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노는 지난해 2020 봄·여름 패션쇼에서 선보인 의상을 ‘동물의 숲’ 버전으로 제작해 무료 배포했다. /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은 실제 패션쇼, 동물의 숲 의상을 착용한 캐릭터, 의상 디자인 코드. 사진 발렌티노 / 가운데는 발렌티노가 ‘동물의 숲’에서 선보인 의상들. 사진 발렌티노 / 오른쪽은 마크제이콥스가 ‘동물의 숲’에서 선보인 의상. 사진 마크제이콥스
발렌티노는 지난해 2020 봄·여름 패션쇼에서 선보인 의상을 ‘동물의 숲’ 버전으로 제작해 무료 배포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은 실제 패션쇼, 동물의 숲 의상을 착용한 캐릭터, 의상 디자인 코드. 사진 발렌티노
가운데는 발렌티노가 ‘동물의 숲’에서 선보인 의상들. 사진 발렌티노
오른쪽은 마크제이콥스가 ‘동물의 숲’에서 선보인 의상. 사진 마크제이콥스

5월 1일 이탈리아 명품 발렌티노가 신상품 패션쇼를 선보였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는 지금, 눈치 없이 웬 패션쇼냐고? 패션쇼가 열린 곳은 바로 닌텐도 스위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동물의 숲)’ 속이다.

‘동물의 숲’은 무인도에서 동물 주민들과 함께 섬을 꾸리는 내용의 게임으로, 3월 20일 발매된 후 6주간 세계적으로 1300만 장이 팔려나갈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 게임에서는 캐릭터에게 원하는 의상을 만들어 입히고 외모를 꾸밀 수 있는데, 이를 활용해 2020년 봄·여름 패션쇼를 재현한 것이다.

감염병의 유행으로 손발이 묶인 현실 세계와 달리 자유롭게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동물의 숲’은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집콕족(집에만 있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했다. 현실에선 멋 부리고 나갈 곳이 없어 온종일 추리닝만 입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명품 옷을 여러 벌 바꿔 입으며 패션 감각을 뽐낼 수 있다. 수백만원짜리 명품도 디자인 툴을 이용해 직접 만들어 입으면 그만. 이에 유저들은 샤넬, 루이비통, 슈프림, 오프화이트 등 유명 브랜드의 옷을 제작해 입으며 ‘패션 놀이’에 열중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유저들의 옷차림을 모아 볼 수 있는 계정도 생겨났다. 애니멀 크로싱 패션 아카이브(@animalcrossingfashionarchive), 눅 스트리트 마켓(@nookstreetmarket)이 대표적. 이 계정들이 만들어진 지는 2개월이 채 안 됐지만, 팔로어 수를 합치면 7만 명이 넘는다. 게임 속 패션에 관한 관심이 커지자 명품 브랜드들도 가상세계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발렌티노는 애니멀 크로싱 아카이브와 함께 20개 룩을 선보였고 마크제이콥스는 6개의 신상품 의류를 무료 배포했다.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안나수이, 이탈리아 브랜드 GCDS 등도 동참했다. 유저들은 현실에선 입기 어려운 값비싼 명품을 게임 속에서 입어볼 수 있다며 반겼다.

패션과 게임의 만남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해 나이키는 ‘포트나이트(Fortnite)’와 협력해 나이키 에어조던 의상 아이템을 제공했고 올해 1월에는 한국 e스포츠 게임단 T1과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루이비통은 ‘리그 오브 레전드(LoL)’와 파트너십을 맺고 캡슐 컬렉션을 출시했다. 또 루이비통과 구찌는 직접 복고풍 게임을 제작해 선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Z세대(1995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과 협력했다고 밝혔다.


루이비통의 ‘리그 오브 레전드’ 스킨. 사진 루이비통
루이비통의 ‘리그 오브 레전드’ 스킨. 사진 루이비통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꼽힌 가상 모델 릴 미켈라. 사진 인스타그램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꼽힌 가상 모델 릴 미켈라. 사진 인스타그램
지난해 구찌가 선보인 모바일 레트로 게임. 사진 구찌
지난해 구찌가 선보인 모바일 레트로 게임. 사진 구찌

올해 명품 시장 매출 35% 감소할 것…디지털 전략 강화

한때 명품의 핵심 가치는 희소성과 고급스러운 이미지, 극진한 서비스 등으로 정의됐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확산에 따른 소통이 중요해지면서 명품은 누구에게나 열린 대중 럭셔리로 새롭게 재편됐다. 디지털을 통한 ‘접근 가능한 희소성’이 럭셔리의 시대정신으로 부각되면서 자연스레 게임을 활용한 전략도 확산했다. 게임 속 캐릭터와 같이 온라인상에만 존재하는 가상 인물이 모델로 발탁되기도 한다.

루이비통은 2016년 ‘파이널 판타지’의 캐릭터인 ‘라이트닝’을 그해 봄·여름 광고모델로 활용했고 발맹은 가상 모델 슈두를 광고 모델로 썼다.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가상 모델 릴 미켈라는 2018년 ‘타임’이 선정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꼽히기도 했다.

디지털 게임은 코로나19로 언택트(untact·비대면) 라이프스타일이 확산하면서 사세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올해 세계 e스포츠 시장 규모를 지난해보다 34.5% 증가한 15억9200만달러(약 1조9400억원)로 전망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는 올해 전 세계 명품 매출이 최대 35% 감소하리라는 전망을 발표했다. 최근 ‘보복 소비’로 일부 명품 브랜드의 중국 내 매출이 반등세를 보이지만, 세계 명품 매출이 지난해 수준을 회복하려면 적어도 2~3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또 다른 컨설팅 회사 맥킨지도 4월에 낸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명품 매출이 35∼39% 줄 것으로 관측했다. 실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케링, 에르메스 등 주요 명품 업체의 올해 1분기 전 세계 매출은 각각 지난해 1분기보다 17%, 15.4%, 7.7% 감소했다.

하지만 이커머스(전자상거래) 부문은 매출 증가세를 보였다. 케링의 1분기 전자상거래 매출은 중국 소비에 힘입어 전년보다 21% 증가했다. 명품 및 패션 업계의 디지털 전략은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프라다는 5월 12일 한국 공식 온라인 사이트를 열고 6월부터 온라인 전용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고, 구찌는 귀고리 모양의 장식이 달린 선글라스를 온라인 전용 상품으로 내놨다. 패션쇼도 디지털로 전환되는 추세다. 앞서 3월 상하이 패션위크가 디지털 패션쇼를 연 데 이어 6월부터 런던·밀라노·파리에서 열리는 남성복 패션쇼도 디지털 패션쇼로 대체될 예정이다.

김은영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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