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도 경칩을 지나 춘분(20일)을 바라보니 남도의 양지에는 봄꽃이 다퉈 피어오른다. 부드러운 훈풍이 스치고 지나간 잿빛 대지에는 예외 없이 생명의 기운이 꿈틀댄다. 파릇한 새순과 화사한 봄꽃이 만발하는 대자연을 찾아 떠나는 봄나들이에서는 온 몸에 자연의 생기를 얻을 수 있어 더 흡족하다.

남녘의 지리산 자락에도, 섬진강변에도 새봄이 성큼 다가왔다. 전북 진안 데미샘에서 출발한 섬진강 550리 물길은 정읍, 순창, 남원, 곡성 등 지류의 봄기운을 가득 싣고 마침내 전남 광양에 이르러 봄 바다와 만난다. 그 유려한 물줄기 속에는 상큼한 산골의 기운이 가득 녹아 있다. 일조량이 전국 으뜸이라는 ‘햇빛고을’ 전남 광양(光陽) 일원에는 이즈음 대자연의 봄 잔치가 한창이다. 양지녘 매화나무마다 봄기운 가득 담은 꽃봉오리가 그윽한 향기를 발산하며 망울을 터뜨려댄다.



청매실농원의 장독대

섬진강에 녹아내린 마법의 봄기운

거문도, 거제도, 오동도 등 남녘의 주요 섬을 선홍빛 동백꽃으로 물들인 봄의 화신은 3월에 접어들며 지리산자락 섬진강변으로 북상한다. 첫 작품은 매화(梅花)다. 앙증맞은 꽃잎과 꽃술에 고혹한 향훈이 압권인 매화는 다른 꽃들이 겨울잠에서 미처 깨어나기 전 부지런히 피어나 그 청초한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이즈음 섬진강과 나란히 달리는 861번 지방도, 전남 구례에서 광양으로 향하는 길 양쪽은 마치 하얀 눈꽃이 매달리기라도 한 듯 탐스러운 매화가 망울을 터뜨리며 상춘객을 유혹한다. 강줄기 따라 이어진 초록대밭에서는 섬진강 봄바람에 댓잎소리가 사각거리고, 청명한 하늘빛 담은 푸른 물줄기 주변에는 하얀 모래톱이 지친 물길을 맞는다. 그야말로 여유로운 한 폭의 강변 수채화가 펼쳐진다.



청매실농원의 전통식품 명인 홍쌍리 여사

매향(梅香) 가득한 매화마을의 봄 정취

차창 속으로 파고드는 상큼한 강바람에 취해 광양 쪽으로 내닫다보면 매화나무 천지인 작고 아담한 시골 동네가 나타난다.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섬진마을, 이른바 ‘매화마을’이다. 섬진강 550리 물길 중 가장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는 섬진마을에는 3월 초부터 양지녘을 중심으로 매화가 간간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10일을 넘어서며 강변과 산 아래쪽에 제법 하얀 군락을 이루기 시작한 매화는 14~20일이면 산 중턱에서도 꽃 잔치를 벌이며 절정을 맞는다. 그 기운은 3월 하순, 다압면을 넘어 인근 진상면과 진월면, 옥곡면까지 이르며 4월 초까지 그 자태를 뽐낸다.

매화는 새로운 시작을 꾀하는 초봄에 곧잘 어울리는 볼거리다. 특히 시각, 후각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그 향기를 귀로도 듣는다는 격조 높은 꽃으로, 고혹한 향훈이 압권이다. 때문에 한 떨기 꽃송이만으로도 오감이 흡족한 봄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청매실농원은 사계절 풍치가 빼어나 ‘다모’, ‘서편제’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활용됐다.

국내 매화 감상지의 대명사격인 광양 매화마을의 내력은 1920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무렵 마을에 한 선각자가 있어 주변에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이제는 전국 제일의 매화꽃 명소가 됐다. 도사리에서도 가장 유명한 매화 밭은 12만평 규모의 청매실농원이다. 청매실농원은 매화나무, 대숲, 장독대, 흙 길 등 어느 것 하나 튀는 법 없이 자연스럽다. 워낙 사계절 풍치가 빼어나다 보니 ‘다모’, ‘서편제’, ‘천년학’, ‘취화선’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촬영배경이 됐다.

3월 중순 청매실농원은 이정표가 있는 입구에서부터 청매화, 백매화, 홍매화가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앞 다퉈 꽃망울을 터뜨린다. 비탈진 언덕을 따라 5분쯤 오르면 2000여개의 큰 독이 늘어선 장독대가 위압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따스한 봄 햇살을 가득 받은 장독에는 매실된장, 매실고추장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벚굴 채취선의 모습

장독대를 지나 맨 먼저 꽃을 피운 청매화 군락을 지나자면 온몸을 감싸는 매화향기에 ‘이게 봄인가’ 싶은 아찔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매화나무 밑에 심어둔 청보리와 매화의 색상대비도 상큼하다. 오솔길에 접어들면 매화꽃 속에 파묻힌 운치 있는 원두막이 나온다. 개화 절정기, 마치 함박눈이 내려앉은 듯한 청매실 농원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조망 포인트다.

농원은 평생 매화를 친자식처럼 돌보며 살아온 정부 지정 전통식품 명인 홍쌍리 여사의 체취가 물씬 느껴지는 공간이다. 매화를 ‘내 딸’이라고 부르는 홍 여사의 매화사랑은 꽃보다 더 아름다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홍 명인은 “매화농장을 가꾸느라 허리가 굽고 손마디가 다 휘었지만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화사한 봄소식과 함께 마음의 쉼터를 제공할 수 있어 더 없이 행복하다”며 “힘겨운 일상을 꾸려 가는 사람들이 찾아와 마음의 찌꺼기를 다 버리고 갈 수 있는 ‘평화로운 공간’, ‘소박한 천국’을 만드는 게 일생의 과제이자 바람”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섬진강에서 잡아 올린 재첩

한편 백운산 중턱에 마련된 전망대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서는 청매실농원은 물론 매화마을과 섬진강, 그리고 지리산 자락에 둥지를 튼 하동 땅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강 건너 북쪽 화개장터와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도 지척으로 다가온다. 고운 백사장을 따라 굽이치는 섬진강 푸른 물줄기는 한 폭의 그림에 다름없다.


▒ 김형우
성균관대 철학과, 관광경영학 박사, 스포츠조선 여행전문기자, 한국관광기자협회장, 청와대관광정책자문위원,서울시관광진흥자문위원 역임.


입맛 돋우는 섬진강의 봄 미식거리
재첩회 봄볕이 따사로운 섬진강 광양 유역은 봄철 미식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그 중 대표 별미가 재첩이다. 재첩은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 등 섬진강 하구의 것을 제일로 여긴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으로 모래가 많은데다 조수 간만의 차가 커서 질 좋은 재첩이 많이 난다. 재첩은 보통 국으로 먹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섬진강의 봄맛을 제대로 보려거든 재첩회가 더 낫다. 재첩회는 재첩을 삶아 골라낸 속살을 배, 호박, 당근, 오이, 피망 등 아삭한 야채와 초장을 넣고 버무려 먹는데, 야채와 상큼한 초고추장 그리고 쫄깃한 듯 부드러운 재첩살이 어우러져 겨우내 껄끄러워진 입맛을 돋운다. 재첩회에 갓 지은 흰쌀밥과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비벼 먹는 비빔밥도 맛있다. 진월면 등 광양 섬진강 주변에 재첩회 집이 여럿 있다. 재첩회 2만5000~3만5000원(3~4인).
벚굴(강굴) 광양의 또 다른 명물은 ‘벚굴(강굴)’이다. 벚굴은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자라는 초대형 굴이다. 그 크기가 20~30㎝ 고무신만하다. 알맹이도 거의 어른 손바닥만하다. 간간한 듯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게, 그 맛이 일품이다. 섬진강 하구에서도 강굴이 나는 곳은 한정돼 있다. 망덕포구 일원이 집산지로 인근 강변에서는 이른 봄 강굴 채취가 한창이다. 강굴은 수질이 깨끗한 곳에서 서식하는데, 입춘부터 벚꽃이 만개할 즈음까지가 그 맛이 최고라 해서 ‘벚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망덕포구의 횟집에서 봄철 강굴 맛을 볼 수 있다. 구이나 죽, 튀김, 전, 찜 등으로 먹는데 조업량에 따라 가격이 변한다.

참고사항
가는 길 매화마을: 대전~통영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옥곡 IC/ 하동 IC~광양 다압면∼매화마을(섬진마을)/ 완주순천(전주광양)고속도로~동순천 IC~광양시~망덕포구/ 매화마을
묵을 곳 구례 화엄사 인근 솔숲에 자리한 지리산 한화리조트는 지리산-섬진강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삼을 만하다. 이밖에도 섬진강 주변에 펜션과 모텔 등이 많다.
축제 매화축제: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시기를 즈음해 광양시에서는 해마다 축제를 펼친다. ‘2016 광양매화축제’는 3월 18~27일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과 시 전역에서 펼쳐진다.
주변 볼거리 구례 화엄사가 가깝다. 봄기운이 내려앉기 시작한 대찰 화엄사를 찾아 고즈넉한 가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 최참판댁 일원은 보리가 푸르게 자라고 배꽃이 필 무렵 아름답다.

김형우 스포츠조선 여행전문기자 / 사진 : 김형우 스포츠조선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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