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미국 콜로라도의 한 학교에서 총기 사고 컨설팅 회사 택원의 트레이너이자 전직 경찰관인 조 에머리가 유치원생들에게 유사시 행동 요령을 가르치고 있다. 택원은 경찰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총격 사건 대응법 등을 교육하는 회사다. 사진 로이터 연합
8월 29일 미국 콜로라도의 한 학교에서 총기 사고 컨설팅 회사 택원의 트레이너이자 전직 경찰관인 조 에머리가 유치원생들에게 유사시 행동 요령을 가르치고 있다. 택원은 경찰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총격 사건 대응법 등을 교육하는 회사다. 사진 로이터 연합

9월 3일 미국 앨라배마주에 사는 14세 소년이 9㎜ 권총으로 가족을 쏴 전원 사망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생후 6개월 된 막냇동생을 비롯해 2명의 동생과 부모가 모두 숨졌다. 올해 최악의 총격 사건이 텍사스에서 벌어진 지 한 달도 안 된 상황에서 무차별 총격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며 미국 내 총기 규제 논란이 재점화했다.

미국에서는 8월 한 달 동안에만 무차별 총격 사건이 38건 발생해 53명에 달하는 시민이 사망했다. 미 법무부는 한 사건으로 3명 이상 사망한 경우를 무차별 총격으로 규정한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8월 3일 텍사스주 엘패소 시내 월마트에서 발생했다. 범인은 히스패닉계만을 겨냥했고, 22명이 숨지며 올해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낸 사건으로 기록됐다. 하루 뒤인 4일에는 오하이오주 데이턴 시내에서 총격범이 32초 동안 마구잡이로 총을 쏴 9명을 살해했다.

총격 사고 사망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미 질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2017년 총격 사고 사망자는 사상 최대인 약 4만 명에 달했다. 이 중에서 자살자를 제외하고 총기 범죄의 희생양이 된 사망자가 37%에 달했다. 특히 무차별 총격 사건 발생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비영리 단체 건바이올런스 아카이브에 따르면 올 들어 총기 난사 사건은 289건 발생했다. 1.2일에 한 번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텍사스 사건 직후 선거를 의식해 총기 규제를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8월 두 차례 총기 난사 사건을 겪은 텍사스 주정부는 오히려 9월 1일 총기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법령을 잇달아 시행했다.

총기류를 취급하는 대형 유통 체인점들은 점차 총기 판매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비난에 직면한 월마트도 3일 “매장에서 현재 재고가 소진되면 모든 권총과 총신이 짧은 소총용 탄약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딕스스포팅굿즈도 지난해 공격용 총기류 판매를 중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의 총기 유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대부분의 총기 판매가 개인 총기상이나 총기쇼 등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미 전역에서 유통되는 화기 중 월마트의 유통 비율은 2%에 불과하다.


연결 포인트 1
미국은 왜 총기 소지에 관대?
자기 보호 권리, 헌법에 명시

트럼프는 왜 명확한 총기 규제 강화 조치를 하지 않을까. 트럼프가 총기 소유에 비교적 관대한 공화당 소속이기 때문일까? 정치적 입장차 때문으로만 보기도 어렵다. 총기 규제 강화에 찬성하는 편인 민주당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총기 규제를 부르짖었던 오바마 전 대통령조차 총기 규제 강화에 대해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총기 소지에 관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의 건국정신을 담은 헌법에서 찾을 수 있다. 수정헌법 2조에는 ‘시민이 총기를 보유할 수 있는 권리는 절대 제한할 수 없다(The right for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고 돼 있다. 총기 규제 강화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이 헌법 구절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영제국과 독립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 같은 건국의 아버지들 피와 땀과 눈물을 모욕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또 무자비한 독재자가 등장하면 시민이 스스로 인권과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정헌법 2조의 권리를 공권력도 함부로 못 한다는 사례는 꽤 많다. 2016년에 총기로 무장한 시위대가 연방 법원의 한 판결에 대해 ‘공권력 남용’이라고 항의하면서 오리건주 연방정부 건물을 점거한 일이 있었다.

이때 미연방수사국(FBI)은 “큰 위협이 없는 한 강제로 진압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이를 방치했다. 시위대 리더가 이때 무장 시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근거로 든 것이 수정헌법 2조였다.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면 수정헌법 2조 ‘무기를 소지할 권리’가 필요하다”는 논지다.


연결 포인트 2
전미총기협회 “규제 반대”
年 5000억 이상 거둬 정치권 로비

미국의 대표 보수 논객 조지 F. 윌은 “보수의 최대 어젠다가 총기 규제 반대, 낙태·동성결혼 반대, 지구온난화 부정 등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그에 따르면 지나친 총기 허용은 건국 선조의 진정한 보수적 가치를 왜곡하는 일이다.

이 같은 왜곡의 대표로 거론되는 곳이 전미총기협회(NRA)다. 남북전쟁이 끝난 6년 뒤인 1871년 설립됐다. 남북전쟁 때 북군이 남군에 비해 사격 실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북군 쪽의 실력을 상향 평준화하려는 목적이었다. 참전 군인이 조직한 단체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민간인이 총기를 위험하게 사용하는 것을 막는 데도 힘썼다. 전과자의 총기를 금지하고, 판매·소유자의 등록을 규정한 1930년대 미국 총기법, 총기관리법 등은 모두 NRA가 주도해 통과됐다.

그러나 1960·70년대 베트남전쟁, 흑인인권운동 등으로 미국 사회가 극도의 혼란에 빠지면서 반작용으로 신보수주의 정치운동이 나왔는데, 이들이 NRA를 장악하면서 지금과 같은 단체로 바뀌게 됐다. NRA는 총기 난사는 개인의 일탈로 봐야 하며, 이 때문에 총기 소지의 권리가 크게 제한받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회원은 550만 명이다. 지난해 이 단체는 회원들의 회비, 총기 업체들의 기부금 등으로 총 4억1223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돈의 절반 이상을 입법 로비 활동·홍보·저술 등에 썼다.


연결 포인트 3
총기 사고가 총기 판매 늘린다
年 2750만 정…10년 새 2.7배

미국의 연간 총기 판매량은 지난 10년 사이 급증했다. ‘누가 총을 들고 나를 공격할지 모르니, 자기방어를 위해 나 역시 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팽배해진 것이다. 2006년 1000만 정 수준이던 총기 판매량은 2016년 2750만 정으로 2.7배 증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민간이 소유한 총기는 3억9300만 정에 달했다. 미국 인구(3억2720만 명)보다 많은 것으로 성인은 물론 영·유아까지 모두 포함해 미국인 1인당 1.2정의 총기를 소유한 셈이다.

미국은 총기법이 느슨한 만큼 누구나 쉽게 총을 구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에 따르면 총기를 사고자 하는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는 신분증을 준비해 총포사에 가면 어렵지 않게 총을 살 수 있다. FBI의 신원조회 시스템 NICS를 통해 즉석에서 범죄 경력 등을 조회하지만, 10분 이내에 구매 가능 여부가 나온다. 최근 주(州)별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간단한 편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사는 것보다 총을 구입하는 게 쉬울 정도”라고 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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