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로버트 실러 교수는 미국 대도시 주택 가격 추이를 보여주는 케이스·실러지수를 개발한 행동경제학자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최근 내러티브(이야기를 서술하고 구성해나가는 것)와 경제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있는 그는 이번 칼럼에서 트럼프의 정치·경제적 이야기 구성법(내러티브)과 미국 경제 리세션(경기 침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로 실러 교수는 올 초부터 꾸준히 내러티브가 경제를 이끄는 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1920년 대공황, 1930년 대공황,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모두 내러티브가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몇 가지 전조 증상으로 사람들의 심리가 움직였고, 경제도 그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7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준금리 인하를 투자자들이 리세션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리세션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로버트 J 실러(Robert J. Shiller) 예일대 교수, 미시간대 경제학 석사, MIT 경제학 박사,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로버트 J 실러(Robert J. Shiller)
예일대 교수, 미시간대 경제학 석사, MIT 경제학 박사,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있었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미국에서 열릴 내년 회담 장소로 마이애미에 있는 자신의 골프 리조트, 도럴 컨트리클럽을 추천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리조트를 “플로리다에서 가장 큰 연회실을 갖춘 엄청난 건물”이라고 묘사했다. 이게 바로 반세기 가까이 계속돼온 ① 트럼프식(式) 내러티브의 대표적인 사례다.

구글 N그램과 같은 디지털 뉴스 검색창에 도널드 트럼프를 쳐보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의 이름이 얼마나 많이 뉴스에 등장했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구글 N그램이 제공하는 그래프를 보면) 그의 내러티브는 전염성을 갖고 천천히,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퍼져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트럼프에 대한 평가, 이야기들은 믿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천재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일평생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파하며 이를 지속해왔다는 점이다. 자신의 주변을 아름다운 여성들로 둘러싸는 등 화려함을 드러내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이런 전략을 1983년에도 고수하고 있었다.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도널드 트럼프의 제국과 그의 자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는 세계 최고 부자이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뉴욕시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트럼프의 내러티브 전략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그는 프로 레슬링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 레슬링은 완전히 ‘꾸며진’ 무대를 사실처럼 믿고 싶어 하는 군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상한’ 사람들이 만든 오락의 한 형태다.

트럼프는 자신의 사업에 프로 레슬링의 경기법인 ‘케이페이브(프로 레슬링에서 선수들이 싸움을 진짜인 것처럼 연기하는 것)’를 적용했고, 이를 효과적으로 쓰는 데 정통했다. 실제로 2007년에는 WWE 빈스 맥마흔 회장과 경기장에서 ② ‘가짜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2004년 리얼리티 TV쇼인 ‘어프렌티스’의 사회자를 맡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그는 즉시 대중적으로 유명해질 기회를 잡아 이야기를 발전시켰고, 곧 거친 말발로 유명해졌다. 트럼프는 패자들에게 자신의 유행어 “넌 해고야!(You’re fired!)”로 일갈하는 한편 출연진 모두에게는 약간의 따뜻함을 보여주곤 했다.

이런 식의 전염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트럼프는 지금도 TV쇼 속 인물로 살고 있다. 2016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는 미국을 쇠퇴하는 나라로 묘사한 뒤 “나 혼자만이 이것을 고칠 수 있다(I alone can fix it)”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고위급 인사들을 빠른 속도로 해임했고, 그 결과 트럼프 행정부에는 독립적 위상을 가진 인물이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이는 미국 정부에 새로운 형태의 ‘재량’을 주는 계기가 됐다. 결국 미국과 세계 경제의 연관성을 감안할 때 트럼프의 ‘변덕’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독창적인 방법은 아니다. 트럼프는 수천 년 전부터 반복되며 전해 내려오는 내러티브에 변화를 준 것 같다. 고대의 냉소주의자인 ③ 사모사타의 루시안은 2세기쯤 웅변술과 관련해 쓴 책 ‘대중 연설 교수’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에서 내러티브를 이용해 권력을 얻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생활에서는 무슨 일이든 다 하라. 주사위를 던지고, 술을 많이 마시고, 높은 곳에 살면서 첩을 두어라. 그리고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모든 행사에서 그렇다고 자랑하면서 여성의 필체로 쓴 쪽지를 모두에게 보여줘라. 우아함을 목표로 삼고, 여성이 자신에게 헌신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라. 이를 통해 대중은 당신에 대한 관점을 정할 것이다.”

루시안에게 내러티브란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실체가 아니라 일관성이기도 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무지, 두 번째는 무모함이다. 이를 통해 뻔뻔함과 파렴치함을 갖춰라. 겸손함, 존경심, 자제심 그리고 수치심은 집에 남겨두어라. 이것들은 쓸모가 없고 손에 잡히는 일에 방해가 된다… 독단적이면서 야만적인 행위를 한다면 파렴치함이 유일한 치유책이 되도록 하라.”

루시안은 수명이 길어진 지금처럼 50년 넘게 내러티브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내러티브가 영원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 끝은 ④ 리세션의 시작과 함께할 가능성이 크다.

경기 침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했던 이야기를 철회하고 재평가하기 시작한다. 소비자들은 신차 구입이나 주택 리모델링, 값비싼 휴가 등 미룰 수 있는 구매를 피하면서 지출을 줄일 것이다. 기업들은 새 공장 건설이나 장비 구입 등에 돈을 덜 쓰고, 채용을 연기할 것이다. 이런 행동들은 설명할 필요 없는, 매우 직감적이면서도 감정적인 결정이다.

지금까지 트럼프는 화려한 생활 방식으로 많은 소비자와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줬다. 미국 경제는 2009년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직을 인수한 이후 예외적인 강세를 보였다. 대공황으로부터 회복의 연장선이었다.

특히 경제는 1850년 이후 최장기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나는 이런 식의 내러티브를 미국 경제 강세의 원인으로 본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때 자신들이 영감받았던 사람들을 어떤 사건을 계기로 밀어내곤 한다. 2005년 ⑤ 트럼프대학 학생들의 반응을 떠올리면 쉽다. 학생들은 여러 건의 소송을 걸었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아니면 1954년 ⑥ 조 매카시 상원의원의 사례도 있다. 그는 반공주의로 떴지만, 그 정도가 과도했던 탓에 의심을 사 갑작스럽게 정치적 죽음을 맞았다.

트럼프의 대통령직 운영 방식에는 너무 많은 무작위성이 존재한다. 그는 분명 그동안 잘해왔던 내러티브 전략을 고수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심각한 경기 침체는 이 전략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경제 대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대중은 그의 이상과 자기 것들을 밀어내는 전염성 있는 새로운 문제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Tip

실러 교수는 트럼프의 사업은 물론 국정 운영 방식이 내러티브 전략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다. 억만장자 사업가의 모습이나 각종 사생활 추문 등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뻔뻔하고 터프한 스타일로 내세우면서 변덕스럽고 터프한 정책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당시 두 사람은 ‘억만장자의 대결’이라는 대회를 열었다. 각자 뽑은 레슬러들을 대결시켜 진 사람이 머리를 깎는 내기였다. 선수가 심판을 메다꽂고 판정이 번복되는 시합장에 트럼프가 등장했고, 그는 링 밖에 서 있던 맥마흔을 쓰러뜨린 뒤 때리는 시늉을 했다. 결국 이 대회는 트럼프가 링 위에서 맥마흔의 머리를 바리캉으로 밀어버리고 환호하는 쇼로 끝났다.

2세기 시리아에 살던 수사학자.

미국도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둔화해 수년 안에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상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이를 리세션이라고 한다. 특히 미국은 최근(8월 14일)까지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2년물 금리보다 낮아진 것으로, 대표적인 리세션 전조 증상이다.

트럼프가 지분 93%를 투자한 트럼프대학은 2004년부터 “트럼프의 부동산 투자 비법을 알려준다”며 학생들을 모집했다. 학생들은 트럼프의 성공 비결을 배우기 위해 연간 3만5000달러(약 4100만원)의 수업료를 냈지만, 커리큘럼은 부실했고 정규 대학 인가도 받지 않은 부동산 전문 교육 학원에 불과했다. 이 대학은 2010년 폐교했고, 학교는 소송에 휩싸였다. 결국 트럼프는 당선인이 된 후 합의금 2500만달러를 내고 원고 측과 합의했다.

1950~54년에 미국 전역에는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이 불었다. 이를 ‘매카시즘’이라고 부르는데,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의 이름을 딴 용어다. 매카시가 공화당 상원의원에 당선됐던 당시 미국에서는 공산당의 중국 건국과 소련의 원폭 실험 등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심이 극대화돼 있는 상황이었다. 매카시는 이를 이용해 극렬 반공활동을 벌여 거물급 정치인이 됐다. 그의 반공 마녀사냥은 군부를 적으로 돌리면서 끝이 났다. 군 안에 소련 간첩이 있다는 주장이었는데, 이는 정치권 내부의 반발을 몰고 왔다.

로버트 J 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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