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예상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해 APT의 최종 승자로 낙점된 보잉-사브 컨소시엄의 BTX-1. 사진 보잉
헐값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예상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해 APT의 최종 승자로 낙점된 보잉-사브 컨소시엄의 BTX-1. 사진 보잉

9월 28일 보잉-사브 컨소시엄의 ‘BTX-1’이 미국 APT(고등훈련기 교체사업)의 최종 승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APT는 지난 50여 년간 미 공군이 사용해온 350여 대의 ‘T-38’ 훈련기를 대체하는 것이 목적인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향후 미 해군과 해병대를 비롯한 여타 대체 수요까지 고려하면 기체를 1000여 대 이상 공급할 가능성이 있는 거대 사업이다.

APT는 향후 20년 이내에 유일하게 남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돼 세계 유수의 항공기 제작사들이 사활을 걸고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탈리아의 항공기 제작사인 알레니아 아에르마키가 러시아의 ‘Yak-130’을 기반으로 제작한 ‘T-100’처럼, 미군이 사용할 무기로는 암묵적인 금기 대상인 전투기들까지 참여했을 정도였다.

비록 조기에 탈락했지만 만일 T-100이 선택됐다면 미국, 러시아, 중국이 같은 뿌리를 둔 훈련기를 사용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될 수도 있었다. 앞서 언급처럼 Yak-130은 T-100의 기술적 기반이자 중국의 훈련기인 ‘L-15’의 개발에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거대한 전쟁터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미국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이뤄 훈련기 ‘T-50A’를 내세워 참여했다. APT는 특정 업체가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프로젝트가 방대했다. 게다가 미군이 요구하는 조건도 까다로웠기 때문에 업체들은 합종연횡(合從連橫)할 수밖에 없었다.

군용기 개발에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전술기 분야가 그러한데, 현재 고성능 전투기를 자체 설계, 제작해서 운용 중인 나라는 한 손에 겨우 꼽을 정도다. 전통의 항공기 명가인 영국이 1970년대에 군용기 단독 개발을 포기하고 대외 도입이나 공동 개발로 정책을 선회했을 정도로 특정 국가나 기업이 단독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이번 미군의 APT 수주 경쟁에서 업체 간 연합이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미국 정부가 APT를 입안할 당시 공교롭게도 훈련기를 개발하고 있거나 관심이 있던 미국 내 방산 업체가 없었다. 아무리 항공기 개발 경험이 풍부한 미국 방산업체라도 미군의 향후 주력 전투기인 F-35를 비롯한 고성능 기종 조종사 양성 목적의 새로운 훈련기를 개발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 노후기 대체가 시급했던 미국 정부는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외국에서 제안한 기종도 후보가 됐다. 미국 업체들도 외국 회사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 APT에 참여했다.

미 정부는 미군에 납품하는 군수품은 무조건 미국 내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군수품 가격의 50% 수준에 해당하는 부품을 미국산으로 써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군에 군수품을 납품하려면 외국 업체가 단독으로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국항공우주산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외국 방산 회사들은 APT에 참여하던 초기 단계부터 미국 업체와 연합에 나섰다.

시작 당시 T-50A는 유력한 입찰 후보였다. T-50A는 APT 개시 시점에 유일하게 개발이 완성된 기체였다. 게다가 T-50A는 지난 1997년 개발을 시작하던 시점부터 미국의 록히드마틴이 참여하고 기술 지원을 했던 기체다. 생산 공정과 부품 수급까지 고려한다면 미국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APT 선정을 차일피일 미뤘다. 여러 업체를 참여시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막판까지 T-50A는 보잉-사브 컨소시엄의 BTX-1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T-50A는 이미 검증된 성능을 우위로 내세웠다. 반면 BTX-1은 2016년 12월 21일에야 처녀비행에 성공했다. BTX-1은 T-50A에 비한다면 성능이 충분히 입증된 기체가 아니었다.


끝까지 경쟁을 벌였지만, 가격에 밀려 아쉽게 탈락한 한국항공우주산업-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의 T-50A. 사진 한국항공우주산업
끝까지 경쟁을 벌였지만, 가격에 밀려 아쉽게 탈락한 한국항공우주산업-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의 T-50A. 사진 한국항공우주산업

멈추지 말아야 할 도전

T-50A가 가진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 때문에 경쟁에서 탈락했다. 사실 T-50A는 훈련기로는 성능이 너무 과도하게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가격이 비싸진 요인이기도 했다. 반대로 보잉-사브 컨소시엄은 늦게 출발한 만큼 최신 기술을 더 많이 적용해 BTX-1의 가격을 낮췄다고 선전했다.

결국 예상가 163억달러보다 훨씬 낮은 92억달러의 입찰가를 써낸 보잉-사브 컨소시엄이 APT의 승자가 됐다. 과연 이 금액에 예정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적어도 공개된 수치만으로는 BTX-1이 엄청난 가격을 제시한 것은 확실하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의 탈락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미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방산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정책적인 고려를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마치 우리나라의 관급 공사를 어느 특정 기업에만 몰아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는 지난 30여 년간 있었던 미국의 전술기 사업 수주 현황을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이 시기의 ATF(차세대전투기), JSF(통합전투기) 프로그램에서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전투기인 F-22, F-35가 연이어 승리했다. 군사적인 관점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경제적인 부분까지 고려할 때 한 회사의 일방적인 수주 독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분위기를 직감한 록히드마틴은 사업 추진과 가격 절충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열성적으로 수주전에 참여했던 한국항공우주산업과는 달랐다.

미국의 군용기는 진입 장벽이 높다. 1920년대부터 항공기를 만들어왔고 지금도 ‘그리펜’ 같은 뛰어난 전투기를 생산하는 사브마저도 이번에 합작 형태로 처음 발걸음을 디뎠을 정도다. 이런 점을 상기한다면 대등한 경쟁을 벌였던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이제부터 미국 이외 시장을 놓고 새로운 경쟁을 하기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할 차례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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