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이 ‘기습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연구·개발(R&D) 회사의 분할을 결정했고 산업은행은 ‘뒤통수를 맞았다’고 비판받고 있다. 노조는 이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이미 한국GM에 공적자금 지원을 결정했을 때부터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우선 이 사태에서 산업은행에 의한 공적자금 투입과 구조조정을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에 미국의 GM을 비롯한 자동차 회사들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런데 그 지원금을 받기 위해 자동차 회사의 경영자들은 의회 청문회에 불려가서 자동차 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해 아주 길고 곤혹스러운 답변을 해야 했다. 특히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조처를 약속한 후에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공적자금도 투자금이다. 큰돈을 투자하는 투자자는 당연히 투자금에 대한 회수 확신이 있어야 하고, 그 투자금을 보호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투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을 높이려면, 해당 회사가 구조조정에 성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만 한다. 미국 정부가 과거 GM 등에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 조치를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투자금의 보호수단도 마련한다. 과반 지분이 안 될 경우 이사회의 구성이나 자산의 분할 등 주요한 의사결정에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계약을 맺는 것 등이 바로 그런 수단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면 산업은행은 이런 조건들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자금을 공여한 것이 분명하다. 정치권이 먼저 구제금융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산업은행이 계약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예견된 사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근본적 해법 도외시하고 자금 투입

R&D 기능의 분사를 바로 철수 준비로 단정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글로벌 회사들이 연구개발회사와 생산법인을 분리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다. R&D는 글로벌 통합이 중요하고, 생산은 현지 대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GM이 한국 철수를 결정하려 할 때 법인이 하나든, 둘이든 상관없다. 막대한 투자가 이뤄졌더라도 돈벌이가 안 될 때 철수는 불가피하다. 철수를 막을 방법은 판매를 늘리고 생산성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 이 근본적 해법을 도외시하고 GM을 의심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기업을 바라보는 인식 수준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부족한가를 보여준다.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는 한국GM이 그만큼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경고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비자의 신뢰가 낮아지는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망하고 철수할지도 모르는 회사의 제품을 소비자가 선호할 리 없다. 따라서 판매는 더 부진해지고 있다. 당연히 이를 타개할 전사적 노력이 전개돼도 극복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노조는 GM의 철수를 독려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법인 분리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경제성이 없는 해외 법인을 노조의 힘이나 정치적 압력으로 잔류하게 할 수는 없다.

더 한심한 것은 산업은행의 대응이다. 산업은행은 구제금융 지원 과정에서 법인 분할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수수방관했는가 하면,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가적 반대가 있으면’ 투자금의 잔액을 철회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아마도 국회 추궁과 국민적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정치적 답변일 것이다. 당연히 그런 일이 발생하면 GM은 한국 정부나 산업은행을 제소할 것이다. 외환은행을 인수 후 매각한 론스타를 검찰이 기소했다가 결국은 패소하고 막대한 국고 손실을 가져온 과거 교훈을 잊은 것이다.

산업은행은 9000억원 가까운 투자금의 보호를 위해 어떤 안전장치를 계약에 명시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에서와 마찬가지로 산업은행에 의한 구조조정은 국가 경제에 큰 손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경고하고 있다.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노동개혁과 민간 금융회사들이 시장 논리로 구조조정을 주도할 수 있게 하는 금융개혁이 절실한 이유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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