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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일본 도쿄에서 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월마트가 인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플립카트(Flipkart)’를 인수했다. 5월 9일 블룸버그통신, CNBC 등에 따르면 월마트는 플립카트 지분 77%를 160억달러(약 17조1000억원)에 사들였다. 아마존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는 월마트는 최근 해외 전자상거래 업체에 투자하며 미국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번 투자로 단숨에 인도 전자상거래 1위 업체가 됐다.

그런데 월마트의 이번 투자에서 진짜 승자는 따로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매체인 ‘리코드’가 지목한 진짜 승자 중 하나가 바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다. 비전펀드는 지난해 8월 플립카트에 25억달러를 투자했는데, 이번에 월마트에 40억달러를 받고 지분을 팔았다. 불과 9개월 만에 60%의 수익률을 낸 것이다. 투자 대상 스타트업을 선정하는 비전펀드의 탁월한 안목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비전펀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만든 벤처 투자펀드다. 지난해 5월 930억달러 규모로 출범해 불과 1년 만에 세계 벤처 투자의 흐름을 바꾸는 ‘큰손’이 됐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450억달러, 아랍에미리트(UAE) 무바달라개발공사가 150억달러를  댔다. 소프트뱅크가 직접 댄 자금은 280억달러 정도다. 현재는 처음 목표였던 1000억달러 펀딩에 성공한 상태다.

비전펀드는 출범 직후 전 세계 스타트업에 활발하게 투자했다. 영국 반도체 업체인 ARM과 미국 반도체 업체인 엔비디아에 각각 82억달러, 50억달러를 투자했고, 공유 사무실 스타트업인 위워크에도 44억달러를 투자했다. 지난해 비전펀드가 투자한 돈은 300억달러 정도로 미국 벤처캐피털(VC) 전체가 조달한 330억달러에 맞먹는다. 비전펀드가 조성한 1000억달러의 자금도 2016년 전 세계 벤처캐피털 투자액(640억달러)을 훌쩍 뛰어넘는다.

최근 공개된 소프트뱅크의 2017~2018 회계연도 4분기(올해 1~3월) 실적에서도 비전펀드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0일 발표된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지난 분기에 매출액 2조3475억엔, 영업이익 1550억엔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2%, 영업이익은 60.3% 증가한 규모다. 특히 영업이익은 시장 컨센서스(증권사들의 전망치)인 1374억엔을 크게 웃돌았다. 2017~2018 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 전체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27.1% 증가한 1조3038억엔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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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뱅크 영업이익 급증에 큰 기여를 한 게 비전펀드다. 소프트뱅크의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2017~2018 회계연도 전체 영업이익에서 비전펀드가 기여한 금액이 3030억엔(약 3조원)에 달했다. 전체 영업이익의 4분의 1 정도가 비전펀드에서 창출된 것이다.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미국 4위 이동통신사인 스프린트에서 발생한 영업이익 2793억엔보다 비전펀드의 영업이익 기여도가 높다. 지난 분기에는 비전펀드 이익이 666억엔에 달해 전체 영업이익의 40% 정도를 차지했다.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에서 발생한 영업이익의 대부분이 엔비디아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플립카트 지분 매각으로 얻은 이익은 이번 실적 보고서에 반영되지 않았다. 비전펀드가 투자한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아직 이익을 내지 않는 투자 단계인데도 벌써부터 수조원의 이익을 내면서 비전펀드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커지고 있다.

김재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비전펀드는 투자수익뿐만 아니라 투자 대상 기업들 간의 장기적인 협력을 통한 시너지 창출 가능성도 크다”고 평가했다.

비전펀드가 빠르게 세력을 넓히면서 월스트리트나 실리콘밸리의 기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비전펀드가 될성부른 스타트업에 마구잡이로 돈을 뿌리면서 전체 투자 생태계에 오히려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 생태계의 메기 ‘비전펀드’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최신호 표제가 ‘1000억달러짜리 내기’였다. 손 사장이 만든 1000억달러 규모의 비전펀드가 실리콘밸리를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 분석한 기사가 실려 있다. 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는 “스타트업들은 비전펀드에서 받은 자금을 마케팅 경쟁에 투입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스타트업 업계 전반적인 운영 비용이 높아지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제 매체인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달 기사에서 비전펀드의 과도한 투자가 IT 스타트업 업계에 거품을 만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인 벤 컬리는 지난 2월 한 콘퍼런스에서 “우리 모두가 지나치게 많은 자금을 쏟아붓는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전펀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1000억달러 가운데 44%가 부채로 구성된 비전펀드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무바달라개발공사는 비전펀드에 자금을 댈 때, 일부만 출자하고 나머지는 회사채에 투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 투자자는 비전펀드가 운용되는 동안 연 7%의 확정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부채에서 생기는 이자 비용 때문에 비전펀드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에도 손 사장은 거침없이 전진하고 있다. 손 사장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2~3년마다 제2, 제3의 비전펀드를 만들어 규모를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비전펀드에 몰려드는 큰손들

5월 10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다임러그룹이 비전펀드에 출자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다임러그룹은 메르세데스-벤츠를 보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디디추싱(중국), 올라(인도), 그랩(동남아시아), 99(브라질) 같은 차량 공유 업체에 투자하고 있는데, 투자 지분을 비전펀드로 옮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와중에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인 다임러그룹이 비전펀드에 참여하면서 비전펀드의 투자 영역이 기존의 IT 중심에서 제조, 모빌리티 분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외에도 여러 기업이 최근 비전펀드의 투자자로 새로 합류했다. 일본 3대 은행인 미쓰비시, 미즈호, 미쓰이스미토모를 비롯해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CEO)와 바레인 국부펀드도 비전펀드에 힘을 보탰다.

비전펀드는 지난해 5월 출범 당시 930억달러를 모았는데, 최근 새로 합류한 투자자들 덕분에 처음 목표였던 1000억달러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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