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그-25는 마하 3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비행해 미국 등을 충격에 빠뜨렸다.
미그-25는 마하 3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비행해 미국 등을 충격에 빠뜨렸다.

1976년 9월 6일, 일본 홋카이도 남부 하코다테 공항에 소련 공군의 전투기 1대가 비상 착륙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소련 정부는 즉각 영공 침범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후 훈련 중 사고가 발생해서 벌어진 불가피한 상황이라 주장하며 관례에 따라 조종사와 기체를 조속히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조종사 빅토르 벨렌코는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소련을 탈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포드 대통령이 망명지 제공을 약속하고 정부 요원들을 보내 그를 미국으로 후송했다. 추후 벨렌코는 소련에서 진행된 궐석 재판에서 반역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간첩들의 위협으로부터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사실 벨렌코는 이 사건에서 미국이나 소련 모두에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당시 사건이 전 세계에 이슈가 된 이유는 그가 몰고 온 전투기가 ‘미그(MiG)-25’였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이 전투기의 성능을 파악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미국에는 한마디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상황이었다.

미그-25는 1967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에어쇼에 처음 선보였을 때부터 서방측에 충격을 안겨줬다. 설계 사상이 그때까지의 소련 전투기와 확연히 달랐다. 외형만 봐도 뛰어난 성능을 짐작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고주익, 2중 수직미익 등의 구조는 당시 미국이 한창 개발 중이던 F-14, F-15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그-25가 경이로운 무기로 대접받은 이유는 엄청난 속도 때문이었다. 스텔스, 레이더, 항전장비 등의 성능에 따라 우열이 가늠되는 지금과 달리 당시만 해도 전투기에 속도는 성능의 우위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미그-25는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전투기도 근접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를 냈다.

서방 감시 레이더에 포착된 미그-25는 최고 마하 3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비행했다. 종종 나토 구역을 월경해 시위를 벌였는데 서방의 전투기가 출격하면 유유자적하게 따돌리고 돌아갔을 정도였다. 벨렌코의 귀순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F-4EJ 전투기를 출격시켰지만 그가 하코다테 공항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홋카이도를 3번이나 선회한 후였다.

당시 미국에도 마하 3의 속도로 비행이 가능한 SR-71이 있었으나 용도가 극히 제한된 고고도 정찰기였다. 미국은 많은 연구를 했지만 전투기가 마하 3의 속도로 비행하며 공중전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한 상태였다. 그래서 미그-25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좌절했으며 당연히 그 비밀을 알고 싶어 했다.

우연히 당대 소련의 1급 기밀을 분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미국은 흥분했다. 일본으로 건너 온 기술진들은 미그-25를 철저히 조사하면서 예상을 벗어난 놀라운 사실들을 차례차례 알게 됐다. 그리고 도출한 결과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단지 몰라서 두려워했다’였다.

특수 소재일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기체는 단순한 강철 합금으로 제작됐다. 덕분에 내구성이 좋았고 싸게 제작할 수는 있었지만 너무 무거웠다. 

강력한 투만스키 R-15 엔진 덕분에 고속 비행이 가능했지만 마하 3으로 비행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고 엔진 수명도 미국제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해 운용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더불어 각종 전자 장비의 성능 역시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일부에 구시대의 유물이라 할 수 있는 진공관이 장착돼 있었다. 고고도의 극저온에서 작동할 때 진공관이 트랜지스터보다 안정성이 좋아 일부러 장착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이런 점들은 그동안 미그-25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환상을 깨버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구조상 기동력과 선회력이 최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점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오로지 소련 본토를 공격하는 미국의 폭격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고고도까지 빨리 치고 올라가 엄청난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능력만 보유했던 것이었다. 이후 중동에서 벌어진 여러 국지전을 통해 무기력한 모습이 확실히 입증됐다.

그동안 미그-25의 정확한 성능을 모르던 서방에서는 최고 속도에 놀라 그 이상으로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소련도 이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자 미그-25를 더욱 비밀스럽게 운용했다. 한마디로 냉전시대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사례가 비즈니스 세계에도 있었다.


실망만 안긴 1인용 이동수단 ‘세그웨이’

2001년 출시 전부터 많은 이목을 끌었던 세그웨이. 하지만 무성했던 소문만큼 커다란 변화를 이끈 제품은 아니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2001년 출시 전부터 많은 이목을 끌었던 세그웨이. 하지만 무성했던 소문만큼 커다란 변화를 이끈 제품은 아니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지난 2001년 각종 매체는 인터넷을 능가하는 엄청난 발명품이 등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수백만달러를 선뜻 투자했고, 아마존은 어떤 제품인지 그리고 가격이 얼마인지 밝히지도 않고 판매 예약까지 받았을 정도였다. 차세대 이동 수단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은 두 발로 서서 타는 1인용 전동 스쿠터 ‘세그웨이’가 그것이다. 

하지만 20여년 가까이 된 현재의 위상을 보면 세그웨이는 그저 그런 상품일 뿐이다. 오히려 회사가 2015년에 짝퉁 세그웨이를 만들던 중국의 나인봇에 인수됐을 정도다. 마치 몰라서 경외의 대상으로 취급받던 미그-25처럼 신비주의를 내세워 주목을 끄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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