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도차량 제조사 알스톰이 2월 17일(현지시각) 캐나다 기업 봉바르디에 철도 부문을 인수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철도차량 제조사 알스톰이 2월 17일(현지시각) 캐나다 기업 봉바르디에 철도 부문을 인수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유럽 1위 철도차량 제조사인 프랑스 알스톰(Alstom)이 2월 17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캐나다 봉바르디에(Bombardier) 철도 부문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알스톰은 봉바르디에 철도 부문 지분 100%를 인수하는 데 최대 62억유로(7조9900억원)를 쓴다.

봉바르디에 지분 32.5%를 보유하고 있던 캐나다 퀘백연금(CDPQ)은 알스톰에 지분을 넘기는 대가로 받을 20억유로(2조5800억원)에 추가로 7억유로(9023억원)를 들여 알스톰 지분을 사들이기로 했다. 거래가 완료되면 퀘백연금은 알스톰 지분 18%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된다. 알스톰은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2021년 상반기에는 인수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앙리 푸파르-라파르주 알스톰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설명에서 “봉바르디에의 철도 부문을 인수하게 돼 매우 자랑스럽다”며 “지속 가능한 이동수단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이번 인수는 우리의 영향력과 대응 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퀘백연금을 새로운 주주로 맞이해 기쁘다”며 “퀘백연금은 알스톰의 전략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라고 했다.

알스톰은 한국 고속철 KTX의 모델이 된 프랑스 고속철 테제베(TGV) 제조사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유럽 고속철 시장에서 35%를 점유한 1위 기업이지만, 전 세계 시장 기준으로 60%의 점유율을 차지한 중국 국영기업 중궈중처(CRRC)에 뒤처진다. 알스톰은 CRRC에 맞서기 위해 2017년부터 유럽 2위인 독일 지멘스(Siemens) 철도 부문과 합병을 추진했다. 하지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019년 2월 두 회사의 합병에 대해 경쟁법(독점금지법) 위반 우려가 있다며 승인을 거부하면서, 철도차량 업계 ‘유럽 챔피언’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알스톰이 봉바르디에를 인수하는 데도 EU의 경쟁법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EU 집행위가 경쟁법 위반 여부 등 고강도의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봉바르디에는 항공기와 철도차량을 생산하는 캐나다의 다국적 기업이다. 철도 부문은 캐나다가 아닌 독일 베를린에 본사를 두고 있다. 봉바르디에는 수년간 실적 악화와 자금난이 이어지면서 지분 및 일부 사업 부문 매각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왔다. 봉바르디에는 2021년 15억달러(1조7900억원)에 이르는 부채 상환을 앞두고 이번 철도 부문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알스톰과 거래가 무산될 것에 대비해 미국 제트기 제조사 텍스트론을 상대로 제트기 부문 매각을 위한 논의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랭 벨레마르 봉바르디에 CEO는 2월 17일 성명을 통해 알스톰과 거래 사실을 알리면서 “오늘은 봉바르디에의 새 장을 여는 날이다”라며 “앞으로 비즈니스 항공(전세기 등) 부문의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자본과 인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멘스 CEO와 알스톰 CEO가 2017년 9월 두 회사 철도 부문의 합병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지멘스 CEO와 알스톰 CEO가 2017년 9월 두 회사 철도 부문의 합병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연결 포인트 1
넘어야 할 EU 기업결합 심사의 벽

알스톰과 지멘스의 합병은 EU 집행위가 퇴짜를 놓으면서 무산된 대표적 기업결합 실패 사례로 꼽힌다. 전 세계에서 경쟁법이 가장 발달한 EU는 기업결합 심사의 핵심으로 꼽힌다. 심사를 담당하는 EU 집행위는 예비협의 이후 본심사를 진행한다. 본심사는 일반심사와 심층심사 2단계로 나뉘는데, 일반심사에서 합병에 따른 독과점 여부 등 결론이 나지 않을 때 심층심사로 넘어간다. EU 집행위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입찰 제한 등 규제를 받으면서 사실상 영업 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합병이 무산된 것으로 여겨진다. 과거 EU 집행위는 일반심사에서 승인 결정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들어 심층심사로 넘어가는 경우가 늘고 알스톰과 지멘스의 합병처럼 불승인 사례까지 나오면서 EU 집행위의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탈리아 크루즈 조선사 핀칸티에리와 프랑스 아틀란틱 조선소의 합병,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합병 등이 심층심사를 받고 있다.


봉바르디에는 2018년 에어버스에 C 시리즈 사업을 매각했다. 사진은 봉바르디에의 CS300. 사진 봉바르디에
봉바르디에는 2018년 에어버스에 C 시리즈 사업을 매각했다. 사진은 봉바르디에의 CS300. 사진 봉바르디에

연결 포인트 2
흔들리는 캐나다 대표주자

캐나다의 대표적 중공업 기업인 봉바르디에는 항공과 철도가 주력 사업이지만, 항공 부문이 크게 쪼그라든 데다 이번 알스톰과 계약으로 철도 사업에서도 손을 떼게 된다. 한때 봉바르디에는 중형 여객기 C 시리즈 개발에 나서면서 유럽 에어버스와 미국 보잉의 양강구도를 깨뜨릴 것이란 기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C 시리즈의 개발 지연과 기대에 못 미치는 판매 실적 탓에 자금난에 빠졌고 2016년에는 인원의 11%에 해당하는 7000여 명을 감원했다. 북미 무역전쟁의 타격도 받았다. 2017년 북미 무역전쟁이 고조되면서 미국은 봉바르디에에 300%에 이르는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려 했다. 캐나다 정부가 보잉의 슈퍼 호넷 전투기 18대 도입 계획을 폐기하는 강수를 두면서 미국은 봉바르디에에 대한 징벌적 관세를 백지화했지만, 봉바르디에는 이미 세계 최대 항공기 시장인 미국에서 판로를 잃었다. 이어 봉바르디에는 2018년 에어버스에 C 시리즈 사업을 매각했고, 2019년에는 일본 미쓰비시에 소형 제트여객기 사업을 매각했다.


연결 포인트 3
철도 시장 장악한 中‘고속철 굴기’

알스톰은 CRRC에 맞서기 위해 이번 인수를 결정했다. 하지만 알스톰이 봉바르디에 철도 부문을 품더라도 CRRC의 매출을 뛰어넘지 못할 정도로 CRRC의 입지는 견고하다. CRRC는 2014년 말 중국의 양대 고속철 제조사인 중궈난처(CSR)와 중궈베이처(CNR)가 통합해 출범한 회사로, 출범 이후 글로벌 매출 1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은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알스톰, 지멘스 등과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자국에 고속철을 건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시진핑 국가 주석이 집권한 뒤 주변국에 인프라를 수출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시행했고, 이어 ‘고속철 굴기(堀起)’를 추진했다. 그 결과2010년 자체 기술로 제작한 최초의 고속철도를 선보일 정도로 기술 수준이 올랐다. 이후 거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의 금융 지원에 힘입어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고속철 해외 수주 행진을 이어 갔다.

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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