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기업 레드햇을 34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한 지니 로메티 IBM 회장. 사진 블룸버그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기업 레드햇을 34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한 지니 로메티 IBM 회장. 사진 블룸버그

‘빅 블루(IBM의 애칭)의 사상 최대 베팅이 성공할까?’

IBM이 오픈소스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기업 레드햇(Red Hat)을 340억달러에 인수키로 했다고 10월 28일(현지시각) 전격 발표했다.

델과 EMC(670억달러·2016년), JDS유니페이스와 SDL(410억달러·2000년)에 이어 미국 정보통신(IT) 기업 인수·합병(M&A) 사상 세 번째로 큰 규모이자 소프트웨어 분야 사상 최대 M&A다. 버지니아 마리 ‘지니’ 로메티(Ginni Rometty·61) IBM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레드햇 인수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며 “클라우드 시장의 모든 것을 바꾸고 새 시대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딜은 위기의 IBM과 로메티 CEO가 던진 회심의 승부수다.

1911년 설립된 IBM은 20세기 미국의 혁신과 압도적인 경쟁력을 상징하는 기업이었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퍼스널컴퓨터(PC), 플로피 디스크, 하드 디스크(HDD) 등 셀 수 없이 많은 기술을 ‘발명’하며 인류를 신세계로 이끌었다.

42년간(1914~56년) IBM을 이끈 토머스 왓슨(1874~1956)이 제시한 ‘생각하라(THINK)’는 모토는 ‘혁신 머신’ IBM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노벨상 수상자도 5명이나 배출했다.

1960~70년대 ‘IBM 메인 프레임’은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핵심 자산이었다. 팀 쿡 애플 CEO, 존 톰슨 마이크로소프트(MS) 전 회장, 패트리샤 로버트 해리스 전 국토부 장관, 대통령 후보 로스 페로 등 쟁쟁한 인재의 산실이기도 했다.

푸른색의 커다란 기업 로고, 컴퓨터와 복장에서 유난히 푸른색을 선호하는 기업 문화 때문에 얻은 ‘빅 블루’란 애칭에는 ‘블루칩 중의 블루칩’이란 자부심과 경외감이 녹아 있다.


“클라우드 사업으로 승부”

IBM은 ‘성공의 역설’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기업이다. IBM은 1974년 말 최초의 개인 컴퓨터 ‘알테어 8800’을 출시, PC 시대를 연 기업이다. 하지만 PC는 역설적으로 IBM 추락의 원인이 됐다.

PC의 폭발력을 간과한 IBM이 자사 PC 플랫폼을 무료 개방했는데, 마이크로소프트(MS)가 IBM PC 운영체제(DOS·윈도)로 떼돈을 벌면서 ‘재주’는 IBM이 넘고 돈은 MS가 쓸어 담았다. IBM은 뒤늦게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폐쇄형 PC 플랫폼을 출시했지만 시장은 외면했고 결국 PC 생산 부문을 중국 기업 레노버에 헐값에 매각(2004·2015년), 스스로 만든 산업에서 철수했다.

IBM 몰락의 징후는 21세기 들어 더욱 뚜렷해졌다. MS·애플·구글·아마존(MAGA)에 밀리면서 2011년 1069억달러(약 122조원)였던 매출은 2017년 790억달러(약 90조원)로 쪼그라들었다. ‘모바일 집중’을 선언했지만 정작 애플·구글·삼성이 주도한 모바일 혁명에는 명함도 못 내밀었고 클라우드 사업에는 2013년 ‘소프트레이어’ 인수를 통해 후발 주자로 뛰어들었다.

이번 레드햇 인수는 ‘구원 투수’로 등장한 로메티 CEO에게 벼랑 끝 승부수다. 그는 2012년 IBM 100년 역사상 9번째이자 최초의 여성 CEO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CEO·사장·회장을 겸임하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았고, 사양 산업을 정리하고 인공지능·빅데이터·모바일·소셜비즈니스·인지과학 등 차세대 사업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2012~2015년 30여 개 기업을 인수하면서 85억달러(약 10조원)를 쏟아부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대대적인 아웃소싱과 해고로 43만 명(2013년)이던 직원은 36만 명(2017년)으로 줄었고 매출은 2012~2017년 22분기 연속 감소했다.

유리 천장을 깬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경영인 1위(2012~2014년·‘포천’)’에 선정되며 찬사와 존경을 받았지만 헛돈 쓰고 직원 자른 것 말고 한 것이 없다는 비판을 받으며 ‘최악의 경영자(월스트리트저널·포천)’란 오명도 썼다.


지니 로메티 회장은 그동안 실적 부진으로 퇴진 압박을 받았다. 후임으로 거론된 마크 베니오프(오른쪽) 세일즈포스닷컴 창업자 겸 CEO와 로메티 회장.
지니 로메티 회장은 그동안 실적 부진으로 퇴진 압박을 받았다. 후임으로 거론된 마크 베니오프(오른쪽) 세일즈포스닷컴 창업자 겸 CEO와 로메티 회장.

아마존, MS와 힘겨운 승부 전망

최근 5년간 S&P 평균 주가가 60% 상승하고 아마존(400%), MS(210%) 주가가 고공 행진하는 동안 IBM 주가는 연중 최저치를 맴돌았다. 내리막길을 걷기만 하던 연간 매출을 올해 간신히 증가세로 되돌렸으나 상승 폭은 1%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레드햇 인수 직전까지 “로메티는 비전, 전략, 실행력 없는 반복된 실패자”라며 “그의 경질만이 IBM 부활의 해법”이라며 비난받았다. 세일즈포스닷컴의 마크 베니오프 창업자 겸 CEO 등 구체적인 후임 인사가 거론될 정도였다.

값비싼 ‘빨간 모자(레드햇)’를 쓴 ‘빅 블루(IBM)’의 수장, 로메티 회장의 승부수가 성공할까?

환경은 녹록지 않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클라우드 시장에선 아마존(아마존 웹 서비스·AWS)이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고 MS(애저), 구글(구글 클라우드)이 힘겨운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올해 들어 매분기 50% 가까이 성장하고 있는 아마존 웹 서비스의 2020년 예상 매출은 440억달러(약 50조원), 100%씩 성장 중인 MS와 구글의 매출은 2020년 각각 190억달러(약 22조원), 170억달러(약 19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올해 1분기 전년 대비 49% 성장한 아마존 매출 증가 규모는 같은 기간 MS(19억달러), 구글이 올린 매출(17억달러)보다 많다. 알리바바 등 중국 클라우드 기업의 성장세도 무섭다.

로메티 회장은 “클라우드를 채택한 기업은 아직 20%에 불과하다. 나머지 80%가 진정한 성장 동력”이라며 “이번 인수를 통해 IBM은 세계 최대의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기업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강력한 기업 서비스(IBM)와 오픈소스 시대 대표 기업(레드햇)의 합병으로 ‘개방형 기업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분야에서 상당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두각을 나타내다 ‘관료주의의 덫’에 걸린 공룡 IBM에 인수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러 기업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최근 기술주 거품론이 나오는 가운데 막대한 레드햇 인수 자금 때문에 향후 2년간 자사주 매입을 중단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IBM 주가는 4.13% 떨어졌다.


plus point

자수성가한 ‘정통 IBM 우먼’

로메티 회장은 1957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변두리에서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정에서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15세 때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어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어린 동생을 돌보며 성장했다.

1975년 노스웨스턴대에 입학, 컴퓨터와 전기공학을 전공하며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여름방학에 인턴 생활을 하고, GM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다.

1979년 GM에 입사한 뒤 1981년 IBM으로 옮겨 시스템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1990년대 은행, 통신, 보험사 등의 고객 관리와 세일즈 업무를 맡았고 2002년 글로벌 서비스 분야 디렉터로 IBM이 35억달러에 인수한 프라이스워터스쿠퍼스 합병 실무를 맡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9년 영업, 마케팅, 전략 담당 수석 부사장에 올랐고 2011년 10월 새뮤얼 팔미사노 후임으로 IBM 9대 회장 겸 CEO에 지명됐다.

1979년 마크 앤서니 로메티(GM 석유 투자자)와 결혼했다. 자녀는 없다. ‘지니’는 애칭이며 결혼 전 이름은 버지니아 마리 니코시아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관람, 스쿠버 다이빙, 골프가 취미다. 2014년 ‘금녀의 벽’을 깨고 마스터스 골프대회 개최 코스인 어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의 세 번째 여성 회원이 됐다. 연봉은 3270만달러(2016년)다.

방성수 조선비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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