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시어스 자동차 정비소. 사진 블룸버그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시어스 자동차 정비소. 사진 블룸버그

미국 유통 업계에서 혁신의 대명사로 꼽히던 백화점 ‘시어스’가 지난해 10월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설립한 지 125년이 된 기업이고, 50여 년간 유통 업계의 정상을 지킨 회사다. 그래서 시어스의 파산이 주는 충격은 만만치 않다.

시어스의 파산은 찰스 다윈이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리가 진리임을 다시 한번 부각시킨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이 다윈의 적자생존을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원리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적자생존의 참뜻은 ‘환경에 맞춰 진화하고 변화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이다. 공룡은 지구 역사상 가장 강한 동물이었지만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소멸했다. 공룡처럼 강하고 큰 유통 기업이자 50여 년간 혁신의 상징과 같았던 백년기업 시어스도 마찬가지였다. 유통 환경과 소비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시어스는 그 사실을 잊은 순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시어스는 역사 속에서 자유자재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면서 생존했다. 우선 인류 최초로 카탈로그를 통한 통신판매를 1890년대에 시도했다. 농부들에게 시어스 카탈로그를 보내주고 전화로 물품을 주문하면, 이를 우편으로 배송하는 방식이었다. 농부들은 동네 상점보다 물건을 훨씬 싸게 파는 시어스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1920년대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하자 통신판매 수요가 줄어들었다. 시어스는 이 같은 변화를 읽고 비즈니스 모델을 매장에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다른 유통 업체보다 더 많은 매장을 내서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올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걸었고, 효과를 봤다. 시어스는 제2차 세계대전(1939~45년) 이후엔 가전제품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을 포착했다. 앞서 자동차 보급 이후 폭발적으로 늘렸던 매장을 활용하자는 전략을 세웠다. 3500개에 달하는 매장에서 시어스는 가전제품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워 판매했다. 그 결과 시어스는 50년 가까이 미국에서 유통 업체 1위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시어스는 1990년대 들어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던 과거와 달리 변화의 흐름을 놓쳐버렸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 유통 업계의 고객 취향과 요구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지각변동을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화점 매장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판매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고객의 새로운 욕구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시어스가 고객과 멀어지는 사이 미국의 대형마트 ‘타깃’은 디자인을 내세워 도시 청년층 시장을 잠식했다. 전자제품 판매점 ‘베스트 바이’는 체험관처럼 매장을 꾸며 가전제품 판매 시장을 차지했다. 대형 할인마트 ‘월마트’는 저렴한 가격을 내세웠고, 건축자재, 인테리어 디자인 도구 판매 업체인 ‘홈 디포’는 일반인이 자신의 집을 직접 꾸미고 수리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렇게 부문별로 서서히 고객을 빼앗겼던 시어스에 몰락의 결정타를 날린 것은 온라인 전자상거래 회사들이다. ‘아마존’ ‘이베이’ 등의 온라인 판매 모델이 미국 소비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면서 시어스가 설 자리를 앗아갔다.


미국 댈라웨어주에 위치한 시어스 도버 몰이 폐점 전 세일을 하고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댈라웨어주에 위치한 시어스 도버 몰이 폐점 전 세일을 하고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위기 처하자 성과로 직원 압박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처하자 시어스의 에드워드 브래넌 회장은 조직의 미진한 성과를 장려하기 위해서 매출에 따른 보상 구조를 만들어 직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가령 시어스 타이어앤드오토센터(Sears Tire & Auto Center)는 고객이 맡긴 자동차의 수리 대수와 이를 통한 매출액을 기반으로 조직 구성원의 성과를 측정하고, 이에 따라 보상하겠다는 식이었다. 기본급을 없애는 대신 매출 수수료 등에 따른 평가 시스템을 구축했다. 평가에 따라 개인별로 차별적인 보상 시스템을 둬서, 매출을 증진하는 데 이용했다. 또 구성원들의 위기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충분한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 해고하겠다”고 위협했다.

종업원들이 이런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매출을 늘리는 것이었다. 벼랑으로 내몰린 종업원들은 고객에게 높은 수준의 수리 품질을 제공하는 것은 뒷전으로 여기게 됐다. 서비스를 유지하는 것보다 매출을 늘리는 것에 생존과 연봉이 달렸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시어스의 보상 시스템은 많은 잡음을 낳았다. 특히 시어스의 고객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고객은 타이어를 점검받으러 갔는데 자동차 수리공이 차의 지지대도 교체해야 한다고 경고하며 추가로 419달러(약 46만원)를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터무니없는 수리 가격에 의심이 가서 다른 수리점에서 수리 가격을 다시 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수리공으로부터 차의 지지대는 아직 멀쩡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가 화가 나서 시어스에 가서 항의했는데 시어스의 수리공은 자신이 실수로 가격을 잘못 산정한 것 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문제를 무마하려 했다. 이와 유사한 고객의 불만과 항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불필요한 자동차 수리비 부과에 대한 캘리포니아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됐다.

다른 주에서도 시어스 자동차 수리센터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조사 결과 유사한 사례가 뉴저지·플로리다·앨라배마 지점에서도 발견됐다. 고객이 소송에 나서면서 시어스는 100여 건이 넘는 송사의 당사자가 됐다. 대부분의 직원이 자동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여성 고객을 대상으로 수리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성과를 달성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시어스는 이 소송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시어스는 이후 이전의 생기를 되찾을 수 없는 회사로 전락했다.

모든 시어스 자동차 수리점 입구에는 ‘고객에 대한 최고의 서비스를 지향한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고객에 대한 최고의 서비스는 이들의 일탈 행위를 감추기 위한 진정성 없는 연기였던 셈이다. 위기 상황에서 변화에 대한 본질적인 대응이 아닌 당장 눈앞의 매출에 몰입하다 보면 풍선 효과가 생긴다. 풍선을 한쪽에서 쥐어짜면 그것을 중심으로 성장 드라이브가 걸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쪽이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기형적으로 불거진다는 것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윤리적인 방법으로라도 성과를 채워 구성원이 생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이 지나쳐 고객에게 손해를 입혀온 것이 외부로 알려지면 결국 풍선은 터지게 돼 있다.

위기에 처했을 때 마지막 순간에도 살아남은 기업들은 다윈의 적자생존 원리를 이해한 회사들이었다. 결정적인 위기에서 무너지는 기업들은 고객 만족이라는 목적을 상실한 상태에서 생존을 위해서 구성원을 과도하게 쥐어짠 회사들이다.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달성된 목표 탓에 피해를 입는 것은 고객이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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