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최용석 신일그룹 대표가 7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최용석 신일그룹 대표가 7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7월 26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80여 명의 취재진은 해저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겠다고 밝힌 신일그룹 관계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일그룹은 7월 17일 돈스코이호에 150조원 규모의 금괴가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주장에 근거가 없고 회사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용석 신일해양기술(전 신일그룹) 대표는 “돈스코이호에 150조원 규모의 금괴가 있다는 이야기는 과장”이라면서 “현재 금 시세로 10조원가량일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논란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 최 대표는 도망치듯 회견장을 빠져나가 기자들과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보물선을 둘러싼 시끄러운 진실공방에 널뛴 쪽은 코스닥 시장이었다. 신일그룹의 전 대표인 류상미씨가 지분 인수를 추진 중인 코스닥 상장사 ‘제일제강’의 주가는 보물선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당일인 7월 17일에 상한가(전날보다 30% 상승)로 장을 마쳤다. 다음 날(7월 18일)에도 제일제강의 주가는 ‘보물선 테마주’로 입소문을 타면서 거래량이 폭증했다. 신일그룹이 보물선을 발견하면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희망도 잠시, 7월 18일 장 초반 상한가를 찍었던 제일제강은 같은 날 2시 40분쯤 “신일그룹과 최대주주 관계가 아니며, 보물선 사업과는 일절 관계가 없음을 알려 드린다”고 공시했다. 이 순간 주가는 순식간에 11% 빠지면서 곤두박질쳤고 6%대 하락으로 장을 마쳤다. 이후 7월 27일, 류씨가 지분 인수를 위한 중도금을 납입하지 못했다는 공시가 이어지면서 주가는 더 떨어졌다. 

보물선 테마는 코스닥 시장에 과거에도 등장했던 부실한 재료였지만 이번에도 시장은 달아올랐다.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보물선 테마주의 원류를 2000년대 초반 ‘동아건설’로 꼽는다. 동아건설은 2000년 12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17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당시 동아건설의 주장은 현재 신일그룹이 내세우던 논리와 비슷했다.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침몰선을 발견했다고 밝혀 동아건설의 주가는 급등했다. 이 기간 동아건설은 법정관리 상태였지만, 주가는 보물선 인양에 대한 기대감으로 300원대에서 3000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이후 인양 가능성이 작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경영이 악화된 동아건설은 상장 폐지됐다. 동아건설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됐다.

17년 전 기대를 한몸에 받다가 순식간에 무너졌던 보물선 테마주는 어떻게 다시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까. 전문가들은 그 배경으로 ‘국내 증시 투자자들의 투기적인 성향’을 꼽았다. 주원 흥국증권 사장은 “국내 증시, 특히 코스닥 투자자들은 ‘오늘 사서 내일 털고 나온다’는 인식이 강해 상식적인 근거가 없더라도 테마주에 불나방처럼 몰려든다”면서 “주가를 밀어올린 소식의 진위와 관계없이 거래자들끼리 ‘폭탄 돌리기’를 하는데, 이렇게 해서 일반 투자자들이 돈을 번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신일그룹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적당한 때 주식을 팔고 시세 차익을 낼 수만 있으면 된다는 심리”라고 말했다. 

코스닥 시장은 코스피 시장에 비해 단기 거래가 더 활발히 일어난다. 한국거래소가 지난해 하루 사이에 주식을 매매해 차익을 남기는 ‘데이트레이딩(day trading)’의 양상을 분석한 결과, 코스닥 시장에서 가격이 낮은 주식 그리고 개인 투자자 위주로 나타났다. 코스닥 시장의 거래량에서 데이트레이딩의 비율은 51.57%로, 코스닥 투자자 2명 중 1명이 초단타 매매를 하고 있었다. 코스피 시장(40.85%)에 비해 코스닥 시장의 데이트레이딩 거래량 비율이 약 10%포인트 높았다. 

주 사장은 이번에 보물선 테마주로 몰린 투자자들의 행동이 “상장 폐지되는 종목의 정리매매 기간에도 자금을 넣으면서 ‘한탕’을 노리는 심리와 뿌리가 같다”고 분석했다. 정리매매는 상장 폐지 전 주주들이 주식을 정리할 수 있는 기간으로, 투자자들이 주식 보유분을 현금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하지만 일부 개미투자자들은 가격제한폭이 없어 변동성이 커지는 정리매매 기간에 초단타 차익 실현을 노리고 뛰어든다.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 폐지된 프리젠과 코스피 시장의 한진해운은 정리매매 기간(7거래일)에 개미들의 ‘노름판’으로 전락했다. 두 종목은 상장 폐지 마지막 날까지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했다. 프리젠은 정리매매 첫날 920원이었던 주가가 5.5배 올라 5100원으로 장을 마감했지만, 정리매매 마지막 날 종가는 451원까지 떨어졌다. 한진해운의 주가도 정리매매 첫날 780원으로 시작해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마지막 날 12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한탕을 노렸던 투자자들은 돈을 날렸다. 


상장 폐지 규정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허황된 테마주 투자로 인한 손실을 막을 가장 확실한 대안은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도박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대부분 테마주는 스토리텔링에 지나지 않고, 실현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면서 “주식 투자를 할 때는 그 회사의 주인이 되겠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대부분 투자자들은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내고 싶어서 테마주에 대한 사실 확인 없이 현혹된다”고 지적했다.

리 대표는 “가령 한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국내 증시에서는 해당 회사의 주가가 오르는데, 미국에서는 CEO가 회사 경영에 소홀해지는 유인이 되므로 이를 악재로 본다”면서 “경제 외적인 요소에 크게 중요성을 두는 투자 문화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장 폐지 규정을 강화해 주가 조작에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상장 가치가 없는 기업들을 증시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면서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기업도 성장하고 쇠퇴하는 법인데, 현재는 기업이 쪼그라들었는데도 상장 프리미엄을 누리면서 계속 증시에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장 기득권을 누리는 부실기업들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주가 조작 세력에 이용될 수 있다고 봤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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