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1월 2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2019 금융감독원 시무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1월 2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2019 금융감독원 시무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금융회사의 소비자 보호가 미흡하다며 보험업권을 정조준했다. ‘금융 검찰’ 금융감독원이 보험사들과 ‘즉시연금 과소지급’ 문제를 두고 정면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수년째 보험사로부터 약속된 액수보다 보험금을 덜 받았다는 소비자들의 민원을 모아 보험사에 지급을 명령하고 있지만, 보험사들은 수천억원을 한꺼번에 보험금으로 쓰는 건 경영에 부담이라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보험사들을 술렁이게 했던 임원 인사는 1월 18일 금감원 부원장보 선임이다. 이번 인사는 윤 원장이 지난해 5월 취임 후 처음 실시한 것으로, 이번 인사에서 부원장보 3명을 교체했다. 김동성 전 기획조정국장이 은행 담당, 장준경 전 인적자원개발실장은 공시·조사 담당, 이성재 전 여신금융검사국장은 보험 담당 부원장보로 임명됐다.

특히 주목받는 인물은 보험 담당 이성재 부원장보다. 이 부원장보가 3년 전에도 즉시연금 과소지급 논란과 비슷한 분쟁을 정면돌파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보험업권을 뒤흔든 사건은 ‘자살보험금 사태’다. 보험사들은 약관에 ‘자살에 대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했으나, 보험금 지급 시점이 되자 “자살은 재해가 아니다”라며 보험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자살보험금 담당 부서였던 보험준법검사국 국장이었던 이 부원장보는 보험사들의 극심한 반발 속에도 소비자들에게 덜 준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밀어붙여 백기투항을 받아냈다. 보험사들은 당시 고객들에게 4000억원 이상의 미지급 보험금을 돌려줬다. 이런 이력 탓에 ‘칼잡이’로 불리기도 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윤 원장이 이 부원장보에게 보험 부문을 맡긴 것을 두고 “즉시연금 논란에서 반드시 금감원의 입장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 표현”이라고 했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 부원장보는 현재 유관 부서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며 보험업권 현안을 파악하고 있다. 보고 내용에는 즉시연금 과소지급 건도 포함돼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이 부원장보는 금감원 내에서도 강경파로 불린다”고 말했다.

즉시연금 논란이 무엇이기에 윤 원장이 이런 작심 인사를 낸 것일까. 이 부원장보가 보험업권으로 돌아오도록 만든 즉시연금 과소지급 사태를 요약하면 ‘약관에 명시하지 않고 가입 시 설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보험사가 임의로 연금을 덜 줬다’는 것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들이 소비자들에게 덜 돌려준 금액을 모두 합하면 약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상품은 만기에 낸 보험료와 같은 금액을 돌려주는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이다. 지난 2017년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가 “2012년 가입 때 약속했던 것보다 적은 금액의 연금을 받았다”면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 민원을 내면서 시작됐다. 연금이 약속한 ‘최저보증이율(어느 수준 이상은 보장하겠다고 내걸은 수익률)’에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운용하는 방식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보험을 판매해 벌어진 논쟁이다. 보험사들은 통상적으로 처음 받은 보험료(원금)에서 사업비를 떼어간 후 남은 보험료를 굴려 수익을 낸다. 그런데 즉시연금 상품은 만기 때 처음 떼어갔던 사업비를 더한 금액인 원금(보험금)을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 매달 주던 연금(보험료 운용 수익)의 일부를 떼어 원금 환급용으로 따로 적립했다. 그러다 보니 애당초 약속한 이자율에 비해 더 낮은 금리를 적용해 매달 연금이 지급됐다.

민원인은 “떼어간 사업비를 제외하고 연금 수익을 계산한다는 설명 없이 보험금을 덜 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항의했다. 대부분 보험사들은 즉시연금 상품의 보험 약관에 운용 수익의 일부를 사업비로 공제했다는 내용을 약관에 명시하지 않았다. 금감원 분조위는 이를 근거로 “해당 약관에는 연금지급 시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없었다”면서 민원인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떼는 건 보험의 기본 원리”라면서 “약관에 명시하지 않았더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하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금감원 분조위가 즉시연금을 덜 받은 보험 가입자 5만5000여명을 일괄 구제하라고 하자 반기를 들었다. 졸지에 4300억원을 추가 지급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삼성생명의 지난해 3분기 당기순이익(2976억원)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삼성생명은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면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지 법적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법원으로 공을 넘긴 상황이다. 같은 논란을 겪고 있는 한화생명도 법정의 판결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해외엔 이런 사례 없다”

보험업법 전문가들은 해외에선 즉시연금 과소지급, 자살보험금 미지급 등과 같은 논란이 없다고 지적했다. 애당초 약관에 적힌 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보험사가 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장덕조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자살보험금, 즉시연금 등 보험금 과소·미지급에 대한 해외 사례를 찾아봤는데, 현재까지 발견된 바가 없다”면서 “당연히 세계적 기준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논란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 때도 보험금 지급 거절의 부당함을 알리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는 “보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 약관을 읽었을 때 최저보증이율 이상의 연금을 지급한다는 소비자의 이해가 타당하다”고 했다.

장 원장은 국내 보험사들이 보험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고객들에게 약관의 주요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장 원장은 “보험사는 소비자에게 손해를 야기할 수 있는 사항을 성실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면서 “이런 고객 보호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보험사가 매달 연금에서 일정액을 따로 빼서 만기 시 사업비를 채우기 위해 적립하는 것이 보험의 기본 원리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가입 시점에 고객에게 설명하지 않았다면 결국 보험업법에 명시된 ‘설명의무 위반’이 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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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연금 즉시연금은 고객이 목돈(보험료)을 한번에 내면 보험사가 이를 운용해 얻은 이익금을 매달 연금으로 지급하는 보험 상품이다. 2000년대 초 출시된 상품으로, 시중금리와 연동된 공시이율을 적용해 연금을 줬다. 저금리 기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대 후반에도 은행이자보다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2012년쯤 정부가 비과세 혜택 폐지를 발표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막차를 타겠다며 불티나게 팔렸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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