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혹시 문재인 정부는 예외일까 싶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포스코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임기가 남아 있는 회장들이 자진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임기가 2년이나 남아 있는 권오준 회장이 지난 4월 18일 중도 사퇴를 발표했다. 포스코는 지난 2000년 민영화되면서 정부는 주식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4월 1일 열린 포스코 50주년 기념식에서 “또 다른 성공 신화를 만들겠다”던 권 회장이 이렇게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한 포스코 임직원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50주년 기념식을 위해 엠블럼을 제작한다고 하자 “100주년 엠블럼도 만들라”고 지시했다. 50년을 기념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100년을 향해 가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념식을 하고 한 달도 안 돼 물러난다고 했다. 정부는 작년 6월 문재인 대통령 첫 방미(訪美) 당시 대규모 경제사절단에서 권 회장을 제외시켰다. 국내 6위 대기업, 국내 최대 철강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명단에서 빠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뒤 인도네시아·중국·베트남 등 대통령 해외 순방단에서 단 한 번도 권 회장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국내 기업인 가운데 이걸 예사롭게 여길 사람은 없다. 다들 정부의 퇴진 압박이라고 느꼈다.

포스코는 외국인 지분이 57%에 달하는데도 ‘국민기업’이라고 불린다. 포항제철의 기억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이 청사진을 만든 포항제철은 경제 개발을 상징하는 기업이다. 세계은행 등에서 “한국은 아직 제철소 지을 수준이 못 된다”고 지원을 끊어 자금난으로 무산될 뻔했다. 그래서 대일(對日)청구권 자금을 포항제철 1기 연산 103만t 조강 체제 완공의 종잣돈으로 삼았다. 박태준 전 회장은 그 돈을 ‘조상의 혈세(피의 대가)’라고 불렀다. “포항제철이 실패하면 조상에게, 국가와 민족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영일만에 빠져죽어야 한다”고 했다. 포항제철은 동양의 작고 가난한 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일어서는 첫걸음이었다. 그래서 국민기업이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셈이다.


포스코를 국영기업으로 보는 정부

1988년 4월 ‘국민주 1호’가 된 것도 포스코가 국민기업으로 불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당시 정부는 우량 공기업 주식을 국민들에게 매각해 주식 투자 인구를 늘리고, 국민들의 금융 자산 형성에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청약 열기가 뜨거웠다. 정부 지분 69% 가운데 34%인 3128만주를 322만명에게 팔았다.

이렇게 ‘국민기업’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포스코는 이게 족쇄이자 굴레가 됐다. 국민기업이라 정부나 정치권이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이다. 이런 논리로 CEO 교체 등 정부 개입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국민기업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갖고 있긴 하지만, 포스코는 엄연한 민간 기업이다. 그런데 새로 정권을 잡는 정부마다 이걸 ‘국영(國營) 기업’으로 읽는 모양이다.

지난 시절 ‘국민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던 기업이 또 있다. 외환위기 당시 기아자동차를 국민기업이라고 불렀다. 1997년 6월 부도 위기에 몰렸는데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구하면서 버텼다. 당시 기아차 경영진과 노조는 “국민기업 기아차를 살려야 한다”고 여론몰이를 하면서 구조조정은 뒷전으로 미뤘다가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기아차 사태는 외환위기가 닥치기 불과 반년 전, 가뜩이나 먹구름이 몰려오던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크게 깎아내렸다.

이제 포스코에서 국민기업이라는 이름과 간판은 모두 떼야 한다. ‘국가대표 기업’이라고 하면 된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두 번 다시 국민기업이라는 핑계로 정부가 포스코 회장실을 기웃거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임기가 남은 CEO를 ‘우리 사람’ 아니라고 나가라고 눈치 주는 정부는 이 정부가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이진석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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