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BC(before covid-19·코로나19 이전)와 AC(after covid-19·코로나19 이후)가 유행어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세상은 우리가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 즉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을 수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한다.

최근 미국 터프츠대는 각국이 원격 근무에 얼마나 잘 준비돼 있는가를 그 나라 경제의 디지털 플랫폼화 정도와 디지털 거래의 수요가 급증했을 때 그것을 잘 처리할 안정된 디지털 기반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서 발표했다.

한국은 디지털 플랫폼화와 안정성 면에서 선두 국가에 해당하는 반면 일본은 한국보다 처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일본이 최근 코로나19 감염자가 크게 늘면서 인구당 사망자 수에서 한국을 추월한 것은 아베 신조 총리의 정책 실패도 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국만큼 하지 못하는 문화적, 기술적 취약성도 거론된다. 일본 대기업의 수직적 문화와 집단주의적 사고가 재택근무를 꺼리게 하고 선진국 중에서 전자 지급 결제의 수용이 가장 낮다 보니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국처럼 수용하지 못했다.

이처럼 디지털 경제는 바이러스 사태 중에 건강과 안전의 기술이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수행해 경제의 충격을 흡수하는 인프라로 인식된다. 한국 정부는 바이러스 대처 중에 수십 년째 논의만 거듭한 원격 의료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조치를 했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그 시행은 아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디지털 경제로의 이전 필요성은 더 절실해졌다.

미국과 선진국에서 본격화한 대량 실업은 이제 한국의 현실이 되고 있다. 항공과 해외여행 산업의 대량 구조조정은 물론이고 유가와 관련 깊은 해외 건설, 플랜트, 중장비 산업, 조선 산업 그리고 비싼 내구제에 해당하는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의 전 세계적 수요 감소는 피할 수 없다. 이에 따른 구조조정과 대규모 실업은 현실이 되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으로 파괴된 일자리를 공공 아르바이트 자리로 대체하는 것도 바이러스 위험으로 당분간은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디지털 경제로 가는 ‘한국판 디지털 뉴딜 정책’을 펴겠다는 것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궁여지책이다.


정부 뉴딜 정책 포장에 그쳐서는 안 돼

하지만 디지털 뉴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현금복지를 일자리로 분식해서 주는 식의 일자리를 만들어서는 포장만 디지털 뉴딜이지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젊은이들에게 경험과 기술의 습득 없는, 그래서 미래 희망도 없는 시간낭비가 될 수 있다. 정부 주도의 재정 확대를 정당화하는 뉴딜 정책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원칙과 정부의 절제가 필요하다.

우선 정부는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기업 복지를 창출해서는 안 된다. 정부 돈을 타 먹고 연명하는 좀비 기업이 늘수록 한국 경제는 더 빨리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으로 줄달음칠 것이다. 즉 민간이 할 것과 정부가 할 것을 뚜렷하게 구분해야 한다.

둘째는 혁신과 규제 개혁을 사회적 타협에 미루는 방식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사회적 합의란 이해 당사자 간 조정을 뜻했고 언제나 국민과 소비자는 소외된 정치적 책임 회피의 수단이 돼 개혁에 실패했다. 혁신의 최종적인 선택은 시장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과 원칙에 따라 정부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셋째는 정부가 새로운 산업을 만든다는 개발도상국의 도그마(독단적 신념)에서 빨리 탈피해야 한다. 1987년 체제 이후 역대 정부의 신산업 육성 정책은 모두 공염불화하고 있다. 이미 세계 11~12위로 올라선 경제에서 정부가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은 없다. 그것은 민간 기업의 몫이다.

사실 디지털 경제로 가는 길은 간단하다. 정부가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진입 규제를 푸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우버와 같은 차량 공유와 구글맵(지도)이 모두 안 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은 정부가 할 일이 새로운 재정 확대를 통한 뉴딜 정책이 아니라 따로 있다는 점을 명백하게 시사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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