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빈스 맥마흔 회장.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빈스 맥마흔 회장.

“2002년 세계 400대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던 맥마흔 회장이 16년 만에 400대 부자 순위(239위)에 다시 등장했다.”(포브스)

세계 최대 프로레슬링 단체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세계 레슬링 엔터테인먼트) 창립자인 빈스 맥마흔(Vince McMahon·73) 회장이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올해 그의 재산은 지난해보다 18억달러(약 2조원)나 늘어나 35억달러(약 4조원)에 달한다고 ‘포브스’가 보도했다.

WWE 매출이 올해 2분기 2억8200만달러(약 3200억원)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WWE 주가가 최근 1년 동안 300%나 오른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부인 린다 맥마흔(69) 중소기업청장은 교체설이 나도는 월버 로스 상무장관 후임자로 거론되고 있다. 맥마흔 회장은 영국 프리미어 리그 구단 뉴캐슬 인수 후보로도 부상하는 등 다사다복(多事多福)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프로레슬링은 쇼다’

‘세계 프로레슬링의 황제’ 맥마흔 회장은 현대 프로레슬링 역사와 동의어로 통하는 인물이다. 파격과 혁신적 발상으로 프로레슬링을 인기 산업으로 키운 주역이다.

미국 프로레슬링은 1970년대까지 군소 프로모터들이 지역을 분점하고 주먹구구식으로 경영하는 B급 스포츠였다. ‘프로레슬링은 스포츠’란 타성을 거부하고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전면에 내세워 WWE를 세계 최대 프로레슬링 기업으로 키운 인물이 바로 맥마흔 회장이다.

3류 프로레슬러였던 헐크 호건을 발굴해 ‘헐크 마니아’ 붐을 일으키고 숀 마이클스, 브렛 하트 등에게 특별한 캐릭터를 부여해 그들을 스타로 만들었다. 경영뿐 아니라 직접 대본을 쓰고 TV 해설하고 홍보를 위한 ‘장외 쇼’까지 도맡았다.

1945년 노스캐롤라이나 파인 허스트에서 빈센트 제임스 맥마흔(아버지)과 빅토리아 에스큐(어머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행복한 소년이 아니었다. 프로레슬링 프로모터였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직후 어머니와 이혼하고 집을 나갔다.

“그놈(계부)이 일찍 죽지 않았다면 아마 내 손에 죽었을 것이다.” 계부의 가정폭력 속에 자란 맥마흔 회장은 12세 때 친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아버지를 따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며 스타 레슬러를 꿈꿨지만, 아버지는 “프로모터는 선수와 거리를 둬야 한다”며 그의 꿈을 막았다.

이스트캐롤라이나대를 졸업(1968년)하고 잠시 세일즈맨 생활을 하다가 1969년 부친이 경영하던 프로레슬링 프로모션 기업에 경기 매니저로 취직, 프로레슬링 산업에 뛰어들었다.

1971년부터 1997년까지 26년간 TV 프로레슬링 해설자로 활약했다. 1980년 타이탄 스포츠를 창업, 아버지로부터 독립했고 1982년 아버지가 창업한 세계레슬링연맹(WWF)을 인수했다. 분기마다 25만달러를 지불하지 못하면 사업권을 반환하는 조건이었다.

1983년 프로레슬링의 대중화, 전국화를 내세우며 당시 지역 프로모터들의 연합단체인 NWF(전국 레슬링 협회)를 탈퇴,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헐크 호건은 그가 만든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다. 그는 무명 가수 출신으로 군소 단체에서 3류 레슬러 생활을 하던 헐크 호건의 상품성을 알아 봤고, ‘헐크 마니아 붐’을 타고 1985년 출범시킨 유료 방송 ‘레슬 마니아 1(Wrestlemania 1)’이 대박을 터트렸다. 헐크 호건 등 스타 레슬러들과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 유명 가수 신디 로퍼 등을 출연시켜 대중의 호기심과 환호를 이끌어냈다. ‘레슬 마니아 1’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상파 방송에도 진출했다.

1990년대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1992년 그가 프로레슬러들에게 스테로이드 등 약물 복용을 지시했다는 약물 파동이 불거졌다. 헐크 호건 등 스타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나 방송 재벌 테드 터너가 설립한 WCW(World Championship Wrestling·세계 레슬링 챔피언십)에 합류했다. ‘할리우드 호건’으로 이름을 바꾼 헐크 호건 등 전직 WWF 소속 스타 레슬러들의 활약으로 1990년대 중반에는 시청률에서도 밀렸다.

위기 의식을 느낀 맥마흔 회장은 숀 마이클스, 브렛 하트, 언더 테이커 등 신진 스타를 발굴하는 한편, 1997년부터 직접 링에 올랐다.

키 188㎝, 체중 112㎏에 터프한 인상과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그는 악덕 기업주 캐릭터를 자처하며 ‘서민의 영웅’ 캐릭터들과 대결 구도를 형성해 인기를 모았다. 시청률 경쟁에서 밀린 터너 회장은 2001년 430만달러에 WCW를 WWF에 매각했다. ‘프로레슬링의 지존’으로 등극한 맥마흔 회장은 2002년 회사 이름을 WWE로 바꿨다.


트럼프와 ‘억만장자 내기’

2000년대 들어 맥마흔 회장은 ‘레슬 마니아’ 시청 가능 연령을 낮춰 청소년 등 새로운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다양한 캐릭터 상품을 개발해 꾸준히 매출을 늘렸다.

2014년 인터넷 방송인 WWE 네트워크를 출범시키는 등 온라인 시장에도 진출했다. WWE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현재 30여 개 언어로 150여 개국에서 방송되고 있다.

‘가족 간 불화’도 흥행 테마로 활용하는 등 ‘재미’를 위해서라면 ‘막장’도 ‘엽기’도 가리지 않아 ‘성공한 경영인이라기보다는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링 위에서 부인에게 로 블로를 당하고 자식들에게 정강이를 차이고 얻어맞아 실신하고 맥주 샤워를 당하고 링에 오르다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하는 등 몸을 사리지 않았다. 툭하면 링 위에서 팬티를 내리는 등 ‘굴욕 전문 밉상 회장 캐릭터’로 WWF 챔피언에 올랐고 프로레슬링 명예의전당에도 헌액됐다.

‘재미’와 ‘흥행’을 위해 애국주의를 앞세우고 중동 등 다른 나라를 조롱해 인종 차별 논란에 휩싸이는 등, ‘안티’도 적지 않다. 약물 사용과 성폭행 등으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으나 기소되거나 처벌받은 적은 없다.

골수 공화당원이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각별한 친구 사이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 후보 진영에 600만달러가량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과 벌인 내기는 유명하다. 2007년 트럼프 대통령과 대리인을 내세워 레슬링 경기해 지는 사람이 삭발하기로 하는 ‘억만장자 대결’을 벌였다. 내기에서 승리한 트럼프 대통령이 링에 올라 맥마흔 회장의 머리를 깎고 모욕을 주는 쇼로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넌 해고야!(You are fired!)’는 맥마흔 회장이 밉상 회장 캐릭터를 소화하며 먼저 히트시킨 유행어다. 67세인 2012년에도 링에 오르는 등 현역 레슬러 생활을 계속했고, 2006년 헬스 잡지 표지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도 자기 관리에 충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plus point

부인은 美 상무장관 후보 부상

린다 맥마흔 중소기업청장. 사진 블룸버그
린다 맥마흔 중소기업청장. 사진 블룸버그

부인 린다 맥마흔 중소기업청장은 13세인 1962년, 당시 17세이던 맥마흔 회장을 만나 1966년 결혼해 아들(셰인)과 딸(스테파니)을 낳았다. 남편과 타이탄 스포츠를 공동 창업하며 경영에 적극 참여했고 1997년에는 WWE 회장에도 올랐다. 2000년대 정치로 눈을 돌려 코네티컷주 교육위원을 지냈고, 2010·2012년 공화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두 자녀 모두 프로레슬러로 활약하면서 WWE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셰인 맥마흔은 세븐 스타스 클라우드그룹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스테파니 맥마흔은 아버지와 함께 각본을 총괄하며 WWE CBO(최고 브랜드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스테파니 맥마흔은 2003년 스타 레슬러인 ‘트리플 H’와 결혼했다.

방성수 조선비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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