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티아 나델라 MS CEO(왼쪽), 선다 피차이 구글 CEO 모두 인도 출신이다. 사진 블룸버그
사티아 나델라 MS CEO(왼쪽), 선다 피차이 구글 CEO 모두 인도 출신이다. 사진 블룸버그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인도 출신들이 무섭게 장악하고 있다. 구글의 선다 피차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어도비의 샨타누 나라옌, 샌디스크의 산제이 메흐로트라, 하만 인터내셔널의 디네시 팔리월 등. 모두 대학까지 인도에서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창업자의 15%가 인도 사람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숫자는 영국·중국·대만·일본·한국 출신 창업자 전부를 합한 것보다 많다.

인도 출신 CEO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CEO에 비해 어떤 강점이 있는 것일까. 이들은 ‘공감’이라는 가치를 기업 경영에 접목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상황에 대한 이해 능력,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데 능숙하며, 이를 바탕으로 약속한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낸다. 인도 출신 CEO들은 복잡한 조직의 상황과 이해관계 속에 숨겨진 법칙을 이해하는 감성이 누구보다 뛰어나다.

인도 출신 CEO들은 빠른 변화를 요구받는 IT 기업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사업에 임직원들과 고객들이 공감할 만한 스토리를 끼워 넣는 작업의 대가들이다.

인도 출신 CEO들은 유년기와 청년기를 인도에서 보냈다. 이들의 성장 배경이었던 인도는 다문화·다종교·다언어라는 특성이 있다. 불확실성과 갈등이 항상 존재하는 사회였다. 이해관계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삶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생존을 위해서는 언제나 상황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장기적 안목으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어야 했다. 이들은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적을 만들지 않는 법을 이곳에서 배웠다.

펩시가 2006년 인드라 누이를 신임 CEO로 임명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과 경쟁했던 임원의 집을 찾아간 것이다. 그는 그 길로 일주일간 그 임원의 집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그와 머리를 맞대고 펩시의 미래를 같이 설계했다. 경쟁자를 밀어내기보다는 품고, 이를 통해 조직의 더 나은 미래를 합의한 것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정상과 회담에서 인용했던 ‘다른 형제의 배를 저쪽 항구에 도달하게 도와줬더니 내 배도 내 항구에 도달했다’라는 인도 속담은 이들이 갈등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 이는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니 장기적 안목으로 보고, 지금은 적으로 보일지라도 적대하지 말고 협력해야 할 스파링 파트너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주 회사를 옮기지 않아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는 것도 인도 출신 CEO들이 약진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자주 옮겨 다니는 것을 경력으로 생각하는 미국 문화와 달리 인도 출신 CEO들은 한 조직에서 10~20년간 근무했다.

구글의 피차이 CEO는 2004년 조직에 합류해 CEO가 되기까지 13년 동안 ‘구글맨’으로 살았다. MS의 나델라 CEO는 최고경영자가 되기 전까지 25년간 ‘MS맨’으로 일했다. 어도비의 나라옌 CEO도 20년 가까이 어도비에서 일했고, 펩시의 누이 전 CEO도 최고경영자가 되기 전까지 12년간 펩시에 근무했다. 그리고 이후 12년을 펩시 CEO로 일했다.


미래에 대한 철학으로 구성원 설득

이들은 회사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기반으로 회사의 발전을 위한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이용해야 하는지 파악했다. 주로 장기적 가치와 설립자의 철학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았다. 여기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실현시켰고, 성과가 따라왔다. 이들이 상대를 설득하거나 갈등을 중재할 때 끌어다 쓰는 근거는 ‘미래’였다.

구글에서 에릭 슈밋 회장이 새로운 크롬 브라우저 개발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피차이 CEO가 그를 설득하기 위해 가져다 쓴 개념은 ‘구글의 미래’였다. 그는 “크롬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지 못하면 구글은 MS가 독점하고 있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영원히 서비스를 팔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슈밋 회장에게 미래를 팔았던 것이다. 피차이 CEO는 결국 크롬 개발을 지속해 가장 인기 있는 브라우저로 만들었다. 크롬은 구글의 각종 서비스를 탑재한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MS의 나델라 CEO는 MS가 독점에 대한 비난을 등에 지고 사업을 계속할 경우 조만간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는 미래를 읽었다. 그래서 그는 MS의 미래는 소프트웨어의 독점이 아닌 클라우드 사업에 있다는 비전을 팔았다. 결국 클라우드 사업인 ‘애저’를 성공시켜 오라클을 밀어내고 MS를 아마존을 넘보는 기업으로 회생시켰다. 이들은 창업자들이 주창하는 사명과 가치를 구현하는 상품을 만들고, 조직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줘 이끌어가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이 미래 비전으로 임직원을 설득할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전문적인 언어 구사 능력이었다. 인도 출신 CEO들은 다른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에 비해 영어가 능통하다. 그런데 그저 영어를 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은 전문 영역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엔지니어 출신으로, 개발 등 실무 전문 분야의 언어에 통달해 있다. 또 이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 경력을 가지고 있거나 컨설턴트로 일한 경력도 있다. 비즈니스 언어에도 능통한 것이다. 한 조직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그 조직 구성원들끼리 공유하는 문화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 능력도 탁월하다.

이와 같은 다양한 전문적 언어 능력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과 결합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구성원의 협업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들은 회사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조직이 필요로 하는 철학을 구성원들 마음속에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협업할 수 있도록 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비단 인도 경영자들만 이런 능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1963년 미국으로 돌아가 보자. 워싱턴광장에 모인 수십만 명의 군중에게 수많은 유명한 인권운동가들이 나서서 연설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들의 연설 내용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나설 때까지 청중의 마음에 이입되지 못했다. 맥락 없는 공허한 메아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킹 목사가 ‘나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시작하자, 군중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군중은 킹 목사가 설파하는 ‘텍스트(text)’를 받아들여 자신의 텍스트와 한데 묶어 공감하기 시작했다. 킹 목사의 연설을 계기로 ‘흑인인권 운동’이라는 ‘맥락(context)’이 만들어졌다.

조직 경영에서 리더가 직면하는 상황은 개별 구성원들이 겪는 일의 총합으로 구성된 것이다. 구성원들이 리더의 의도가 담긴 텍스트를 받아들이면, 리더가 설파하는 텍스트와 구성원의 텍스트가 결합해 하나의 거대한 맥락이 만들어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변화도 이룰 수 없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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