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올해 법인세율을 21%로 획기적으로 낮추면서 “이 법안은 중소기업을 위한 감세안”이라고 말했다. 사진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올해 법인세율을 21%로 획기적으로 낮추면서 “이 법안은 중소기업을 위한 감세안”이라고 말했다. 사진 AP연합뉴스

애플·아마존·넷플릭스 같은 대형 기술주들이 미 증시 상승을 주도하는 가운데 소형주들이 조용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소형주 지수인 ‘러셀(Russell) 2000’ 지수는 올해 들어 9월 15일(현지시각) 현재까지 12%가 올랐다. 러셀 2000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을 시가총액 기준으로 줄 세워 상위 3000개 종목 중 1등부터 1000등까지를 제외한 나머지 2000개 종목으로 구성된 지수다. 같은 기간 대형주로 구성된 S&P 500 지수 상승률이 3.3%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무려 8.7%포인트나 웃돈 것이다.

러셀 2000 지수를 추종하는 미 ETF(상장지수펀드)도 연초 대비 10~30%(8월 말 기준) 수준 상승했다. 러셀 2000 지수에 포함된 종목을 골고루 담은 대표적인 ETF 상품인 ‘아이셰어즈 러셀 2000(iShares Russell 2000) ETF’와 ‘뱅가드 러셀 2000(Vanguard Russell 2000) ETF’는 전체 평균 수준인 14%가량 올랐다.

소형주 강세장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주가 상승의 기본 재료가 되는 실적이 매우 좋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정보 분석 기업 팩트셋(FactSet)에 따르면, 지난 2분기(4~6월) 러셀 2000 소속 소형주들의 순이익은 전 분기보다 무려 48%나 급증했다. 이 기간 S&P 500 기업들의 순이익이 25% 늘어난 것과 비교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국내 증권사들도 미국의 소형주 강세 흐름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은 글로벌 운용사인 미국의 레그 메이슨과 전략적업무제휴(MOU)를 하고 미국 소형주에 투자하는 ‘하이로이스미국스몰캡펀드’를 출시했다. 이 상품이 주로 투자하는 ‘로이스오퍼튜니티펀드’는 미국 소형주 전문 투자 펀드로, 시가총액 30억달러 미만의 미국 회사들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에 투자한다. 문성필 한국투자증권 상품전략본부장은 “국내 고객들은 중국·베트남 등 변동성이 큰 국가의 주식을 많이 갖고 있지만 최근 상승세인 미국 투자는 주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글로벌 성장을 이끄는 것은 미국 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원톱인 미국 경제는 더 강해지고 있으며, 신흥국이 흔들리고 있는 만큼 이런 글로벌 양극화 현상은 심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미국 경제는 유례 없는 호황을 겪고 있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 정책을 썼고, 그것도 모자라 시중에 돌아다니는 채권을 매입해 10년간 돈을 풀었다. 그간의 경기부양 효과가 최근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 상무부는 올해 2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4.1%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2014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여기에 실업률도 완전 고용 수준인 4% 미만을 기록하며 소비심리가 크게 개선, 기업들의 실적이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 경제는 소비가 70~80%로 주축을 이루고 있다.


관광객들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근처에 있는 황소상 앞에 몰려있다. 미국 경제가 유례 없는 호황을 보이면서 미국 증시, 특히 소형주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관광객들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근처에 있는 황소상 앞에 몰려있다. 미국 경제가 유례 없는 호황을 보이면서 미국 증시, 특히 소형주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글로벌 리스크에도 끄덕없어

경제 호황으로 인해 미국 증시가 매우 좋다는 것인데, 대형주보다 소형주가 더 오르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금리 인상, 미·중 무역전쟁이 되레 소형주에 반사이익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키움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 금리 인상은 달러화 강세로 이어져 원자재 수입 부담을 줄여주는데, 이러한 비용 감소는 특히나 중소기업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져 주가를 밀어올린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무역 의존성이 낮고 주로 자국 내 매출 비중이 큰 것도 소형주가 무역전쟁 리스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이유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이 획기적인 법인세 감면 정책을 내놓으며 기업들에 혜택을 주고 있는 것 또한 소형주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대폭 낮추면서 이 법안이 ‘중소기업을 위한 감세안’이라고 주장했다. 세금이 줄어들면 중소기업의 투자 환경이 더 나아질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변준호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의 법인세 수준은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보다도 낮아졌다”면서 “이를 통해 기업 환경이 파격적으로 좋아졌기 때문에 미국 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아진 것이지만, 특히 규모가 작은 소형주에 이런 요소들이 더 크고 탄력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국내 증시서도 나 홀로 오르는 ‘소형주’

국내 증시에서도 대형주보다 중소형주 주가가 더 많이 오르는 ‘역전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 실적이 뚜렷하게 입증되지 않은 바이오주나 남북 경제협력 테마주가 중소형주 강세장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투자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9월 19일까지 소형주는 9.2% 올랐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가 6.4% 하락하며 약세를 보였고 대형주(-8.6%)와 중형주(-1.1%)가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거래소는 2월 말까지의 시가총액 기준으로 상위 100위까지 기업은 대형주, 101~300위 기업은 중형주, 그 외 기업은 소형주로 각각 분류해 매년 3월 지수를 변경한다.

소형주 강세를 주도했던 상승률 상위 종목에는 동성제약(633.3%), 부산산업(568.9%), 필룩스(460.3%), 대호에이엘(367.2%), 인스코비(335.1%) 등이 이름을 올렸다. 부산산업과 대호에이엘 등은 남북 경협주, 필룩스, 인스코비 등은 제약·바이오 사업에 뛰어든 것이 각각 테마로 작용했다.

국내 증시를 주도해 왔던 반도체 등 IT(정보기술) 관련주들이 주춤하면서 중소형주의 약진은 두드러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신흥국 경제 위기로 달러화가 강세를 이어 가면서 외국인 자금이 주요 국내 수출 기업에서 이탈하고 있다. 이 와중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개인 투자자들이 소위 ‘한방’을 노리고 등락률이 높은 작은 기업들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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