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 사진 블룸버그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 사진 블룸버그

“이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존경과 위엄을 주는 기업,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모두가 함께하는 장소를 만들겠다는 나의 꿈. 사랑으로 중단 없이 전진하겠다(Onward with love).”

지난 4일 이른 아침,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시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스타벅스 1호점. 훤칠한 키, 마른 체구, 백발의 노신사가 나타났다. 직원들의 목례를 받은 그는 성큼성큼 벽으로 걸어가더니 펜을 꺼내 들고 거침없이 메시지를 써내려갔다. 고객 몇 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켜 봤다. 노신사는 ‘모두(ALL)’라는 단어를 대문자로 쓰고 밑줄까지 그은 뒤 사인을 남겼다.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65) 스타벅스 회장이었다.

“40년간 해 온 일, 녹색 에이프런을 벗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두 번째 도전을 위해서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슐츠 회장은 이날 77개국, 2만8000개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 35만명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나는 여전히 브루클린의 공공 주택에서 자라는 아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변함없이 아메리칸 드림, 나와 회사와 당신을 위한 꿈을 꾼다. 여러분들이 자부심을 느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스타벅스는 “마이런 멀런 J.C. 페니 전 회장이 후임 회장에 내정됐다. 슐츠 회장은 6월 24일자로 명예 회장으로 추대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슐츠 회장의 퇴임은 예정된 수순이다. 당초 지난 4월 퇴임 예정이었으나 필라델피아 매장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흑인 고객 2명이 직원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는 등 인종차별 논란 때문에 두 달간 미뤄졌다. 


2020년 대선 출마 유력

지난 5월 29일 미국 매장 8000개 문을 동시에 닫고 직원 전원에게 인종 차별 철폐 교육을 실시하라고 지시하고 스타벅스를 방문하는 모두에게 구매 여부와 상관없이 화장실을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선은 슐츠 회장의 다음 행보에 모아진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CNBC는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으로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호스트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출마보다 30년간 스타벅스를 이끈 슐츠 회장의 대선 출마가 더 현실적”이라며 그의 정계 진출을 기정사실화했다.

슐츠 회장도 대선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뉴욕타임스’ 기자가 대선 출마 여부를 묻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격화되는 미국 내 갈등, 세계에서 미국의 지위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공공 봉사(public service)를 포함, 여러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슐츠 회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오랜 앙숙 사이다. 지난 대선 당시 슐츠 회장은 “트럼프가 매일매일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당시 후보는 “스타벅스를 보이콧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트윗을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슐츠 회장은 “우리는 아메리칸 드림이 사라지는 미증유의 시대를 살고 있다”며 “앞으로 5년간 난민 1만 명을 고용하겠다”고 응수했다.


 ‘양심적 자본주의’ 주창

슐츠 회장은 1987년 시애틀의 로컬 원두커피 소매점에 불과하던 스타벅스(1971년 창립)를 인수한 뒤 종업원 35만명, 연매출 220억달러(2017년)에 달하는 세계 최대 커피 체인으로 성장시킨 신화적인 기업인이다. 1992년 회사를 첫 상장한 이후 주가가 2만1000%나 상승했다.

작은 회사를 인수해 세계 최대 커피 체인으로 성장시켰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황제’라기보다는 ‘혁신 기업인’에 가깝다.

싸구려 드립 커피를 25~50센트에 팔던 1980년대, ‘누가 커피 한 잔에 1달러 50센트나 주고 커피를 먹겠느냐’는 회의론을 극복하고,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등 유럽 스타일의 고급 커피로 대성공을 거뒀다. 나이키와 함께 ‘발상의 전환’을 통해 성공한 기업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는 ‘일터와 집의 중간 지대’인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커피 향이 가득한 공간에서 지인들이 담소를 나누는 ‘스타벅스 문화’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품이 아니라 공간과 문화를 판다’는 아이디어는 1983년 이탈리아 밀라노 출장에서 이탈리아 전역에서 성업 중인 20만개의 커피 하우스를 보고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corner to corner’란 말이 상징하듯 소비자의 눈에 보이는 곳이면 어디든 매장을 개설하는 공격적인 확장 정책도 유명하다. 스타벅스는 1987~2007년 20년간 매일 두 개의 매장을 열었고 중국에서는 지금도 이틀에 한 개꼴로 매장을 개설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2020년까지 중국 매장수를 5000개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1996년 일본 도쿄에 첫 해외 매장을 개설한 뒤 현재 매출의 3분의 2를 해외 매장에서 올리고 있다. 맥도널드 등의 프랜차이즈 사업 모델을 불신, 모든 매장을 직접 경영하는 정책도 널리 알려져 있다.

샌드위치 속 치즈가 커피 맛을 해친다며 잘 팔리던 샌드위치 판매를 접고 금연 매장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터넷, 모바일 시대를 읽고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선언한 뒤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 출신인 케빈 존슨(57)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도 ‘신의 한수’로 꼽힌다. 

스타벅스 모바일 앱이 인기를 끌면서 스타벅스는 최근 애플, 구글, 삼성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을 따돌리고 모바일 결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모바일 주문과 결제 분야 선두 기업으로 질주하고 있다.

눈부신 성공 못지않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윤리 경영’의 원조 기업인으로도 꼽힌다. 슐츠 회장은 비정규 직원 의료 보험 혜택 제공(1988년), 평사원 스톡옵션 분배(1991년), 모든 직원 대학 학비 지원 등 파격적인 사내 복지 정책을 통해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과 사회 공헌에 앞장섰다. 나아가 저소득층, 여성들의 교육 확대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양심적인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를 실천한 기업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슐츠 회장은 스스로 ‘기업 이익과 양심의 연약한 균형’이라 표현한 ‘기업 경영과 도덕성을 결합시킨 경영자’”라고 평가했다.


plus point

유대인 노동자의 아들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미국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 매장. 사진 블룸버그
미국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 매장. 사진 블룸버그

슐츠 회장은 1953년 뉴욕 빈민가에서 유대인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거부가 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제2차세계대전 참전 군인인 아버지는 트럭, 택시 운전, 공장 노동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생계를 부양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여덟살 때 아버지가 사고로 무릎을 다쳐 생계가 막막해졌고 빚 독촉에 시달렸다”고 회고했다.

축구 전액 장학생으로 노던 미시간 대학에 입학,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제록스 판매 사원으로 3년간 일한 뒤 스웨덴 주방용품 회사로 전직했다가 1981년 거래 기업이던 스타벅스의 창업자인 제리 볼드윈과 고든 보커를 만나 마케팅 간부로 영입됐다. 

1985년 스타벅스에서 독립해 ‘일 지오날레’라는 커피점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시장을 석권한 그는 1987년 380만달러를 주고 스타벅스 사업권을 인수했다. 

2000년 은퇴한 뒤 NBA 농구팀 시애틀 수퍼소닉 구단주로 변신했으나 2008년 재정위기로 스타벅스 주가가 42% 폭락하자 일선에 복귀, 부활을 주도했다.

1982년 결혼한 부인(셰리 커시)과 두 명의 자녀를 뒀다. 큰 아들 조던(32)은 허핑턴 포스트 기자로 일하고 있다. 개인 재산은 31억달러(2017년)로 ‘포브스’ 선정, ‘세계 억만장자 순위’ 232위에 올라있다.

방성수 조선비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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