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을 인수한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창업자. 사진 블룸버그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을 인수한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창업자. 사진 블룸버그

“그는 ‘올해의 바이어(Buyer of The Year)’다.”(뉴욕타임스).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54) 세일즈포스 공동 창업자 겸 회장과 부인 린 베니오프(43)가 시사주간지 ‘타임’을 1억9000만달러(약 2100억원)에 인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월 16일(현지시각) 특종 보도했다.

베니오프 CEO는 “‘타임’은 (미국의) 역사적, 문화적 자산이다. 상징적인 미디어를 이끌게 돼 영광”이라며 “‘타임’ 인수는 개인 차원의 투자로 편집권과 영업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923년 예일대 졸업생 헨리 루스와 브리튼 하든이 창립한 ‘타임’은 미국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시사주간지다. 발행 부수는 230만부.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인물’과 깊이 있는 칼럼, 분석 기사로 유명하다. 미디어 그룹 메레디스(Meredith)가 작년 ‘포천’ 등과 함께 18억달러에 인수했다. 베니오프 CEO는 분할 매각을 통해 ‘타임’만 인수했다.

‘타임’ 매각을 계기로 미국 미디어 업계와 학계에선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전통 미디어 사재기’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2013년 ‘워싱턴포스트’를 2억5000만달러에 샀고, 고 스티브 잡스의 아내인 로렌 파월 잡스가 작년 유명 잡지 ‘더 애틀랜틱’ 지분을 인수했다. 올해 6월에는 바이오업계 억만장자인 패트릭 순-시옹(Patrick Soon-Shiong)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샌디에이고 유니언 트리뷴’을 5억달러에 인수했다. ‘포천’, 피플, 머니,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등 유명 미디어들이 매물로 나와 있다.


“소프트웨어는 빌리는 것” 혁신

베니오프 CEO는 ‘소프트웨어의 개념을 바꾼 혁신가’ ‘클라우드 컴퓨팅의 개척자’로 알려진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기업인이다.

그가 1999년 샌프란시스코 아파트에서 세일즈포스를 창업할 때만 해도 소프트웨어는 플로피 디스크 등 물리적인 저장 장치에 담겨 사고파는 상품으로 인식됐다. 인터넷 등 디지털 산업이 성장하면서 기업들은 거액을 들여 독자 서버를 구축하고 고가의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 했다.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서버와 소프트웨어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것에 착안한 그는 외부 인터넷 서버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빌려주는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대여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필요한 프로그램은 빌려 쓰고, 서버 관리 등 기술적인 문제는 외부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발상의 전환’은 클라우드 서비스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사고 방식이다. 클라우딩 기반 고객관리(CRM) 소프트웨어가 핵심 상품인 세일즈포스의 작년 매출은 83억9000만달러, 직원은 3만명으로 고속 성장 중이다.

게임 프로그래머로 출발,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기업가이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좋은 플랫폼은 기업”이라고 말한다.

“경영자는 주주(shareholder)뿐 아니라 고객, 직원, 협력사, 지역 사회, 환경 등 지분을 가진 사람(stakeholder)들에 대한 책무가 있다”는 세계경제포럼(WEF) 창립자 클라우스 슈바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디애나주가 2015년 게이 등 성적 소수자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거부할 수 있다는 법률을 통과시키자 입법 운동을 벌여 성적 소수자의 권리도 보호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시켰다. 2016년 조지아주에서도 비슷한 법률이 주의회를 통과하자 주지사 거부권 행사를 요구, 관철했다.

바락 오바마 대통령 정치자금 모금 파티를 주선하고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열성 민주당 지지자다. 이민, 총기, 기후변화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공개 반대하고 실리콘밸리의 기업인 페이스북, 우버의 고용 정책 등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기업 책임에 대한 신념 강해…불교 신자

아동 병원에 2억달러, 공공 교육 개선에 1억달러 이상을 쾌척하는 등 ‘통 큰 기부’로도 유명하다. 그가 제시한 기부 원칙인 ‘1-1-1 모델(기업 자산, 직원들의 시간, 제품의 1%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은 구글, 징가 등 실리콘밸리 1000개 기업이 따라하고 있다.

키 196㎝(6ft 5in), 체중 131㎏(290lb)인 우람한 체구 덕분에 미식 축구 선수를 연상시키고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별장에서 유명 연예인과 파티를 즐기며 고가 자동차를 수집하는 등 화려한 생활을 즐기지만 명상, 요가 등 동양 종교에 심취한 불교 신자로 알려졌다.

오라클 세일즈맨 시절인 1996년 인도의 힌두교 지도자 마타 암리타만다야이(Mata Amritanandamayi) 밑에서 수행한 적도 있다. “받은 것을 되돌려 주라”는 그의 가르침에서 “직업적 야망과 선행이 조화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티베트 승려 달라이 라마 강연회의 주요 후원자이며 ‘초심을 잃지 말라’는 일본의 선승 스즈키의 잠언도 즐겨 인용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혁신가란 평가와 ‘잘난 체하고 교만하며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으로 “미디어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얻으려는 전형적인 인물”이란 평가가 엇갈린다.

2015년 하와이 별장을 취재하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를 스토커라 부르며 구금하는 등 언론 보도에 민감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편집과 경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그의 약속은 그가 싫어하는 인물이나 정책에 대한 ‘타임’의 보도에 대한 반응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시라 오바이드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지적했다. 베니오프 CEO는 ‘타임’ 인수 직후 그의 개인 트위터에 관련 기사들을 링크하고 ‘기사에 감사한다’는 멘션을 달면서 언론 보도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plus point

후원자에서 숙적으로 마크 베니오프 vs 래리 엘리슨

그는 1964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샌프란시스코 고속 철도 건설 사업에 참여했고 아버지는 의류 체인점을 경영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벌링게임 고교를 졸업(1982년)하고 남가주대학(USC)에서 경영학(1986년)을 전공했다.

15세 때 ‘리버티 소프트웨어’를 설립하고 애플의 아타리 컴퓨터용 게임을 팔아 한달에 1500달러를 벌어 학자금을 조달한 ‘컴퓨터 신동’이었다. 대학 재학 중 애플에서 인턴 프로그래머로 일했는데 “당시 만난 스티브 잡스가 영원한 나의 멘토이자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래리 앨리슨 오라클의 공동 창업자와의 ‘애증관계’는 유명하다.

그가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는 오라클이었다. 입사 첫해, ‘올해의 신입 사원’에 선정됐고 3년 만에 최연소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13년간 판매, 마케팅, 제품 개발을 주도했다.

그의 특출한 아이디어와 재능을 알아 챈 래리 앨리슨이 최대 후원자였다. 지중해 휴가를 함께 가고 더블 데이트를 같이 할 정도로 신임했다.

베니오프 CEO가 300만달러를 들여 세일즈포스를 창업할 당시 개인 돈 100만달러를 투자한 최초 투자자도 앨리슨이었다. 이사회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베니오프 CEO가 어느 날 사내 게시판을 검색하다 앨리슨이 세일즈포스의 사업 모델과 비슷한 사내 벤처회사를 설립한 것을 발견, 갈등 끝에 결별했다.

부인 린 여사와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개인자산은 65억달러(2018년 3월 현재)로 ‘포브스 세계 억만장자 순위’ 404위에 올라 있다.

방성수 조선비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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