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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9월 24일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파생상품은 금융 대량살상무기(WMD)와 같다.”

“파생상품은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이다.”

누가 한 말일까? 좌파 경제학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했다면 크게 잘못 짚었다. 위는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한 말이고, 아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말이다.

금융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이젠 모두 알고 있다. 2008년 세계를 휩쓴 글로벌 금융위기는 얼마나 위험한지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 때문에 발생했다. 거대한 금융회사가 파산했고 무수한 사람들이 일자리와 집을 잃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유지하고 있는 등 세계는 아직 금융위기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위험을 미리 내다본 버핏이 금융위기 5년 전인 2003년에 이미 ‘대량살상무기’에 비유하며 경고했지만 소용없었다.

버핏의 경고 이후 15년 만에 나온 교황의 ‘시한폭탄’ 발언은 5월 17일 교황청이 발표한 ‘경제와 금융의 문제–현재 경제 금융 시스템의 일부 측면에 관한 윤리적 분별력에 대한 고찰’이라는 글에 실려 있다. 교황청 전인적 인간발전촉진부서와 신앙교리성이 공동으로 발표한 문헌이다. 4개의 장, 34개 항목으로 나뉜 긴 글이다. 주석까지 합치면 분량은 A4용지로 21쪽에 달하고, 이 글을 요약한 보도자료만 A4용지 5쪽이다.

글은 인류의 삶에 대한 철학적인 내용까지 다뤘다.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모든 경제 행위나 관행을 비판했다. 특히 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이나 타인의 불평등을 대가로 하는 이윤 추구를 거론했다.

‘시한폭탄’이란 단어는 26항에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파생상품은) 조만간 터질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이라면서 “신용부도스왑(CDS·Credit Default Swap) 시장 규모는 세계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거의 맞먹을 정도로 컸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적절한 제한이 없는 이 같은 (파생상품) 계약 확산이 다른 사람의 실패에 돈을 거는 것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는 윤리적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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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한 CDS는 부도가 발생해 채권이나 대출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대비한 상품이다. 부도 위험만 따로 떼어내 사고팔 수 있게 만든 신용 파생상품이다. 예를 들어 A은행이 B기업의 회사채를 인수했을 때, B기업이 파산하면 A은행은 채권에 투자한 원금을 회수할 수 없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A은행은 C금융회사에 정기적으로 수수료를 지급하고, B기업이 파산할 경우 C금융회사로부터 투자 원금을 받도록 한 상품이 CDS다. 보험의 성격이 있다. 채무자는 자금을 조달하기 쉽고, 채권자는 일종의 보험료를 내고 채무불이행 위험을 줄인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부도가 나면 금융회사가 큰 손실을 입고, 은행도 연쇄적으로 부실화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의 한 원인이 바로 이 CDS다.

교황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약탈적이고 투기적인 성향을 중화시키는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었지만, 월스트리트가 ‘근시안적인 이기주의’로 회귀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 강화, 차세대 기업 지도자에 대한 양질의 대학 교육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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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월스트리트가 근시안적인 이기주의로 회귀했다고 비판했다. 사진 블룸버그


“파생상품 시장 성숙해 위험 적다” 반론도

그러나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교황의 발언이 지나친 우려라고 비판했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스티븐 갠덜은 ‘CDS에 대한 교황의 불만은 전체 금융시장에 대한 불만이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교황의 발언을 자세히 따져 분석했다. “교황은 파생상품을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하면서 ‘조만간(sooner or later) 터질 것’이라고 했지, 정확히 지금이 터질 시점(top)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실제로 CDS 계약 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7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갠덜은 “교황은 CDS 계약을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CDS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도박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갠덜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의 투자는 도박에 가깝다. 교황이 어떤 금융상품은 도덕적이고 어떤 금융상품은 비도덕적이라고 선을 긋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증권시장에 상장하면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지만 그 뒤 일상적인 주식 거래는 전혀 그런 기능이 없다. 단기로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자는 파생상품과 전혀 관련 없지만 ‘도덕적’인 업종의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빈민의 자활과 창업을 돕는 ‘마이크로 크레디트’도 때로는 약탈의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인도의 시골 지역에서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구가 빈민에게 대출해주는 금리는 60~120%에 달한다고 전했다.

게다가 CDS라는 도구를 이용하면 국가와 기업이 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장이 과거와 달리 성숙해져 이제는 도박이 아닌, 정말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CDS가 사용된다.


plus point

교황, 초단타 매매도 비판

지난 5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금융산업에 대해 “오늘날 금융산업이 이기심과 권력 남용으로 공동체를 해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제, 금융 분야의 윤리적 기반을 마련해야만 인간이 통합적이고 실질적인 풍요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금융산업에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교황은 CDS 이외에 ‘나쁜 금융 관행’으로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매우 짧은 시간에 주식을 거래하는 ‘초단타 매매(HFT·High Frequency Trading)’를 꼽았다. “초단타 매매를 하는 집단이 지나치게 많은 자본을 축적해 실물 경제에서 돈이 돌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교황은 ‘과도한 이자율 적용’도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 체제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라고 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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