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총학생회 주최로 열린 ‘제2차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에서 대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8월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총학생회 주최로 열린 ‘제2차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에서 대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UN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2019년 발표한 국가행복지수를 보면 한국은 54위다. 점수로 환산하면 한국은 최고로 행복한 수준인 10점 만점에 5.8점 정도다. 한국의 순위는 2015년 47위, 2016년 58위, 2017년 56위, 2018년 57위로 지난 몇 년간 50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7.769점을 획득한 핀란드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선정됐다. 핀란드에 이어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뉴질랜드, 캐나다, 오스트리아 등이 10위권에 올랐다. 대부분이 북유럽 국가다. 일본은 58위로 한국과 비슷하다.

행복지수를 경제적 풍요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자. 한국은 경제 규모로는 세계 10위권이지만 행복지수는 54위다. 그렇다면 국민 대다수가 경제적 풍요는 누리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라다. 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들은 대부분 행복하지도 풍요롭지도 않다. 풍요롭지 못하지만 국민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소소한 행복 국가도 있다. 대표적으로 네팔이 거론된다.


한국, 잘사는데 왜 불행할까

한국의 문제는 경제적 풍요와 실제 국민이 느끼는 행복 간에는 큰 격차가 있다는 점이다. 이 격차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 이 격차가 클수록 국민은 삶에 불만을 느낀다. 반대로 네팔처럼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은데 국민은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 행복감은 더 극단적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네팔 국민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행복하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도 못한 남미 국가들의 경우는 국민 대부분이 불안, 우울 증세를 느껴 사회 질서가 불안전하다. 핀란드나 북유럽 국가처럼 경제도 풍요롭고 행복지수도 높은 경우가 모든 국가가 이상으로 꿈꾸는 나라다.

경제적 풍요와 행복 간의 큰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 국민 개개인이 만들어낸 생존방식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이다. 한국 사람에게 소확행은 축적되는 불만을 주기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일 뿐이다. 소확행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한국은 우울증과 자살률이 높은 국가다. 세계 각국 길거리 사람들의 표정을 비교해보면 한국만큼 사람들이 화난 표정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공정하게, ‘목표’ 말고 ‘목적’ 추구

대한민국 집권 세력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 중 하나가 경제적 풍요와 행복감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온 국민이 화가 나 있고 불만이 가득 차 있는 현 상태를 해소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우선 조국 교수를 둘러싼 논란과 같은, ‘공정성 시비’에 대한 논란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조 교수는 딸의 입시와 가족 사모펀드 관련 논란이 불거져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정의를 부르짖던 대표적인 지식인의 가족이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분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상대적 박탈감에 불을 붙였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고, 노력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평가되고, 그 결과가 정의롭게 발표된다면 행복지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연구가 공정성은 행복 증진의 요인이며, 상대적 박탈감은 불행의 요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편법을 써서라도 남들보다 많이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얼마나 실효성 있게 달성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공정성은 현 정권의 국정 철학이기도 하다.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국가 시스템은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운다. 결국 아무리 경제가 성장해도 밑이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낳는다.

또한 단기적인 지표에 집중하는 ‘목표 지향적’ 문화보다는 삶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의미하는 ‘목적 지향적’ 문화를 만들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모든 개인의 삶, 기업 경영, 국가 전략적 지향점은 목표에 집중해왔다. 반면,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은 오래전부터 정책 지향점이 특정 가치를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지향적’ 성향을 띤다. 국가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개인도 삶의 ‘목적’보다는 ‘목표’를 생각하는 시각으로 자신의 앞날을 고민한다.

삶의 의미의 원천인 목적이 거세된 상태에서는 행복하기 어렵다. 아무리 목표를 잘 달성해 많은 부와 권력과 명성을 쌓아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쉽게 무너질 모래성을 쌓은 것에 불과하다. 목표를 달성하면, 그다음 목표를 세우고 또다시 이를 달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달리는 식이다. 목표 중독에 이르는 것이다.

이와 함께 언제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혁신에 도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 속에서는 많은 국민이 성장과 성숙을 경험하고, 행복감을 느끼며 미래에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할지 고민하며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경제 성장은 덤이다. 혁신을 위해 도전하다 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국가가 마련하고, 생존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등 복지를 제공한다. 국민이 소확행에서 머무르는 데 끝나지 않도록,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경험하고 있는 우울증과 화병은 도저히 낫지 않을 것 같은 만성 질환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치료할 방안은 국가 리더들이 공정성에 대해 고민하고, 목표보다는 목적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혁신에 도전하는 사람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조성해야 한다. 국가 리더들이 제대로 해야 국민이 행복하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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