구역 중 네 개 구역이 연이어 침수돼도 바다에 떠 있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최초 항해에 나선 타이태닉은 빙산과 부딪히면서 공교롭게도 네 개 구역을 넘는 다섯 개 구역의 측면이 갈라졌다. 결국 이 한 개의 차이로 타이태닉은 침몰했고 승선 인원 중 70%에 가까운 1514명이 사망했다.

타이태닉은 사고 발생 2시간 후에 침몰했다. 이는 대다수가 충분히 살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구명정이 너무 부족했다. 원래 탑재할 예정이었던 서른여섯 개도 모든 승무원과 승객들을 태울 수 없는 수준이었으나, 이마저도 미관에 방해된다며 겨우 스무 개만 마지못해 비치했다. 이 때문에 침몰 속도와 상관없이 엄청난 인명 피해가 필연적이었다.

이는 당시 한창 건조 중이던 브리태닉에 영향을 줬다. 측면이 이중으로 보강됐고 한 구역이 침수되더라도 다음 구역으로 물이 넘지 않게 개량했다. 더불어 모두가 탑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구명정을 구비하고 피난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덕분에 브리태닉은 파손 부위가 더욱 크고 침몰 속도도 빨랐지만, 대다수를 살릴 수 있었다.

타이태닉과 브리태닉의 상반된 사례처럼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경험한 한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방역 모범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과거 사례를 무시하고 대비하지 않던 국가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빴던 기억을 되새겨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같은 낭패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몰라서 당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인재(人災)이기 때문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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